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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중에도 하늘 본다"…실제 '기상청사람들' 놀란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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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의 총괄예보 2팀 과장인 진하경. JTBC

그걸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요. 아무도 몰라주면 어때.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지. 지난달 시작한 JTBC 주말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1화에 등장한 대화다. 실제 기상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 대화가 그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했다. '오보청'이란 비난도 받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기상청 사람들'은 국내 최초로 기상청을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다. 선영 작가가 2년간 기상청으로 출퇴근하며 대본을 썼다. 드라마 속 인물의 모델이 된 기상청 예보관들에게 실제와 비슷한 드라마 속 장면을 들어봤다.

#1. 6급 예보관 "분명 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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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이시우와 한기준이 장마 설명자료를 함께 만드는 장면. JTBC

어느 봄날 오후 2시 위성 '천리안'이 강원도 영서지방에 피어난 작은 구름을 관측했다. 선배 예보관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지만 6급 예보관 이시우(송강 분)는 1시간 안에 서울에 비가 내린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만든 설명자료까지 국가기상센터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 총괄예보과장인 진하경(박민영 분)은 "근거가 부족하니 지켜보자"며 회의를 마쳤다.


실제 기상청 예보관들은 선배들과 다른 의견을 내는 회의 장면이 가장 실제와 비슷하다고 했다. 기상청 직원 1300여명은 대부분 기상학이나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석·박사 비율이 높고, 공무원 시험엔 지구과학 과목이 있다. 한상은 예보분석관은 "예보 토의 땐 모두가 자신을 과학자라고 생각한다. 근거가 있다면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박정민 통보관도 "기상청에서 각자 맡은 분야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계급장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2. 집이 어색한 베테랑 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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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엄동한 예보관이 아내와 다투는 장면. JTBC

기상청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는 등장인물은 전국 기상대와 지방청 곳곳에서 일한 예보관 엄동한(이성욱 분)이다. 14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엄동한은 집안일을 도와주려다 아내와 다퉜다. 아내에게 "당신은 날씨에 미쳤다. 딸이 태어날 땐 남해에서 관측선을 탔고 초등학교 입학식 땐 백령도 기상대에서 근무 중이었다"는 소리도 듣는다.


실제 기상청 직원들은 집에 들어가는 날이 비교적 적다고 한다. 전국 7개 지방청, 2개 지청, 6개 기상대를 옮겨 다니는 순환근무제 탓이다. 특히 예보나 실황 감시를 맡으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해 장거리 출퇴근이 어렵다. 한상은 예보분석관은 "최근엔 많이 좋아졌지만 실제 아이 출산이나 입학·졸업식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희아 예보관도 "드라마에서 '과장님은 결혼하지 마세요'라는 조언에 공감했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3. 캠핑 데이트에 하늘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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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데이트를 가서도 하늘을 보는 진하경, 이시우 사내커플. JTBC 캡처

이시우, 진하경의 캠핑 데이트 장면은 퇴근 후 기상청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동료들의 눈을 피해 캠핑장으로 떠난 두 사람은 핸드폰으로 실시간 기상 정보를 확인했다. 예보와 달리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핸드폰을 보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계속 하늘을 바라봤다.


실제 사내 연애 후 결혼한 우진규 예보분석관은 이 장면을 '기상청 커플'의 일상이라고 말했다. 우 예보분석관은 "나도 결혼 전 아내와 만날 때마다 날씨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사내 커플이 아닌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박정민 사무관은 "과거 친구들과 놀러 가선 하늘의 구름 모양을 설명하다가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한텐 날씨가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4. 오존 주의보에 쏟아진 항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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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총괄예보2팀 직원들. JTBC

근무를 서던 초단기 예보관 김수진(채서은 분)은 오존 경보를 해제하라는 항의 전화를 받는다. 이날 오존 경보가 내려져 유치원 소풍이 취소되고 화물차 이동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김수진은 "오존 경보는 특성상 급하게 내릴 수밖에 없다. 또 기상청이 아닌 환경부 소관이다"라고 답하지만, 많은 양의 통화에 결국 지쳐버렸다.


실제 기상 특보가 나간 날 기상청엔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풍랑주의보로 인해 출항할 수 없는 어민이나 예상치 못한 비가 와 피해를 본 농민이다. 중요한 날을 맞은 일반 시민도 마찬가지다. 김희아 예보관은 "과거 항의 전화로 심한 말을 들었던 때가 생각나 울컥했다. 물론 우리 특보가 일상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고 했다.

#5. 태풍 예보는 "틀리길 기도"

19일 방영되는 '기상청 사람들' 11화는 태풍에 대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기자가 만난 기상청 사람들은 '가장 뿌듯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우리 예보로 피해가 줄었을 때"다.


지난해 태풍 찬투는 미국·일본 기상청보다 우리 기상청의 예보가 잘 맞았다. 실제 피해도 작았다. 한상은 예보분석관은 "태풍 대비시설이 잘 갖춰졌고 시민 의식도 높아져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예보가 잘 맞고 피해가 작아지는 게 기상청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가끔은 예보가 틀리길 바랄 때도 있다. 김성묵 재해기상대응팀장은 "이번 산불처럼 아무리 조심하라고 예보해도 피해가 발생한다. 폭우나 강한 태풍을 예보할 때는 차라리 우리가 틀리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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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기상청 사람들이 국가기상센터에서 회의하는 모습. 기상청

한상은 예보분석관은 "기상청이 일하는 모습이 알려져서 뿌듯하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치열하게 분석하고 예보하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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