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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중앙일보

‘미식 수도’ 홍콩에선 하루 일곱 끼도 모자란다

week&이 기획한 홍콩먹방투어

박찬일·박준우 스타 셰프 동행

17초마다 딤섬 팔리는 ‘팀호완’

한국 3분의 1 값에 고급 와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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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관광청과 함께 홍콩미식투어를 기획했다. 요즘 들어 TV 출연이 잦아진 박찬일(54)·박준우(36) 셰프도 동참했다. 석 달에 걸쳐 음식을 고르고 식당을 예약하고 일정을 조정해 ‘week&판 홍콩먹방투어’ 여정을 확정했다. 1년에 한국인 150만 명이 홍콩을 여행하는 세상, 우리에겐 다시 홍콩을 꿈꿔야 할 자극이 필요했다.

홍콩은 정말 먹거리가 많았다. 중식이든, 일식이든, 프렌치든, 심지어 스칸디나비안이든 가리지 않았다. 최고급 미식은 품격이 있어서, 길거리 음식은 온기가 있어서 좋았다. 홍콩은 작을지 몰라도 홍콩의 식탁은 크고 넓었다.


도시가 도통 잠들지 않으니 여행자라고 별수 없었다. 소화제로 거북한 속 달래며 꾸역꾸역 먹고 다닐 수밖에. 하루에 예닐곱 끼씩 해치워야 하는 여행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곤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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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딤섬은 음식을 넘어선다. 일종의 생활이자 문화다. 딤섬과 함께 아침을 여는 하루, 딤섬 주위로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 홍콩의 일상이다. 홍콩에서 딤섬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A Fact of Life)’이다.

딤섬(點心)은 가슴에 점을 찍는 것이다. 점을 찍듯이 간단히 먹는다는 뜻이겠다. 우리가 아는 만두가 흔하지만, 만두가 아닌 것도 많다. 가령 연잎밥·케이크·젤리·닭발 등도 딤섬이다. 차(茶)와 곁들이는 가벼운 음식이면 다 딤섬이다. 딤섬 집에 앉자마자 찻주전자가 놓이는 이유다. 딤섬은 광둥(廣東) 요리의 음차(飮茶) 문화에서 비롯됐고, 3000년에 걸쳐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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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2000가지가 넘는 딤섬이 있다고 한다. 딤섬 잘하는 집도 차고 넘친다. 개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가가 ‘17초마다 딤섬이 팔리는 집(홍콩 빈과일보)’ ‘팀호완(添好運)’이다. 팀호완은 전 세계에 40여 개 지점을 거느린 딤섬 전문 체인 레스토랑이다. 2009년 1호점을 열었고,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미쉐린 별 5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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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호완 본점에 오전 11시 30분 도착했다. 식당 앞은 벌써 긴 줄이 서 있었다. 슬쩍 대기표를 보니 194개 팀의 입장 기록이 적혀 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니까, 최소 2명씩만 와도 1시간 30분 만에 400명 가까이 왔다는 뜻이었다.

팀호완의 경쟁력은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포시즌스 호텔 출신 주방장이 빚는 딤섬이 1개 20∼30홍콩달러(약 3000∼4500원)에 나온다. 합석은 당연하다. 팀호완에서는 딤섬 주위로 전 세계 여행자가 모여 앉는다. 솔직히 맛의 차이는 잘 못 느꼈다. 대신 아우라는 확실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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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미쉐린 별 3개를 딴 광둥 요리 전문 레스토랑은 2곳뿐이다. 2009년 중식 최초로 3스타를 받은 ‘룽킹힌(龍景軒)’과 2016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3스타를 거머쥔 신흥 강자 ‘탕코트(唐閣)’다. 침사추이(尖沙咀) 램함 홍콩 호텔 2층에 있는 탕코트에서 광둥 요리의 한 정점과 조우했다.

