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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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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씨름에 이만기-강호동의 대를 이을 만한 ‘괴물’이 탄생했다.


올해 21세의 신예 김민재(21·영암군 민속씨름단)가 주인공이다. 씨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씨름을 다시 일으켜 세울 보물이 나타났다”고 칭찬한다. 울산대 2학년이던 지난해 6월 단오장사대회 백두급(140㎏ 이하)을 평정한 게 ‘괴물 탄생’의 출발점이었다. 11월에는 내로라하는 씨름판의 강자들을 줄줄이 꺾고 천하장사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지난 1985년 이만기(당시 경남대 4학년) 이후 37년 만에 대학생 천하장사가 등장하자 씨름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본격적으로 민속씨름 무대에 뛰어든 올해도 김민재의 연승 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1월 설날장사에 이어 2월 문경장사까지 석권하며 21경기를 잇달아 승리로 장식했다. 지난 1일 전남 영암군 훈련장에서 만난 김민재는 “적어도 올 한 해는 연승 행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전관왕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13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평창오대산천 장사대회 백두장사 결정전을 포함해 올해 열리는 나머지 모든 대회에서 승리할 경우 산술적으로 27승을 보탤 수 있다.


괴물 김민재의 주무기는 들배지기(샅바를 잡아당기며 상대를 배 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몸을 회전시켜 넘어뜨리는 기술)다. 키 1m89㎝, 체중 140㎏의 거구지만, 경기 중 무게중심을 자유자재로 옮겨가며 경량급 못지않게 화려한 기술 씨름을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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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비결은 빼어난 운동 능력이다. 최근 전남스포츠과학센터에서 측정한 김민재의 신체적 능력은 ‘수퍼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근력의 척도로 여겨지는 3대 중량(스쿼트·데드리프트·벤치프레스) 합계에서 780㎏을 찍었다. 스쿼트와 데드리프트에서 각각 290㎏을 들어 올렸고, 벤치프레스로 200㎏을 보탰다. 배근력(등 근육으로 들어 올리는 힘)은 276㎏을 기록했다. 백두급 씨름 경쟁자들을 넘어 해머던지기 등 육상 투척 종목 선수나 역도 선수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힘으로 밀어붙여 끝내는 스타일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서전트 점프(제자리 뛰기) 측정 결과 58㎝로 거구임에도 탄력이 뛰어나다. 소리 반응 속도는 0.229초로 단거리 육상선수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김기태 영암군 민속씨름단 감독은 “김민재 장사는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낼 만한 운동 신경을 갖췄다”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거나 스텝 변화를 통해 중심을 무너뜨리는 등 지능적인 플레이에도 능하다”고 칭찬했다.


김민재는 “강한 힘을 타고난 건 감사한 일이지만, 씨름에는 ‘역칠기삼(力七氣三·힘이 7할이고 기세가 3할이라는 뜻)’이란 말이 있다”면서 “충분한 준비와 경기 환경, 마인드컨트롤까지 모든 게 맞아 떨어져야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기세를 중시하는 이유는 힘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학창시절에 일찌감치 체득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이미 힘으로는 당해낼 적수가 없었지만, 좀처럼 우승 이력을 쌓지 못했다. 김민재는 “어릴 땐 지는 게 두려워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다”면서 “지고 나서 운 적도 많다. ‘열심히 하는데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자괴감이 머릿속에 가득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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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진학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김민재는 “1학년 때 ‘이기든 지든 모두가 한순간일 뿐’이라는 주명찬 감독님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비웠다”면서 “한 번의 경기에 목숨을 걸듯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요즘 모래판에 오르기 직전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다. 몸을 한 차례 두드린 뒤 “신난다, 재미있겠다, 설렌다”를 나직하게 속삭인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와의 승부를 온전히 즐기자는 의미를 담은 ‘루틴(집중력을 높이는 버릇)’이다.


김민재는 “정부에서 올해 초 ‘K-씨름 진흥 방안’을 발표하는 등 씨름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힘이 난다. 어린이들이 호날두와 메시를 보며 축구 선수를 꿈꾸듯 이들에게 ‘씨름은 매력적인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면서 “운동에 소질 있는 아이들이 모래판을 선택하는 날이 올 때까지 밑거름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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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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