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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들야들 이 맛이 만원…속초는 오징어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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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은 기억할 것이다. 산[生] 오징어 10마리 만원. 서울에 산 오징어 바람이 불었다. 산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1990년대 일이다.

‘오징어 한 마리 50원 너무 잡힌다, 기본 경비 못 미쳐 출어 포기…(강원도민일보 1998년 6월 18일자).’


오징어가 풍어를 넘어 바다를 가득 채울 지경이었다. 오징어 한 드럼이 석유 한 드럼보다 쌌다. 그때 우리는 오징어를 싸게 먹어서 좋았다. 그러나 강원도 속초에서, 주문진에서 이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도시는 냉정했다.


“‘이까바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겁니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지. 좀 먼바다로 나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집어등이 밝아서 어부들이 다 화상을 입어요. 그런 일이었지.”


속초의 지역 언론인 엄경선(53) 설악닷컴 대표의 말이다. 그의 부친도 어부였다. 이까바리는 오징어잡이를 이르는 일본어다. ‘당일바리(그날 돌아오는 조업)’로 산 오징어가 들어온다. 연안 조업이다. 먼바다 조업은 대개 선동 오징어가 되고, 마른오징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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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일대에 산불이 크게 났다. 미시령 쪽 산은 까맣게 변했다. 봄이라고 싹은 돋아서, 푸른 기운이 비친다. 그래도 먹자고, 나는 속초에 갔다. 마침 맏물 오징어가 제격이라는 말을 들어서다.







속초항이 가까운 수복탑 앞. 수복탑(收復塔)은 실향의 도시인 속초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수복탑 위의 모자상이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 아래 ‘오징어 난장’이 펼쳐져 있다. 요즘은 보통 ‘오징어 난전’이라고 부른다. 엄 대표의 설명이다.

“오징엇값이 폭락하자 어민 식구들이 난전을 벌여서 산 오징어를 썰어 팔던 곳입니다. 지금도 열네 집 정도 남아서 영업합니다. 5월에 산 오징어 맏물이 들어오면 천막을 치고, 추석 지나 오징어가 끊기면 12월 말일까지 도루묵과 양미리를 구워 팔다가 천막을 걷어요.”


지금이 산 오징어 제철이다. ‘총알오징어’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시기를 지나서 살짝 커진 놈이 회로 먹기에 제격이다. 작은 오징어는 마른오징어로 만들지 않는다. 오직 회로 먹기에 적합하다. 산 오징어를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씹어본다. 공장제품 초장에 푹 찍는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럽다. 오징어는 어린놈만 칼로 일일이 썰어낸다. 오징어가 커지면 기계로 썰어서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


“오징어는 이 일대의 삶을 지탱하는 생선이었지. 이걸로 먹고살았다고.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월사금(등록금) 못 내면 휴학하거나 방학 때 오징어 배를 탔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오징어 배 선원으로 살아온 사람도 많고. 소년 어부지.”


지피에스(GPS)도 없던 시절, 조업한계선을 넘나들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랍되는 일도 흔했다. 그 틈에 소년 어부들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생환해도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일도 많았다. 속초시민만이 아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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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로는 여러 요리를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물회와 순대다. 물회는 오징어 난전은 물론이고, 시내 여러 횟집에서 판다. 원도심인 중앙동으로 발을 돌렸다. 오징어순대의 명가를 찾아서다. 중앙동 일대는 본디 속초 요식업과 유흥업의 중심이었다. 요즘도 노포들이 살아 있다. ‘진양회집’도 그중 하나다. 선대(이정해, 작고)에 이어서 남매가 경영한다. 맏딸 이정숙(66)씨가 부엌을 맡고 있다. 81년 문을 열어서 처음에는 근처 선원과 공사장 노동자의 밥을 대는 ‘함바집’으로 번성했다. 오징어순대를 가장 잘하는 원조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 원조는 인근 ‘삼영집’인데, 현재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집이 이곳이다.

“아버지가 수협 중매인이었어요. 91년도인가 텔레비전에 우리 집이 나오면서 오징어순대가 유명해졌어요.”


오징어순대는 원래 순대 요리가 강했던 함경도 실향민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요리로 추정된다. 진양회집의 선대 이정해 할머니는 함경도 북청 출신이다.


