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치고 잘하네가 아니다"… 경력단절 깬 '마마돌'
tvN '엄마는 아이돌' 민철기 PD
tvN '엄마는 아이돌'로 모인 가희, 선예, 박정아, 별, 현쥬니, 양은지 6명은 '마마돌'이란 이름으로 딱 한 무대에 선 뒤 활동을 마쳤다. '마마돌'은 최초의 '육아돌' '엄마돌'이다. Mnet 유튜브 캡쳐 |
'밥밥밥'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엄마 6명이 팔로워 7.9만명의 아이돌이 됐다. 지난 4일 종영한 tvN ‘엄마는 아이돌’에서 결성된 ‘마마돌’이다. 애프터스쿨 가희, 원더걸스 선예, 쥬얼리 박정아, 별, 현쥬니, 베이비복스 리브 양은지 등 6명이 모였다. 무대를 떠난지 평균 3514.8일, 한때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고, 5년동안 1위를 40번 하는 등 정상을 구가했던 이들이다. 지금은 평균나이 38.3세, 여자 아이돌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도합 1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선예·가희도 처음엔 "못한다"… 섭외부터 고민
현재 춤과 노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첫 무대인 '현실평가'에서 박정아는 태민의 '무브'를 선보였다. 박정아의 '무브', 선예의 '버터' 현실평가 영상은 SNS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tvN 캡쳐 |
사상 첫 ‘경력단절 아이돌’ 프로젝트를 만든 CJ ENM 민철기(48) PD를 지난 8일 전화로 만났다. MBC '복면가왕'을 만든 20년차 PD로, '엄마+아이돌' 아이디어는 걸그룹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회의에서 우연히 나왔다.
민 PD는 "처음엔 ‘엄마 아이돌’ 섭외부터 불가능할 것 같았다"며 "요즘 아이돌의 기준에 못 맞추면 안나오니만 못하게 될까봐. 커리어가 무너지고 오점만 남길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실제로 가희와 선예는 “무대가 그립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라며 한 차례 거절했고, 20여명 남짓 ‘육아 중인 전직 여성 아이돌’ 후보 중 실력 부담에 고사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민 PD는 "아이돌뿐 아니라 다른분야도 다 똑같을 거다. 옛날에 아무리 잘 나갔어도, 다시 복귀할 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선예는 안무 현실평가 무대에서 BTS의 '버터'를 선보였다. 박선주 보컬트레이너는 "조명만 떨어져도 멋있다"고 평했다. 선예는 안무 중간에 원더걸스의 포인트 안무를 섞어넣기도 했다. tvN 캡쳐 |
그렇게 모인 6명은 "10년간 스트레칭 한 번 못했고"(선예), "설거지하고 나면 가끔씩 '내가 뭐하고 있지?' 싶었다"(박정아)던 엄마들이었다. "13년간 직업란에는 '주부', 특기란에는 '긴 머리 빨리 말리기'를 적었고"(양은지), "보면 계속 하고 싶은데, 어차피 못하니까 무대를 일부러 안 찾아봤다"(가희)는 시간을 보낸 이들은 발성을 가다듬고 춤 동작을 반복하며 컴백 무대를 준비했다. 첫 무대인 '현실평가'에서 태민의 '무브'를 춘 박정아와 BTS의 '버터'를 춘 선예, 보컬 평가에서 '바람의 노래'로 그간 알려지지 않은 노래 실력을 자랑한 가희 등의 무대는 SNS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민 PD는 "선예가 윤하의 '기다리다'를 부른 첫 평가 무대는 한동안 계속 돌려봤다"며 "'굉장히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아까운 사람들이 왜 무대에 오지 못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 엄마들 독하다, 뭘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민철기 PD는 "꿈을 좇는 엄마들의 모습과 경력단절이 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육아의 고충,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배려심이 깊어진 모습 등 개인적으로도 배운 점이 많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전했다. 사진 CJ ENM |
어렵게 잡은 기회인만큼 이들의 몰입도는 높았다. 선예는 연습실이 있는 건물에 숙소까지 잡았다. 민 PD는 "이들은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저도 '이 엄마들 독하다, 뭘 하려면 이정도는 해야 뭐가 되지' 생각하며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시청자들은 잘 하지 않으면 안본다. '엄마치고는 잘하네'가 아니라 지금의 아이돌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이돌을 만들려고 했다" 는 민 PD의 말처럼 이들은 2달간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이름은 '마마돌', 데뷔곡은 '우아힙'이다. 엄마들의 정체성을 담아 담백한 이름을 지었고, 곡 제목은 첫 개인 무대 평가 때 김도훈 작곡가가 선예에게 '우아하고 힙하다'고 한 평에서 따왔다.
'마마돌' 인스타그램은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도 팔로워가 꾸준히 늘어, 14일 현재 7만 9000명을 넘겼다. 인스타그램 캡쳐 |
이들은 데뷔를 못할 수도 있었다. 한 달 안에 'SNS 팔로우 2만 + 팬클럽 2000명'을 채워야 데뷔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기간 내에 팔로워 3만9004명, 팬클럽 회원 1만2460명을 모았다. 민 PD는 "만약 조건을 못 채우면 진짜 데뷔도 못하고 끝나는 거였고, 그것도 요즘 예능이라고 생각했다"며 "딱 3화까지만 나간 뒤 한 달이 돼서, 많이 불안했었던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연습보다 육아가 더 힘들어, '오늘 왜 연습 없냐' 한탄"
'엄마는 아이돌'에 참가한 멤버들은 연습과 육아를 병행했다. 빡빡한 연습일정에도 이들은 "연습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고 했다. tvN 캡쳐 |
방송에는 연습 중에도 육아에 얽매인 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캐나다에서 혼자 건너온 선예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멤버는 촬영을 하면서도 육아를 계속해야 했다. 가희는 "연습을 빡세게 했지만, 그것보다 육아가 더 힘들었다"며 "멤버들이랑 단체 채팅방에선 '오늘 왜 연습 없는거야'라며 한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간절한 마음에 툭하면 눈물바다가 됐고, 그때마다 서로 배려하고 달래주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담겼다. 민 PD는 "다 한 가닥씩 했던 출연자 여섯 명이 이렇게 케미가 좋을 줄 몰랐다. 엄마들이라 뭉칠 수 있었고 이해심이 높았던 것 같다"며 "웃음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이들의 노력과 진심을 충실히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데뷔무대=은퇴무대… "기분좋은 꿈을 깬 느낌"
오랜만에 무대에 선 선예를 본 팬들은 '선예 여권 뺏어'(캐나다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해서 활동하게 해달라는 농담) 등 반응을 보였다. Mnet 유튜브 캡쳐 |
'마마돌'은 엠넷 음악프로그램 딱 한 무대를 끝으로 데뷔와 동시에 은퇴했다. 민 PD는 "시즌2도 필요하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 얘기된 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도 제작진도, 끝내는 게 쉽지 않고 섭섭한 상황"이라며 "정말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깨서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민 PD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엄마들이 일할 수 있는 사회는 왜 어려운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엄마들이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게 사회적 낭비라는 생각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한 번 더 하게 된다면 언젠가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