탕코트는 당나라 정원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당나라풍으로 내부를 꾸몄다. 이를테면 이백·두보 같은 당나라 시인의 이름을 딴 별실을 뒀다. 우리 일행은 두보 별실에서 6가지 코스 만찬을 즐겼다. 매콤한 랍스터 구이는 졸깃거리는 식감이 좋았고, 특수 제작한 게 모양 그릇에 담긴 게살크림볶음밥은 입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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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인력 35명을 거느린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총주방장 웡치파이(黃智輝·43). 처음엔 너무 젊어서 놀랐다. 그러나 조리 경력이 25년이란 얘길 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 하나하나에서 자부심이 배어 나왔다. 여전히 불을 만진다는 그의 손은, 오랜 세월 불에 데고 칼에 찔려 흉터투성이였다. 영락없는 장인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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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번화가의 ‘모트32(MOTT32)’는 홍콩의 모던 중식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다. 이 집에서는 분위기에 압도됐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철제 계단을 내려가니 고급 클럽처럼 어두컴컴한 실내가 나타났다. 도무지 중국집 같지 않은 전경. 홍콩 디자이너 조이스 왕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지난해 남대문시장 옆에 문을 연 레스케이프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 ‘팔레드 신’이 이 집의 분위기를 차용했다. 모트32라는 이름은 1851년 미국 뉴욕에 문을 연 중국 식료품점의 주소(32 Mott St.)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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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미식의 수도. 『론리 프레닛』 홍콩 편의 첫 구절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무튼, 홍콩에는 온 인류의 음식이 다 모여 있고 온 지구의 식재료가 집결해 있다.

유난히 홍콩 요리가 다양한 건, 광둥 요리의 특징에서 연유한다. 예부터 서양과 교류가 잦았던 광둥 지역에선 서양 소스를 넣은 조리법이 발달했다. 동양 식재료와 서양 기술이 만나 지금의 홍콩 요리를 이루었다. 서양식으로 바싹 구운 빵에 동양식의 찐 계란을 넣은 에그 타르트(홍콩식으로 ‘단탓’)가 홍콩 음식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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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미쉐린 1스타를 받고 홍콩에 진출한 ‘더 플라잇 엘크’에서 사슴고기 스테이크를 먹었고, 레스토랑 안에서 종합격투기 강습을 하는 이색 레스토랑 ‘센서리 카페’에서 일식 장어덮밥과 유럽식 샐러드를 맛봤고, 홍콩 최대 맥주 브루어리 ‘영 마스터’에서 홍콩 맥주를 마셨다. 홍콩미식투어의 묘미는 의외로 다국적 식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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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배우 저우룬파(周潤發)의 고향 라마 섬에선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선착장 근처 해산물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가 매우 훌륭했다. 와인을 전공한 두 셰프의 활약으로 고급 와인을 한국보다 3분의 1 가격에 즐겼다. 먹는 일에도 안목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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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5만 개가 넘는 식당이 있다. 이 중 2만 개가 점포가 있는 식당이고, 나머지 3만여 개가 ‘다이파이동(大牌檔)’, 즉 포장마차다. 다이파이동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유공자 가족을 위해 홍콩 정부가 허가를 내준 식당을 가리켰는데(일반식당보다 면적이 커서 이름에 ‘다이(大)’가 들어갔다), 지금은 흔히 길거리 노천식당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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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람은 아침도 사 먹는다. 홍콩의 미식 문화가 발달한 이유가 홍콩 사람이 매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기 때문이고, 홍콩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도 홍콩 사람이 밤낮없이 사 먹고 다녀서다.

홍콩의 아침 밥상은 다양하다. 홍콩식 죽 ‘콘지’만 떠먹기도 하고, 푸짐하게 거위 요리를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닭고기 등을 얹은 홍콩식 라면도 홍콩인이 애용하는 아침 식사다. 그 유명한 홍콩의 밀크티도 아침의 필수 메뉴다. 박찬일 셰프의 말마따나 설탕 3봉지가 들어가야 입맛에 맞았다. 참, 홍콩에서 거위 오른쪽 다리는 함부로 먹는 게 아니다. 어른이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슬쩍 양보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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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지도 종류가 허다하다. 흥미로운 장면은, 우리네 보신원처럼 한약 냄새 밴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홍콩인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들어간 집에서 생전 처음 자라 젤리를 맛봤다. 의외로 먹을 만했고, 든든했다. 홍콩 요리의 뿌리는 광둥 요리고, 광둥 요리의 철학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음식은 약과 같다)’이다. 우리네 믿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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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몽콕 시장을 둘러봤다. 시장 골목에만 들어서면 두 셰프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리 달린 건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광둥 요리의 현장인 만큼 온갖 해괴한 식재료가 즐비했다. 내 눈에는 일부러 피를 바른 생선과 고기가 띄었다. 홍콩에서는 살이 빨개야 신선하다고 믿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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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도 의례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다이파이동으로 돌아와 국수를 마셔야 비로소 홍콩의 하루가 저물었다. 비좁은 식당에서 홍콩인들과 밥상을 나눴다. 땀내 나는 그들 속에 섞여 그들처럼 허겁지겁 국수를 마셨다. 문득 홍콩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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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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