“원래는 명태순대를 해 먹었지요. 명태 내장 훑어내고 곤지(명태 곤이), 숙주 등 재료를 넣고 싸매요. 그걸 고랑대(바지랑대)에 걸쳐서 마당에서 말렸어요. 과메기처럼 얼었다 녹았다 하며 숙성이 되면 연탄불에 구워 주셨어요. 맛이 기가 막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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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씨의 말이다. 오징어순대 기원설은 두 가지다. 함경도에 원래 있었다고도 하고, 속초 일대에서 흔한 오징어를 이용하여 명태순대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전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김호응씨는 이런 증언을 했다.


“흉년에 배가 고픈데 먹을 건 없고 오징어는 흔해요. 산나물 캐서 막장에 비빈 후 오징어 배에 채워 쪄먹었어요. 그게 나중에 관광상품이 되면서 히트를 했던 겁니다.”



오징어순대를 한 입 먹어본다. 온갖 재료가 어우러져 입에 가득 차면서도 부드럽다. 오징어는 졸깃하고 맛있다. 생각보다 굉장한 맛이다. 수고도 많이 든다. 당면에 묵은지, 양파와 마늘, 버섯과 나물에 오징어 다리… 수십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소를 만들고 물기를 네 시간 뺀다. 다 수작업이다. 이씨의 손이 갈라지고 굽어 있다. 오징어순대를 만드느라 생긴 노동의 흔적이다. 이 가게는 여러 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일하기 힘든데 옛 식당 모습을 지키기 위해 개조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오래된 문살이 눈에 띈다. 소박한 속초 해안가 식당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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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물회도 명물이다. 산 오징어가 좋으면 100% 물회를 내고, 그 밖에 요즘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멍게·해삼·물가자미·방어·전복 등을 섞어서 내는 물회도 있다.

“옛날 물회는 어부들의 참이었어요. 속초는 당연히 오징어회가 원조지요. 이까바리 조업 중에 배가 고프면 오징어를 막 썰어서 된장 풀고 찬밥을 비벼 먹었다고 해요. 나중에는 고추장도 넣고 빙초산도 써서 새콤한 맛이 나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동석한 엄 대표의 첨언이다. 뱃사람은 술을 많이 먹었다. 엄 대표가 언젠가 노인정에 들러서 이런저런 취재를 했는데 노인들끼리 나누는 이런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아바이는 몇 드럼통 먹었슴메?”


“한 오십 드럼통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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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막소주를 뜻한다. 소년 어부들도 ‘사홉들이’를 한 병씩 먹던 때였다. 힘든 노동을 술과 오징어막회 같은 거친 음식으로 버텨냈던 것이다. 엄 대표가 기억하는 아버지도 군용 반합에 밥을 담아서 배를 탔다고 한다. ‘화장’이라고 부르는 선원 겸 요리사는 큰 배에나 있기 때문에 당일바리 오징어 배는 선원들끼리 알아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잡은 오징어를 넣고 된장이나 초장을 넣고 밥을 비벼 먹는 게 당연한 끼니였다는 뜻이다. 일종의 비빔회요, 비빔횟밥이었다.

원래 물회는 비빔회보다 뒤늦게 등장했다는 게 지역에서 보는 시각이다. 회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고 비벼 먹다가 얼음이 흔해지고, 더운 여름에 물회를 말면서 자연스레 요리법이 변했다고 한다. 진양회집도 91년 이후부터 물회를 팔았다.


“어머니가 고추장과 오이 양파 빙초산에 오징어를 썰어 넣고 만들어주신 물회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노란 양재기에다가 물 붓고 휘휘 저어서 말이죠. 물회는 당연히 오징어로만 만들었어요. 그때는 오징어가 개락이라(많아서).”


이씨의 말이다. 또 속초 인근 고성 가진항의 해녀들이 물회를 판 것이 관광객에게 크게 인기를 끌면서 속초 전역이 ‘물회 도시’가 됐으리라 짐작한다. 물회는 사실 이 지역에서 그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작년 오징어 어황은 최악이었다. 올해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난전에서 먹을 만한 크기가 세 마리 만원이었다. 물론 그날그날 어획량에 따라 달라진다.


산불 이후 속초 지역 경기는 엉망이 됐다. 요식업의 타격도 크다. 절반쯤 매출이 빠졌다. 시내를 돌아보니 산불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한전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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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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