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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회 먹어보셨나요? 봄 바다가 주는 달콤 짭조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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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은 회가 제일 맛있어요. 네, 초장 찍어 먹는 회요. 그 딱딱한 걸 어떻게 생으로 먹느냐고요? 저런, 통째로 먹는 건 미더덕이 아니랍니다. 미더덕은 껍질 벗겨내고 먹는 거예요. 겉껍질, 속껍질 모두요. 속껍질 안 벗기고 씹으면 물이 터져 나오죠? 네, 바닷물 맞아요. 개흙 섞인 바닷물이에요. 그걸 맛있다고 여태 드셨다니….”


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지리산 자락 노란 산수유꽃에서? 산사에 홀로 핀 매화에서? 남해안의 작은 포구마을에서 봄은, 저 짙푸른 바다에서 올라온다. 손가락만 한 미더덕이 그물에 덕지덕지 딸려 오면 진동만 포구마을은 봄을 맞이하느라 분주해진다. 미더덕 수확으로 정신없는 경남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에서 달콤하고 짭조름한 봄을 맛보고 왔다. 고현마을은 전국 미더덕의 70%를 생산하는 미더덕의 고장이다.



미더덕 vs 오만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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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더덕에 관한 오해부터 풀자. 우리가 여태 미더덕이라 알고 먹었던 해물은 ‘오만둥이’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해물찜이나 매운탕을 떠올려보자. 울퉁불퉁한 해물을 건져 한입 깨물었더니 뜨거운 국물이 확 터져 나왔다면, 그것은 미더덕이 아니라 오만둥이다. 만에 하나 그게 진짜 미더덕이었다면 더 큰 일이다. 미더덕은 겉껍질은 칼로 깎아내고 속껍질은 터뜨려 속을 씻어낸 뒤 먹어야 해서다. 미더덕 겉껍질은 단단하고, 속껍질 안에는 진흙 섞인 바닷물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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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과 오만둥이는 생김새도 다르다. 미더덕은 타원형이고, 오만둥이는 뭉툭한 돌멩이 같다. 지역마다 미더덕을 ‘참미더덕’, 오만둥이를 ‘개미더덕’이라 하기도 한다. 껍질 벗겨낸 미더덕 알맹이는 멍게와 맛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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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요즘이 미더덕 철이다. 보통 2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다. 6월이 지나면 살이 물러져 못 먹는다. 미더덕을 회로 먹을 수 있는 계절도 3∼4월, 딱 이맘때다. 속껍질까지 깐 미더덕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고현어촌체험마을 김형수(60) 어촌계장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2월 미더덕은 새끼손가락만큼 크고, 3월은 약지, 4월은 중지만큼 큽니다. 10㎝까지 크는 놈들도 있습니다. 올해는 한 달 정도 미더덕이 빠릅니다. 3월 초순부터 중지까지 큰놈들이 올라옵니다.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입니다.”



해적생물 vs 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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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더덕은 거름으로나 쓰던 해물이다. 해적생물 취급을 당했다. 양식 어민에 하등 필요가 없는, 되레 해를 끼치는 해양생물이어서였다. 피조개나 가리비를 키우던 진동만 어민에게 미더덕은 오랜 세월 성가신 갯것이었다. 대반전이 일어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양식에 성공한 뒤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진동면 고현마을은 약 220가구 약 470명이 사는 작은 포구 마을이다. 이 포구 앞바다에서 1년에 미더덕 2500t이 생산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일개 리(里) 단위 마을에서 전국 생산량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특산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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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 앞바다에서 나는 미더덕은 ‘진동 미더덕’이라고 따로 부른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리적 표시제로 인증한 이름이다. ‘횡성 한우’ ‘보성 차’ ‘의성 마늘’처럼 미더덕 앞에는 ‘진동’이 붙는다. 다른 지리적 표시제 등록 제품은 시·군 단위 제품이 대부분이지만, 진동 미더덕은 면(面) 단위 제품이다. 미더덕은, 이제 창원으로 이름이 바뀐 마산의 대표 특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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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알아둘 게 있다. 미더덕은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먹이를 챙겨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12월쯤 그물을 내리면 미더덕이 알아서 붙는다. 놀라운 건, 미더덕 철이 지나면 오만둥이 철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오만둥이도 먹이가 필요 없다. 고현 앞바다는 미더덕과 오만둥이가 번갈아 올라오는 연중무휴 노다지 밭이다.



봄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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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봄엔 상인 120여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미더덕을 까서 팝니다. 우리 시장은 봄철 서너 달 장사로 1년 매출을 거의 다 채웁니다. 작년엔 평균 매출의 절반도 못 했어요. 올해도 축제는 취소됐는데, 드라이브 스루로 판매는 가능하다니까 많이 찾아주세요.”


16일 진동시장 김만국(68) 번영회장과 함께 시장을 한 바퀴 돌아봤다. 온갖 종류의 제철 해물이 나와 있었다. 미더덕이 제일 많았고, 딱새우·털게·바지락·개조개·미역·파래·다시마·톳도 흔했다. 시장 곳곳에서 미더덕을 까고 있었다. 사과 깎듯이 미더덕을 돌려가며 겉껍질을 깠다. 봄철엔 일당 받고 미더덕만 까는 아르바이트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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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은 멍게에 비해 맛과 향이 은은하다. 하여 멍게와 달리 미더덕은 된장찌개에 들어가도 잘 어울린다. 양식에 성공하기 전에도 미더덕은 먹었다. 그때는 된장찌개나 해물찜에 넣는 게 전부였다. 요즘엔 종류가 다양해졌다. 회로도 먹고, 무침이나 덮밥으로도 먹는다.


고현마을에서 미더덕으로 음식을 내는 식당은 모두 여섯 곳 있다. 메뉴도 비슷하고, 맛도 별 차이가 없다. 미더덕이 봄철 별미로 개발된 게 20년이 안 되니, 대를 이어온 손맛이 있을 리 없다. ‘미더덕모꼬지맛집’에서 회, 무침, 덮밥을 먹었다. 미더덕을 오물오물 씹다 보니 고소하고 싱그러운 맛이 꼬물꼬물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봄은 이미 입안에 있었다.


창원=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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