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반세기 정동환 “내가 하는 일은 귀한 일. 어렵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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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은 귀한 일임에 틀림없다.” 노배우의 신념은 바위같이 단단했다. “이 정도면 됐다? 그건 틀린 말”이라는 그에게 도전 정신은 본능처럼 보였다.
1969년 데뷔, 연기 인생 반세기를 보낸 배우 정동환(71). 그가 말한 ‘내가 하는 일’은 연극이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연극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노정”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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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TV 드라마로 대중에게 익숙한 얼굴이지만, 연극을 늘 본업으로 친다. 지난해만 해도 드라마 ‘열혈사제’ ‘호텔 델루나’ 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동시에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했다.
그가 ‘내 인생의 명대사’로 꼽는 대사 역시 연극 작품 속에서 나왔다. 2003년과 2008∼2009년 공연한 피터 셰퍼 원작 ‘고곤의 선물’에서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이 했던 말이다. “나의 신념, 당연히 연극이지”로 시작되는 담슨의 말은 “(연극은) 영원히 죽지 않을 유일한 종교거든. 지금은 삭아버린 불덩이처럼 침묵 중이지만 (…) 사람들에게 신념과 경이로움을 심어줬었어. (…) 사람들은 그 속에서만 진실을 볼 수 있었어”로 이어진다.
그는 “누가 ‘너 연극 왜하니’라고 물으면 이 대사를 들려준다”면서 “생각날 때마다 벌떡 일어나서 이 대사를 되뇌어보는데,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담슨의 대사는 “언젠가는 새로운 사도들에 의해 연극이 다시 활활 타오르는 날이 올거야. 그 때가 되면 두고보자는 말이지. 틀림없이 그 사도들 중에 내가 있을거야”로 마무리된다. 연극의 부활에 대한 담슨의 확신 역시 그가 공유하는 믿음이다. 그는 “점점 기계를 통해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고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보고 마주쳐야만 교감할 수 있다는 걸 깨우칠 날이 올 것”이라며 “거울같이 서로 비추고 비춤을 당하는 ‘교감’이 연극 안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가 연극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깨우친다는 것은 연극적인 고찰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또 그 연기를 보면서 내 심연 본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끊없이 도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그는 영원한 현역을 자처한다. 지난 연말 KBS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연작단막극상을 수상하며 “공로상이 아닌 연기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던 그다. “나이 들었으니 이런저런 적당한 배역 어떻겠냐고도 하는데, 그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어렵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홍길 대장의 ‘산행 친구’로 에베레스트 등정까지 마친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순간을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꼽는다.
2017년에는 러닝타임 총 7시간으로 화제가 됐던 극단 피악의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심문관으로 출연해 무려 20분간 쉬지 않고 독백을 쏟아내는 장면으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공연을 제대로 끝내고 내려올 수 있을까, 매일 자신이 없었다. 첫날부터 끝날까지 언제 어떻게 될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 내가 해야될 일이라고 믿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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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그는 다시 연극 ‘고곤의 선물’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나이를 뛰어넘어 청ㆍ장년 에드워드 담슨을 연기하는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힘들지 않고 인생살이가 뭐 재미있는 게 있겠냐. 극복해내면 좋은 거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고…”라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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