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복판에 홍대포차? 영국인들 줄서서 소맥 말아 먹는다
영국 런던의 한식당 '요리'. 종업원도 손님도 현지인이 대부분이다. 한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에 특히 인기가 많다. 젓가락질은 서툴지만 밥상 앞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백종현 기자 |
‘banchan(반찬)’ ‘dongchimi(동치미)’ ‘samgyeopsal(삼겹살)’ ‘mukbang(먹방)’….
10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새로 추가된 한국어 단어들이다. ‘오빠’ ‘대박’ ‘애교’ 등 한국어 단어 26개가 등재됐는데, 음식 관련 단어가 9개로 유독 많았다. 한국 음식의 세계적 파급력과 영국 내 K푸드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류 열풍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근래 영국의 한식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수도 런던을 중심으로 한식 레스토랑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지난달 런던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런던에서 한식당을 찾는 건 아주 쉬웠다. 한인타운이 있는 뉴 몰든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코벤트 가든, 피카딜리 서커스 같은 번화가에서도 한식당이 널려 있었다. ‘김치’ ‘고기’ ‘홍대포차’ ‘강남포차’ ‘갈비’ ‘온더밥’ ‘비빔밥’처럼 정겨운 한국어 간판을 내건 한식당이 시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런던에만 100곳이 넘는 한식당이 있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로 유명한 영국인 조쉬와 올리도 최근 런던에 한국식 토스트 가게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런던 한식당 '요리'에서 맛본 김치볶음밥, 떢볶이, 해물 파전. 상차림만 보면 서울의 한식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백종현 기자 |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인근의 ‘요리(Yori)’. 2016년 12월 문을 연 한식당인데, 런던에만 매장 8곳을 둘 만큼 인기가 대단한 명소다. 삼겹살 10.9파운드(약 1만7000원), 떡볶이 8.9파운드(약 1만4000원), 제육볶음 9.9파운드(약 1만5500원), 소주 10.5파운드(약 1만6500원) 등 메뉴판에는 친숙한 한국 음식이 가득했다. 3층 규모의 가게 안이나 밖의 대기 줄 어디에도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김치전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영국인 커플, 젓가락질이 서툴러 숟가락에 손까지 동원하는 영국 10대의 모습은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김종순(40) 대표는 “손님이 95% 이상이 현지인”이라며 “삼겹살과 떡볶이가 제일 잘 팔리고, 젊은 층은 소주와 맥주를 따로 시켜 소맥을 만들어 먹을 만큼 한국 문화에 밝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런던 레스터스퀘어에 오픈한 ‘분식(Bunsik)’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식 핫도그와 떡볶이를 파는 가게로 주말이면 대기 줄 때문에 인도가 꽉 막힐 정도다. 런던 소호에선 ‘홍대포차(Hong dae po-cha)’가 핫하다. 우리네 포차 문화를 그대로 느끼려는 현지인이 많이 찾는다. 옛날식 간판, ‘산지직송’ ‘예약환영’ ‘안주일체 포장가능’ 같은 익숙한 문구들로 가게 안팎이 꾸며져 있다. 골뱅이 소면 무침, 닭똥집, 두부 김치, 라면 등을 판다.
한국식 핫도그 전문점 '분식(위 사진)'과 술집 '홍대포차'. 최근 런던에서 현지인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선효정, 주한 영국관광청 |
런던 내 한식의 인기에는 한류 인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한류 문화가 영국 주류가 된 이유’라는 기사에서 “‘오징어게임’ 이후 영국 마트에서 한국 식재료 매출이 급증했다”고 밝히면서 “한식당은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길거리 음식과 건강에 좋은 요리까지 두루 갖췄다”고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김종순 대표는 “K팝과 BTS의 꾸준한 인기 덕분에 코로나 타격에도 잘 버텼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15년째 거주하는 강형석(43) 가이드는 “15년 전과 비교하면 모든 게 달라졌다”며 “BTS, 손흥민, 오징어게임의 인기 속에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음식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영국)=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