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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무대 선 미혼모들…"예쁜 내 아이, 행복의 이유죠"

지원받는 돈에서 아이 분유값, 교통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한 달에 1만원 정도. 그 돈을 모아 시설의 다른 엄마들과 한 달에 한 번 치킨을 시켜먹는 게 미혼모 A씨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치킨을 먹으면 행복해지겠지. 그런데 우린 치킨 한 번 시켜먹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뮤지컬 '히시(heshe) 태그' 속 한 장면입니다. 히시태그는 CJ나눔재단 후원으로 문화콘텐츠 기획 제작사 벨라뮤즈와 미혼모협회 인트리가 제작한 뮤지컬입니다. 실제 미혼모 5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뮤지컬에 담긴 내용 모두 그들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 속 등장인물들은 극 특성상 다소 과장은 있었지만 무척 현실적이었습니다. 임신한 주인공에게 "돈 좀 빌려달라"고 말하는 남자친구, 아이와 함께 택시에 오르자마자 "주말인데 남편 없이 애기랑 어디 가냐"고 묻는 기사, "내 아들 인생 망칠 생각이냐"며 주인공을 향해 소리지르는 전 남자친구의 엄마, 떼 쓰는 아이에게 크게 짜증을 냈다가 후회하는 주인공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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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이야기' 취재팀은 18일 이 뮤지컬을 관람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울 때는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미혼모들의 연기는 전문 배우가 아님에도 진정성이 묻어났습니다.


무대 막이 내린 뒤 취재진이 소감을 묻자 장내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프로 배우, 엄마 배우 할 것 없이 "서로를 만난 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펑펑 눈물을 흘렸는데요. 그만큼 배우들 간의 유대감이 연습기간 동안 깊어졌다는 뜻이겠죠.


취재팀은 무대를 마치고 배우들이 잠시 휴식 중일 때 배우 김다현(22)·김명지(21)씨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16개월, 13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입니다.


김명지="많은 사람들이 보는 뮤지컬 무대에서 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한편으론 많이 불편했어요. 제겐 아픈 기억들이니까요. 연습 때 많이 울었죠. 그때마다 같이 출연하는 배우·스태프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감정들을 공유했어요. 그게 큰 힘이 됐던 거 같아요."


김다현="사실 주목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처음 연습할 때는 많이 불편했어요. 그때마다 프로 배우님들이 '못해도 되니까 할 수 있는만큼만 하면 된다'고 말해줬어요.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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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두 사람의 일상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명지씨는 얼마 전 한 푼 두 푼 모든 돈으로 처음으로 아이와 커플티를 사서 함께 입었습니다. 다현씨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가 이렇게 예뻐요' 라고 자랑하고 싶답니다. 취재팀에게도 영상을 보내줬는데 '자랑할 만한' 귀여움이었습니다. (흐뭇)


김다현="저는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 막연한 행복만을 추구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일상에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잘 못 받았는데 막상 아기를 만나고 나니까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지고 감사해지더라고요."


김명지="'애 아빠는 어디 갔냐''애기 핑계로 나랏돈 받아먹냐' 이런 편견 섞인 시선들은 이제 신경 안 써요. 근데 아이한테 주고 싶은 건 많은데 줄 수 없을 때 너무 슬퍼요. 남들은 쉽게 사주는 장난감 하나도 난 돈이 없어서 못 사줄 때? 애기 과자도 은근 비싸요."


명지씨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자 다현씨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현실'에 대한 문제로 넘어갔는데요.


김다현="주민센터에 갔는데 전 수급 기준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님 재산 때문에. 무조건 '안 돼요'라고 해버리니까 너무 절박해지는 거예요. 아기 낳은 뒤로 부모님한테 지원받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김명지="엄마들한테 수급을 해줄 때 조건이 '아기가 돌 되면 자립해라'예요. 근데 그러려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학원 다니면서 자격증을 따고,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요. 그렇게 적응을 시켜놓고 남은 학원 과정을 마친 뒤에야 돌 때 자립을 할 수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또 100일 이하 아기는 안 받아요."


두 사람에게 '꿈'을 물었습니다. 명지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꿈인 다현씨는 요즘 수제화 만드는 걸 배우고 있는데, 언젠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다현씨와 명지씨는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기가 편견없는 사회에서, 편견없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면서요.


※또다른 김모씨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www.youtube.com/channel/UCWnyqTsk86NFkmzranBFkLw


'김모씨이야기' 취재팀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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