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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도 왜인지 모른다"…눈 가린 '기생충' 포스터의 비밀

'기생충' 포스터·스틸 이재혁 작가

봉준호 감독과 세번째 작업

"박찬욱 감독은 기품 있는 문인,

봉준호 감독은 천재 화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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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아카데미상 후보 오른 외국영화들 포스터랑 있어도 ‘기생충’만 눈에 확 보이는 거예요. 외국에서도 패러디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기억할 만한 사진이 됐구나, 이제 영화를 그만둬도 여한이 없다, 그랬죠.” ‘기생충’의 영화 스틸‧포스터를 촬영한 이재혁(50) 사진작가는 서울 중앙일보사에서 만난 자리에서 소감을 전하며 감격스러워했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더해 다음 달 9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까지 올랐다. 전 세계 영화상을 휩쓸며 한국영화 최초 기록을 잇고 있다.



봉준호 감독, 전지구적으로 '핫'해


“봉 감독님이 지금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핫’하잖아요.” 이달 초 미국에 다녀왔다는 그는 “봉 감독님이 분 단위로 인터뷰가 있어서 잠도 하루 몇 시간 못 자더라”며 “LA 며칠 있다가 뉴욕 갔다가, 시상식이 한 군데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체력적으로 방전돼 있더라”고 했다. 지난 3일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이 LA에서 연 파티에선 봉 감독과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 부부 사진도 찍었단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왔던 그 파티요.”


“아는 할리우드 조감독이 봉 감독님 다음 작품에 이력서 좀 전해달라고 청탁하더라”며 “칸에서 황금종려상 탈 때도 믿기지 않았는데 지금도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다”며 그가 웃었다.



패러디 열풍 포스터엔 호크니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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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촬영한 영화 본 포스터는 ‘제시카송’과 함께 패러디 열풍도 불었다. 포스터 속 인물들의 눈을 가릴 줄은 배우들도, 자신도 몰랐단다. “콘티나, 사진 고를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디자인 다 돼서 나올 때 눈 가린 버전, 안 가린 버전이 있었죠. 가린 게 느낌이 확 사는 거예요. 포스터를 만든 김상만 감독이 방점을 찍은 거죠.”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등을 만든 영화감독이자 포스터 디자이너인 김 감독은 그의 고교 1년 선배다. “‘내 마음의 풍금’ 때 처음 하고 ‘신장개업’ 이후 오랜만에 같이했죠. 상만 형이 그림을 보여줬어요. ‘기생충’ 포스터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 느낌이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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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시리즈는 영국서 나고 자란 화가 호크니가 미국 LA에 건너가 작업한 것. 이 작가는 영국의 흐린 날씨에 익숙한 호크니가 LA에서 느꼈을 충격이 고스란히 그림 속에 느껴졌다고 했다. “저도 재작년 LA 처음 가보고 놀란 게 세상에, 얼마나 날씨가 이렇게 좋은지. 저희도 정오 광 조명을 했죠. 정오에 내리쬐는 그 아른아른하는 느낌으로요.”



부자·가난한자 눈가리개 색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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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이선균)네 가든 파티신 촬영 중 딱 하루 흐린 날이 포스터 촬영에 주어졌다. 포스터를 마주하고 왼쪽 위로 조명을 최대한 높이 올리고 송강호 쪽에 강한 빛을 쐈다. “호크니 그림을 배우들한테도 보여줬어요. 너무 감정 갖지 않고, 무심하게. 각 위치 인물마다 포커스를 두고 찍어 나중에 따로 합성했어요.”


눈을 가린 이유에 대해 그는 “봉 감독님도 왜인지 모른다. 김상만 감독님이 알 텐데 물어보진 않았다”며 “지금도 안 알려진 거면 그렇게 남겨놔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빈부 양극화를 그린 영화 주제처럼 눈가리개도 부자인 박사장네 가족은 흰색, 가난한 기택(송강호)네는 굳이 검은색인 건 짚어냈다. “가려져도 계층이 다른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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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번지는 모양까지 챙긴 '봉테일'


1997년 영화 스틸을 찍기 시작해서 올해로 23년째. 그가 봉 감독과 함께한 건 ‘설국열차’ ‘옥자’에 이어 세 번째다. 카메라 뒤 봉 감독을 또 다른 카메라 뒤에서 지켜봐왔다.


“봉준호 감독님은 콘티가 정확해요. ‘기생충’에서 사람 피랑 매실청이 섞이잖아요. 그 둘이 섞이는 ‘라인’, 감독님이 현장에서 아이패드로 찍어서 특수효과팀에 요청한 거예요. 피 선이 몇 퍼센트까지 와야 하고 수석은 어디 떨어지고. 전체적인 타이밍이 기가 막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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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사진은 예전엔 촬영 전 리허설, 촬영 막간에 찍었지만, 셔터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여러 기기가 개발되며 촬영 중에도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찍을 수 있게 됐다. ‘기생충’도 그랬다. 그는 '기생충' 촬영 기간 내내 현장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 작가는 봉 감독의 촬영현장을 ‘무용’에 빗댔다. “봉 감독님 촬영 현장은 카메라가 고정되기보단 이동이 많아요. 배우가 이렇게 대사 치면 카메라가 어느 속도로 빠지고. 현장 크루들만 아는 그 재미가 있거든요.”



