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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세계] 악마와도 손잡는 '살인 주식회사'···솔레이마니 죽음뒤 모사드

영화로운 세계

세상 끝까지 쫓아가는 대담·집요한 공작

신분세탁은 기본, 위장 위해 리조트 경영도

정권 휘둘리지 않는 첩보기관으로 유명



※ 어려운 국제정세를 영화를 통해 쉽게 풀어낸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가 2020년 시즌2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갑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하며 시작된 미국과 이란 간 갈등으로 새해 벽두부터 뒤숭숭합니다.


타국의 군사령관을 드론으로 폭사시키는 작전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죠. 그런데 이 작전 뒤에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있었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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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정보ㆍ특수작전 연구소’란 뜻의 모사드는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공작을 벌이는 곳입니다. ‘정보력’이란 힘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긴 힘들겠지만, 세계 각국에 정보원을 심고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를 빼내는 기술(휴민트) 등에서 미국 CIA를 넘어선단 평가를 받을 정도죠.


그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겪은 후 제 나라를 지키는 데 사활을 걸게 된 유대인들의 첩보활동은 남달랐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중동 전쟁까지 거치며 모사드는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깊이 관여하게 되죠.


네,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 시즌2 두 번째 주인공은 바로 ‘모사드’입니다.



첩보 전설의 시작, 부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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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두운 방 안에서 비밀스러운 사내들에게 추궁당하던 중년의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엽니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겠소.”


남자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나치 전범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로까지 숨어들어 신분을 숨기고 살던 그를 체포한 건, 모사드 요원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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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이히만을 반드시 유대인들의 법정에 세우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였거든요. 그러려면 아르헨티나와의 외교 마찰을 피해 몰래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이게 쉬울 리가요. 요원들은 아이히만에게 항공사 승무원 복장을 입히고 진정제를 투여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 작전을 성공시킵니다.


‘오퍼레이션 피날레’(2018, 크리스 웨이츠 감독)는 이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모사드 요원들의 활약으로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세기의 재판’을 받고 1962년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판만큼이나 모사드의 존재도 널리 알려졌죠. ‘조국의 적이라면 세계의 끝까지 간다!’는 추진력과 정보력, 기상천외한 공작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겁니다.



모사드의 복수는 집요하다. 그리고 자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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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고요한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에 복면을 쓴 괴한들이 침입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었죠. 이들은 선수들을 인질로 삼고 팔레스타인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고, 스포츠 축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협상은 실패했고 인질 11명은 모두 목숨을 잃었죠.


여기까지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2005)의 도입부입니다.


‘뮌헨’은 그 후 이스라엘의 집요한 복수를 다룹니다. 주체는 바로 모사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세계 각국을 오가며 무자비한 피의 복수를 벌이지만, 점차 회의감에 빠져들죠.


‘신의 분노’라 불린 이 작전에 실제로 참여한 이들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모릅니다만, 확실한 건 있습니다.


모사드의 복수는 1981년까지 이어졌고 뮌헨 테러와 관련된 ‘검은 9월단’ 핵심 인사 10여 명을 제거했단 사실이죠. 이 장기전은,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모사드’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국가의 적을 향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에 나섰으니까요.



최고의 첩보기관 vs 살인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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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설립된 모사드는 ‘최고의 첩보기관’이란 평가와 ‘살인 주식회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직원은 1200여명, 정보원은 3~4만명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수치는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그 역할에만 충실한단 점에선 모든 정보기관의 모범사례로 꼽히죠.


모사드는 숱한 작전들을 벌이면서도 자신들이 했다고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공개 당시 크게 호평받은 ‘인사이드 더 모사드’(2017, 두키 드로르 감독)는 그래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인데요. 이제는 흰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된 전설의 스파이들이 출연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가도 서늘한 이야기들을 꺼내놓습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그 지도자 호메이니를 암살하는 작전을 고려했지만 결국 포기한 얘기부터, 1980년대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펼친 ‘모세 작전’까지 파란만장한 첩보 역사가 펼쳐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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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작전은 특히나 영화 같습니다.


모사드는 에티오피아 군인들을 속이기 위해 버려진 리조트를 통째로 매입하는 전략을 세웠는데요. 유대인들을 빼낼 베이스 캠프로 삼기 위해서였죠. 어쨌든 리조트답게 보여야 하니, 요원들은 다이버 강사와 직원으로 위장해 리조트 운영을 시작하는데…. 이게 웬일.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본국에서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정도라고 전해집니다.


이런 위장과 연기는 기본.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일은 정보원을 심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가족과 친구, 나라를 배신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이들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습니다. 부국장을 지냈던 한 요원은 이를 “때로는 악마와 공조해야 하는 일”('인사이드 더 모사드')이라고 한마디로 설명합니다.


이들은 AI 시대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공작을 벌여야 하는 첩보활동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털어놓았지만, 모사드의 위력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2010년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사령관을 호텔에서 암살했을 때는 요원들이 여기저기 지문을 남기고 CCTV에도 잡혔는데요. 그런데도 잡히지 않아서 “두바이 CCTV를 이스라엘에서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죠.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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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온갖 비난을 받을지라도 요원들은 애국심으로 뭉쳐있고, 이스라엘 정부 또한 이들을 ‘애국 전사’로 대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불리는 스파이 엘리 코헨이 대표적이죠.


1960년대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 군부 깊숙이 침투해 고위직에 올라 온갖 정보를 빼돌려 이스라엘의 승리를 도운 그는 1965년, 붙잡히고 말았는데요. 이스라엘 정부가 포로 맞교환 등 온갖 제안을 했지만, 시리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모진 고문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아 세상을 떠났고, 이스라엘 측은 시신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시리아는 이마저 거부했죠.


이스라엘 정부가 포기했을까요?


무려 53년이 지난 2018년, 모사드는 엘리 코헨의 손목시계를 찾아옵니다.


비록 유해는 찾지 못했지만, 기어코 그의 흔적을 찾아온 거죠. 엘리 코헨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회자했고, 모사드는 다시금 그 이름을 떨칩니다. 코헨의 삶은 지난해 ‘더 스파이’라는 드라마로도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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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에서 활동한 전직 첩보요원들이 출연해 크게 호평받은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더 모사드'

위장과 연기, 끝없는 긴장, 죽음의 공포. 모사드 요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일 겁니다.


한 여성요원은 '정체가 탄로 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붙잡힐 경우 ... 장기 복역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스파이가 되는 건 썩 좋지 않으니까요. 적의 전선 뒤에서 말이죠. 권할 만한 게 아닙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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