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전교 3등때도 불행…난, 자퇴 13개월차 김동준입니다
밀실
학교 밖 청소년
"친구가 경쟁 상대로 보여 자퇴"
"공교육하에서 꿈 이룰수 없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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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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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아직 친척들한테 자퇴했다고 이야기도 못 했어요.
지난해 자퇴한 전푸른솔(18)양의 말입니다. 청소년 35만 8000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추산한 학교 밖 청소년, 소위 말하는 '자퇴생' 숫자입니다. 우리나라 교육 연령인구(7~18세) 580만명 중 약 6.2%에 해당합니다.
아직 자퇴생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자퇴생 학부모 김모(48)씨는 "아이가 처음 자퇴한다고 했을 때 ‘사회 부적응자’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 걱정이 앞섰다"고 했습니다. 청소년 비영리기관에서 활동 중인 전민서(15)양은 "‘넌 자퇴해서 인생이 망했고, 취업할 때도 불리할 거고,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몸 파는 일밖에 없을 것’이라는 성희롱도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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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자퇴생'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밀실팀은 학교 밖 청소년 6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이중엔 전교 3등을 했던 모범생, 고등학교 입학식 때 대표로 선서를 한 학생도 있었고요. 대부분 자퇴 전 자신들이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왜 학교를 나온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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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한 전교 3등, 학교 밖에서 뭐 하고 지내나
제가 전교 3등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친구들이 경쟁 상대로만 보였어요 김동준(17)군은 자퇴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는 "그땐 시험 성적이 인생의 전부였다"며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학교를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동준군은 "이제야 대학입시가 아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지난 9월 24~25일 밀실팀이 동준군의 일상을 따라가 봤습니다.
일반고등학교에선 1교시가 시작될 무렵인 오전 9시, 동준군은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비인가 대안학교 교실로 향합니다. 이곳에서는 도예, 연극, 프로그래밍, 수영 등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요. 동준군은 목공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3D 프린터로 스케이트보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동준군이 교실 의자에 앉아있던 건 5분 남짓. 2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선 채 선생님과 소통하고,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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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화상채팅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특별세일 기간에 수강신청을 한 덕에 강의료는 월 3만원만 냈다“고 자랑하며 "사회탐구 과목 인터넷 강의보다 훨씬 싸다"며 웃었는데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학교 밖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는 시간에 월 3만 원짜리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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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온종일 집에만... 지금은 바빠져서 행복해
또 다른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자퇴생들은 ‘시간이 많다’는 점을 학교 밖 생활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습니다. 1년 전 학교를 나온 최승범(18)군은 “시간이 많아 게을러질 수도 있다”면서도 “날씨 좋은 날 밖에서 친구들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고 했습니다. 민서양은 “처음 학교를 나왔을 땐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바빠져 기쁘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퇴생이라고 특별히 노는 법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법이 있냐'고 묻자 15개월 차 자퇴생 이소현(18)양은 “특별한 것은 없다”며 “다른 또래처럼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습니다. 5개월 전 학교를 나온 이윤경(18)양은 “여가 시간엔 평소 배우고 싶었던 드럼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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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선 차갑지만…자퇴 후회하지 않아요"
학교 밖 청소년이 모두 똑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35만 명 각자 다른 삶을 꾸려가고 있을 겁니다. 다만, 밀실팀이 만난 '학교 밖 청소년'들이 하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자퇴를 후회하지 않는다.”
윤경양은 “제빵사가 되고 싶어 조리고에 진학했었는데,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나치게 경쟁적인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승범군도 “온전히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며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보면 오후 9~10시에 끝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시간 낭비라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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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대부분은 주변의 반대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윤경양은 "가족들도 반대했고 선생님들도 '넌 지금 성적도 좋은데 왜 자퇴하려 하냐'고 했다"며 과거를 떠올렸는데요. 그는 "엄마, 아빠께 각각 내가 학교에 더는 있지 못하겠는 이유를 편지로 써 설득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소현양 역시 "‘대학 못 가면 죽는다’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당시 선생님이 ‘너 자퇴하면 인생 망할 수도 있다’라고 까지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소현양은 “학교 다닐 때는 시험 위주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여러 가지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을 할 수 있어서 시야가 더 넓어졌다”며 웃었습니다.
푸른솔양의 어머니는 “처음엔 자퇴를 반대했지만 ‘학교에만 가면 숨이 막힌다’는 아이의 말에 결국 허락했다”며 “책임감이 생기니 학교에 있을 때보다 아이가 스스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학교 밖 청소년 박예은(15)양의 아버지도 “처음엔 ‘도망쳤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가장 걱정됐다. 우리 때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을 ‘비정상’ 취급했기 때문”이라면서도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짓는 딸을 보고 걱정보단 믿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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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무작정 자퇴를 권하는 건 아닙니다. “자퇴는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는데요. 민서양은 “자퇴 후 삶에 책임 질 자신 없으면 그냥 학교에서 생활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며 "여전히 자퇴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워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홈스쿨링생활백서 송혜교 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은 문제를 일으켜서 퇴학당한 학생이 아니라 공교육 하에서 꿈을 이룰 수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자퇴를 권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퇴생을 양산하는 공교육 문제를 반드시 짚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밀실팀이 만난 청소년들과 달리 학교를 나와 방황하는 자퇴생도 있을 겁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자퇴를 한 학생도 일부 있을 거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학교 밖 청소년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도록 색안경을 벗고 응원하는 게 아닐까요.
편광현·김지아·최연수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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