봉 감독이 좋아한 그 장면…


“천재가 그렇게 독을 품고 일하면 이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가 고양 아쿠아세트 촬영 때 봉 감독을 회상했다. “침수 장면을 찍는데 (세트장) 골목 우유가게엔가 있던 모니터룸에서 계속 일만 하는 거예요. 모든 게 머릿속에 있고 숙성시켜서 전달해야 하니까 잠도 안 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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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작가란 현장에서 기록하는 사람, 사진 일을 하는 영화 크루”라는 그다. 봉 감독이 좋아했던 장면을 이렇게 돌이켰다. “기택네 가족이 빗속에 동네로 내려오는 사진을 되게 좋아했어요. 촬영 초기 만리재 고개 근처였는데 이런 색감이라든지 약간 빈티지스러운 느낌들. 깔끔한 성북동, 도심가와 다르잖아요. 배우에 의존해서 끌어가는 영화도 있지만 ‘기생충’은 인물뿐 아니라 공간과 소품 모든 게 다 주인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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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탓에 찍어놓고 못 쓴 스틸이 더 많단다. 이 작가 자신이 가장 애착 가진 장면은 기택이 박사장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장면. 영화가 세계 최초 개봉한 한국에선 쉬쉬했던 장면을 북미 개봉 시엔 과감하게 썼다.



이정은, '구라파 배우' 같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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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한순간도 손꼽았다. “매직아워에 막 머리카락, 스카프가 흩날리고, 고급소재 옷 입고 쫓겨나는데 뒤돌면 쫓겨나온 박사장네 부잣집이 있는” 장면이다. “(이)정은씨한테 그랬어요, 구라파 여배우처럼 나왔다고.”


“배우 자신도 있는지 잘 몰랐던, 영상에선 스쳐지나갔던 표정을 포착하는 것”도 스틸 작업의 묘미라고 이 작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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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림에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기생충’ 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기택네 집 같은 색감의 그림을 기억해뒀다. “칙칙한 녹색인데, 곰팡이 같은 느낌이죠. 봉 감독님,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설계한 기택네 조명이 구식 형광등이잖아요. 거기에 침수가 반복되고 습한 반지하집의 벽, 그늘진 부분에 그런 색감이 나도록 작업했죠.”



봉준호·박찬욱과 첫 만남 '설국열차'


그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장준환 감독의 ‘1987’ 등 명감독의 현장에도 자주 참여해왔다. 봉 감독이 “천재 화가 느낌”이라면, ‘아가씨’를 함께한 박 감독은 “굉장한 문인이 기품 있게 난을 치는 듯했다”고 돌이켰다. 봉 감독과 박 감독 두 사람을 처음, 함께 겪은 작품이 ‘설국열차’다. 박 감독의 영화사 모호필름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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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체코 세트장에서 이뤄졌다. 처음 만난 봉 감독은 “유쾌하고 매력이 철철철 넘쳤”단다. “가까이에서 보니 무릎을 칠 때가 많아요. 영화에서 얼어붙은 팔을 내려칠 때 그 밑에 쇠받침 있잖아요. 크랭크인 전 소품창고 마지막 확인 때 봉 감독님이 딱 보고 무릎 꿇고 앉더니 밑에서부터 23㎝ 자르라고 툭툭툭 말하고 가요. 현장에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챙기기로도 유명하죠.”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들은 자신이 나온 스틸 사진의 50%까지 거부권한이 있다거나, 촬영 중 배우의 시선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되는 등 생전 첫 해외 촬영에서 한국과 다른 규칙에 쩔쩔맸지만 땀 흘린 보람도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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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존 허트가 영화사 인터뷰 때 마지막으로 저를 ‘리얼 아티스트’라고 칭찬해줬어요. 지금껏 버티는 원동력이 됐죠. 틸다(스윈튼)가 극 중 메이슨의 훈장 중 하나를 저한테 줄 때도 감동했죠.”


‘설국열차’ 스틸을 본 할리우드 SF 영화 프로듀서 제의로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이퀄스’, 쉐일린 우들리 주연의 ‘엔딩스, 비기닝스’ 등 할리우드 영화도 잇달아 찍게 됐다. 마블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한국 촬영 현장에도 스틸 작가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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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선 '대부' 스틸 작가도 70대 현역


경성대에서 광고사진을 전공한 그를 영화로 이끈 건 형 이광모 감독이다. 이 감독은 열두 살 소년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그린 데뷔작 ‘아름다운 시절’(1997)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이 작가도 이 영화로 스틸 작가에 데뷔했다. 지금껏 스틸을 찍은 영화가 30여 편. “영화기획도 해보고 다른 사진도 찍었는데 결혼하고 ‘타짜’ 하면서 스틸 작가가 제 길이라 생각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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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유, 박보검 주연 SF 영화 ‘서복’ 작업을 마친 그는 3월부터 ‘타짜’ 최동훈 감독의 새 영화 현장에 돌입한다. 박찬욱 감독과 ‘아가씨’ 사진집도 준비 중이다.


장비가 무거워 촬영 한번 하고 나면 일주일간 젓가락질을 못 하던 시절도 기기가 개발되며 지나갔다. “영상은 잘 나왔는데 장비 때문에 사진 못 찍으면 너무 속상해서” 연간 매출액의 절반을 새 장비에 투자한 적도 있다. “왜 영상 촬영으로 안 넘어가느냐”란 질문이 스틸 작업을 관문으로 보는 것 같아 상했던 마음을 달래준 게 해외 현장에서 만난 노익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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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끝이 영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싫거든요. 외국은 한 위치에서 평생 직업을 가지잖아요. ‘옥자’ 뉴욕 분량 스틸은 ‘대부’ 1편 찍은 70대 스틸 작가가 촬영했어요. 최근 참여한 ‘엔딩스 비기닝스’라는 미국 영화에도 ‘귀여운 여인’ ‘프리윌리’ 했던 스틸 작가가 함께했고요. 저도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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