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그를 '아버지'라 불렀다···치밀했던 캄보디아 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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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한모(58)씨는 ‘아버지’라 불렸다. 나이 차이가 10살 내외밖에 나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그에 대한 호칭은 ‘아버지’였다. 법정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해 그를 거리낌 없이 ‘아버지’라 부르던 이모(46)씨는 “안 지 1년이 지나니 그만큼 사람이 인간적으로 좋아 그렇게 불렀다”고 말했다.
‘아버지’ 한씨는 캄보디아 한 호텔에서 이씨 부부에게 필로폰을 줬다. 믹스커피에 같이 타서 먹으라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판사는 이씨에게 “아버지가 필로폰 먹으라고 커피에도 타주는가”라고 되물으며 “드러나지 않게 아버지라고 부른 것 같지만 더 추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캄보디아를 드나들며 필로폰의 국내판매총책을 맡았다.
‘어머니’라고 불리는 존재도 있었다. 캄보디아에 거주하며 한씨와 동거하는 채모(여)씨다. 캄보디아에서 필로폰 제조·판매·유통을 모두 책임진 한씨를 도와 채씨도 범행에 가담했다. 채씨는 주로 한씨가 한국에서 모집한 여성 운반책들에게 속옷에 숨겨 필로폰을 밀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지난 17일 ‘캄보디아 마약왕’으로 알려진 한씨와 채씨에 대한 결심 공판을 열었다. 한씨와 채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등으로 지난 2월 구속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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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부인 최씨는 자신의 지인들인 30~60대 주부 또는 무직 여성들을 한씨에게 소개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관광을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캄보디아로 건너가 호텔에서 필로폰을 건네받은 뒤 브래지어나 팬티 속에 숨겨서 입국하는 방식을 썼다. 검거 당시 이들은 대부분 “공업용 다이아몬드라고 해서 그렇게 알았다”라는 일관된 진술을 했다. 이런 수법으로 한씨가 국내에 밀반입해 판매한 필로폰 양은 6kg 정도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임을 감안할 때 20만 번 투약할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밀반입한 필로폰은 유튜브 등을 통해 광고하고 텔레그램(보안성이 높은 해외 메신저 앱)을 통해 국내 투약자와 거래한 후 ‘던지기’수법으로 판매했다. ‘던지기’란 마약 구매자가 돈을 입금하면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 놓고 이를 찾아가도록 장소를 알려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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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경찰서는 1월 21일 한모(58)씨 등 일당 25명과 투약자 18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캄보디아에서 마약 거물로 활동하던 한씨는 인터폴에도 수배됐던 인물이다. 경찰은 2017년 5월 단순 투약자 검거부터 시작해 국정원과 공조를 통해 해외로 수사망을 넓혀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국정원 및 경찰청 외사국 협조 요청받아 캄보디아 경찰과 공조했으며 지난해 12월 한씨 등을 현지서 검거해 국내송환했다. 현재 한씨는 자신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날 한씨에게는 징역 12년에 추징금 4억7300여만원을, 가담 정도가 한씨보다 적은 채씨에게는 징역 10년과 추징금 4억7300여만원을 구형했다. 한씨와 채씨에 대한 선고 재판은 6월 19일에 열린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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