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 8년 팠더니, 독립국 됐다…'남이섬 동생' 탐나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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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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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내려와서 뭐했느냐고? 땅 팠지. 땅인 줄 알고 팠는데, 돌밭이네? 파도 파도 돌이 나오네? 그래도 팠지. 파다 파다 연못도 팠지. 물이 없잖아. 빗물 받아서 만든 연못이 80개가 넘어. 나무도 심었지. 풀밖에 없었거든. 몰라, 5만 그루는 훨씬 넘어. 그러다 보니 8년이 지났네. 이젠 제법 원래 있었던 것처럼 보여. 그래서 문 여네. 강우현이 제주도에 만든 야외 갤러리.”
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68) 대표가 제주도로 내려간 지 8년째. 강우현 대표의 또 다른 상상나라 ‘탐나라공화국’이 4월 30일 정식 개장한다. 지난 8년, 제주도에 들 때마다 한림의 이 중산간 초원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지난 8년 세월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데, 강 대표의 꿍꿍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일까. 이 엄혹한 코로나 시기에 그랜드 오픈을 선언한 제주 탐나라공화국의 정체를 문답식으로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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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라공화국이면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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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맞다. 다만 가상 국가다. 화폐도 가상이 있는데, 나라라고 가상이 없을까. 관광학에선 국가 체제를 빌려 국가 흉내를 내는 테마파크를 ‘초소형국가체(Micronation)’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120개가 넘는 마이크로네이션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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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네이션? 장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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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있다. 남이섬. 스스로 ‘나미나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물론 강우현 대표가 만들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2006년 3월 1일 독립을 선포했다.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한 뒤 남이섬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를테면 남이섬 곳곳에서 휘날리는 만국기. 중국 국기와 대만 국기가 나란히 펄럭인다. 대만 관광객이 대만 국기를 아래에서 감격 어린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왜? 대한민국에선 좀처럼 대만 국기를 볼 수 없어서다. 대한민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공식 외교 관계를 끊었다. 나미나라는 독립국이어서 대한민국 외교 관계와 무관하다는 게 강우현 대표의 주장이다. 마이크로네이션은, 국가라는 경계를 허무는 마케팅 차원의 도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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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면 구성 요소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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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라공화국 정문을 통과하면 출입국관리소(Immigration)가 있다. 대한민국에선 매표소라 부르는 이곳에서 비자나 여권을 발급받아야(입장권을 사야) 입장할 수 있다. 해외여행이 금지된 시절이니 이 같은 사소한 절차도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정부 조직도 진용을 갖추는 중이다. 최근 탐나라공화국은 이만희 전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을 환경학교 교장에, 이배용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정신문화원장에, 조석준 전 대한민국 기상청장을 기상청장에 임명했다. 대한민국 유명 인사가 속속 탐나라공화국 망명을 선언하고 있다. 모두 강우현 대표를 믿고 따르는 오랜 인연들이다. 강우현 대표는 탐나라공화국에서만 통용되는 가상화폐도 곧 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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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라공화국에는 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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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있다. 다만 사람이 만든 자연이 있다. 8년 전의 탐나라공화국은 널따란 초원이었다. 제주도 동쪽 중산간 10만㎡(약 3만 평) 대지에 풀밖에 없었다. 앞서 인용한 강우현 대표의 말처럼, 이 풀 덮인 돌밭을 허구한 날 파고 헤집고 가꾸고 덮고 쌓고 부수고 세우고 심고 허물고 만든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다. 풀 몇 포기 빼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새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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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황량했다. 땅을 죄 엎었으니 공사장 같았다. 시간이 해결해줬다. 묘목이 성장해 그늘을 만들고, 바위에 이끼가 끼면서 자연이 자연스러워졌다. 자연이 자연다워지니 시끄러워졌다. 온갖 새가 날아들어 온종일 울어대고, 빗물 모아둔 연못이 언제부터인가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시끄럽다. 빗물은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와 함께 식수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마무리 단계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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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땅만 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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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땅을 파다 큰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비켜 땅을 팠다. 그랬더니 암반지대 ‘빌레’가 자연스레 드러났고, 바위와 바위를 따라 길이 생겼다. 파낸 흙으로 산을 쌓았고, 산 아래에 연못을 팠고 연못을 건너는 다리를 놨다. 강 대표도 이제는 10m 넘게 솟은 산의 원래 모습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던가. 중국 고사가 제주 중산간에서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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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는 “돌과 놀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제주도 돌이 현무암이다. 용암이 굳어 현무암이 됐다. 강 대표는 현무암을 녹였다. 흘러내린 현무암으로 기념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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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탐나라공화국 국민(직원)은 강 대표를 포함해 28명이다. 이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미술 전공자다. 탐나라공화국에선 ‘미대 오빠’가 붓 대신 삽을 든다. 탐나라공화국은 밀도가 높다. 구석구석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다. 강 대표는 탐나라공화국을 “내 인생 마지막의 야외 갤러리”라고 부른다. 탐나라공화국엔 강 대표 유언을 새긴 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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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5만 그루는 어디서 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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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산 것도 있지만, 대부분 공짜로 얻었다. 나무가 필요하다고 소문을 내니 지역 주민이 “우리 밭의 나무도 캐 달라”며 찾아왔다. 경남 하동군은 차나무 1만5000주, 한화그룹은 소나무 2400주, 공무원연금공단은 100주를 기부했다. ‘품앗이 외교’는 남이섬을 나와서도 이어졌다. 강 대표는 한 달에 두어 번 육지로 올라가 자치단체와 기업에 관광 조언을 해주고 있다. 참, 꽃도 품앗이의 성과다. 강 대표는 2014년 제주도로 내려왔는데, 처음 몇 년 꽃씨를 갖고 오면 현장을 보여준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이 꽃씨를 들고 공사판을 구경하려고 왔다. 그 꽃씨들이 지금 탐나라공화국을 환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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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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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소 천장의 전등은 돼지 여물통을 재활용해 만들었고, 정문 옆의 탑 조형물은 중문단지에서 내다 버린 풍력발전기 날개를 세운 것이다. 헌책박물관엔 전국에서 보내준 헌책 30만 권이 있다. 이와 같은 재활용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탐나라공화국에서 남이섬이 연상된다면, 남이섬의 자연 친화적이고 재활용 우선 원칙이 여기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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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번 개장하지 않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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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라공화국은 2014년 2월 첫 삽을 떴다. 이듬해부터 거의 해마다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다. 2015년 노자예술관을 열었고, 2017년 노랑축제를, 2018년 헌책페어와 국제도자워크숍을 개최했다. 그러나 두어 달 열었다 다시 닫았다. 일종의 시험 운영 같은 것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강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또 닫는다는 건 영영 닫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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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라공화국은 4월 30일부터 6주간 매주 부문별 개장 행사를 한다. 탐방 예약 가능 인원은 하루 100명이다. 비자(당일 이용권) 발급 비용이 1만원이니 예약이 꽉 차도 하루 100만원 수익이 전부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내가 제주도에 또 하나의 관광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순 살에 제주도에 내려와 칠순을 바라보는데, 이제 겨우 풍경이 편안해졌어요. 오늘보다 내일이, 올해보다 10년 뒤가 더 좋을 겁니다. 이렇게 들쑤셔놨으니 원상 복구는 힘들 테고. 내가 없어도 여기는 남겠지요. 제주도에 미래유산 하나 남기겠다는 마음입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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