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비행기 창문도 스트레스 받는다…세번의 추락이 바꾼 '둥근창'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객기를 타고 여행할 때 창가 쪽 자리를 유독 선호하는 승객이 있습니다. 아마도 유리창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공항과 하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아닐까 싶은데요.


간혹 유리창이 둥근 모양이 아니라 버스나 기차처럼 네모였다면 풍경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1950년대 초·중반만 해도 여객기 유리창은 지금 같은 원형이 아니라 네모였습니다.


당시 항공 여행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기 때문에 유리창도 풍경이 잘 보이는 네모 형태로 크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렇다면 왜 사각 유리창이 원형으로 바뀐 걸까요.



50년대 초·중반 제트기 창문은 네모


여기에는 세 차례의 안타까운 비행기 추락사고가 배경이 됐습니다.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드 하빌랜드(De Havilland)가 제작한 최초의 제트여객기 '카미트(Comet)'가 비운의 주인공인데요.


터보제트 엔진 4기를 장착하고 40여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카미트는 1949년 개발돼 1952년 5월 BOAC(영국해외항공회사)의 런던~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 노선에 첫 취항을 했습니다. 이 카미트의 창문이 네모였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1953년 5월 2일 인도의 캘커타공항을 이륙하는 도중 공중에서 기체가 분해되는 사고가 일어나 승객 43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듬해 1월 10일에는 이탈리아 로마를 출발해 런던으로 가던 비행기가 지중해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자 35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첫 번째 사고부터 원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이 1954년 4월 8일 로마를 떠나 이집트 카이로로 가던 같은 기종의 남아공항공 여객기가 또다시 지중해에 추락해 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초 제트여객기 카미트 세 차례 추락


카미트의 세 차례 추락으로 모두 99명이 안타깝게 숨졌는데요. 추락한 비행기에서 회수한 파편을 조사한 결과, 이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네모난 창문 모서리에서 시작된 균열이 주변 동체로 퍼져나간 걸 발견한 겁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다 발견한 현상이 '피로 파괴(Fatigue Crack)'인데요. 대한항공 항공기기술팀에 따르면 피로 파괴는 특정 재료에 반복적으로 하중이 가해지면 당초 계획했던 응력보다 낮은 응력을 가해도 부서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사각 창문과 피로 파괴는 어떤 관련이 있었던 걸까요. 이 관계를 설명하려면 '여압'이란 개념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여압은 승객들을 위해 여객기 내의 공기 압력을 높여 지상의 기압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는 걸 말합니다.



네모난 창문 모서리에 팽창 압력 집중


대한항공 항공기술팀은 "제트기는 연료소모를 줄이고, 보다 편안한 비행을 위해 고도 9000m가량으로 비행을 한다"며 "이렇게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여객기 외부의 압력은 낮아지지만, 내부의 압력은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여압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기내 여압 장치는 1950년대부터 일반화됐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하면 여객기 외부와 내부의 압력 차만큼 여객기 동체를 팽창시키려는 힘이 작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힘이 여객기 동체에 고르게 전달되는 게 아니라 창문과 같이 동체의 형상이 달라지는 부분에 집중되는 '응력 집중(Stress Concentration)'이 생기게 되는데요.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계속 창문에 집중된다는 의미입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응력 집중은 여객기가 비행할 때마다 창문에 반복해서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되면 당초 창문을 설계할 때 고려했던 힘보다 낮은 힘이 가해져도 부서지는 '피로 파괴'가 생긴다는 겁니다.



창문 주위에서 균열 시작...피로 파괴


특히 당시 여객기처럼 네모난 창문은 모서리 부위에 응력이 집중돼 더 강한 압력을 받았고, 이로 인해 창문 주위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돼 주변 동체로 퍼져 나가 결국 추락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제트기보다 훨씬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여객기는 네모 창문을 해도 큰 이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응력 집중을 최소화해 피로 파괴를 막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창문 모서리 부위를 최대한 둥글게 만들어서 응력이 골고루 분산되도록 하거나, 아니면 모서리 부위의 두께를 더 두껍게 하는 겁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공기는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동체를 가볍게 만들어야 하므로 두께를 강화하는 대신 창문을 둥글게 만드는 방식이 채택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미트 사고 이후 제작된 항공기들은 둥그런 창문을 달게 된 겁니다. 여객기의 창문에도 이런 안타까운 사고와 정교한 과학 기술이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