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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78)
장비어천가(醬飛御天歌)와 장락어지가(醬落御地歌)? 된장 얘기다. 장비어천은 장의 칭송이 하늘에 닿았다는 뜻이고, 장락어지는 장의 평판이 추락하여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의미다. 둘 다 말 같지 않지만 용비어천가를 빗대 필자가 만든 조어(造語)다. 이른바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인 된장에 대해 극명하게 상반되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패러디한 것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된장’을 주제로 방송했다. 한 의사는 “내 몸의 독소를 없애려면 된장을 먹어라. 된장에는 필수지방산인 리놀렌산(linolenic acid)이 50% 이상 함유돼 있어 항염증은 물론 면역력도 올리고 장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또 중금속 등 노폐물을 해독하는 기능도 가진다. 특히 색깔이 진한 것에는 멜라로이딘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간암세포 등 암세포를 파괴한다”고 말했다.
된장은 소화율이 낮은 콩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우수한 전통식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신통한 약효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중앙포토] |
필수지방산이 된장의 50% 이상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리놀렌산은 콩에 아주 소량만 들어있다. 또 갈변현상에서 유래된 멜라닌의 검은 색소에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된장차(茶), 된장주스, 된장요구르트도 소개됐다. 간(肝)이 안 좋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면서다. 여드름, 뾰루지, 아토피에 특효약이라는 된장 팩도 내놓았다.
된장은 분명히 좋은 음식이긴 하다. 소화율이 낮은 콩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우수한 전통식품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그런 신통한 약효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과거 국내 학자들이 된장에 항암 성분이 있다면서 많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는 없었다. 논문이라는 게 다 사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논문과 학술지에는 허접한 파지급(破紙級)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말이다.
반대로 장락어지가. 된장에 초치는 주장이다. 이도 장비어천가 만큼이나 괴담 수준에 가깝다. 발효식품, 특히 재래된장을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는 식이다. 김치와 젓갈도 마찬가지였다. 요지는 이렇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장(醬)에는 바이오제닉아민(생물기원아민)이 많이 함유돼 있는데 섭취하면 신경계나 혈관계를 자극하고 식품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체내 대사를 통해 발암물질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있다. 된장을 항암, 혈전생성 억제, 다이어트 효과로 과대 포장하는 예찬론은 허황됐다. 특히 전통방법으로 만든 재래된장의 경우 위험성이 높은 히스타민과 티라민함량이 미국 FDA의 잔류허용치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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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찬론이 과하다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된장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좀 지나쳤다. 우리가 수백 년 먹어온 전통식품에 대고서 말이다. 바이오제닉아민은 분자 속에 -NH2, -NH, -N기를 함유하는 물질의 총칭이다. 우리 몸속에서 여러 경로로 만들어져 다양한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필수물질들이기도 하다. 물론 양이 많을 때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히스타민의 과량섭취는 염증을 유발하는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다. 하지만 체내에서 만들어져 혈관 확장, 기관지수축, 위산분비 등에 관여하는 기능성 물질이기도 하다. 쾌락이나 행복감을 주는 도파민, 혈압, 심장박동, 혈당을 높여주는 아드레날린,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는 노르아드레날린 등도 모두 생물기원아민에 속한다. 문제 삼는 티라민도 아드레날린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인체 필수성분이다.
물론 된장의 숙성 중에 미생물 혹은 효소 반응에 의해 이런 아민이 다소 생성될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얼마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얼마를 먹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막연히 된장에 이런 물질이 소량 발견되었다 해서 수백, 수천 년 먹어온 전통음식을 하루아침에 독극물처럼 패대기쳐서야 되겠는가.
작금은 분석기술이 발달해 거의 모든 음식에 유해물질이 미량씩은 검출된다. 문제는 이런 성분이 소량이라도 있기만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떤다는 것, 반대로 좋다는 성분이 흔적이라도 나오면 만병통치에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약이 되지 않는 음식도, 좋은 음식도 없다.
좋고 나쁘다는 것은 이런 물질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양의 문제다. 미량이라면 인체에 별 영향이 없다. 은행, 죽순, 아몬드, 고사리, 청매실, 싹튼 감자 등에 독성물질은 소량 있다. 지금의 측정기술로는 나노그람(ng), 피코그람(pg)까지 검출이 가능하다. 이런 양에 시비 거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나노는 10억분의 1g이고, 피코는 1000억분의 1g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검출이 불가능해 없다고 결론지은 양이다. 이제는 ‘있다, 없다’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어졌다. 법이 정한 기준치 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다시 말한다. 된장에 아민이 있어 인체에 해롭다는 것, 반대로 항산화, 항암, 항혈전,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는 주장, 이는 모두 허언에 가깝다. 된장은 콩을 지혜롭게 이용한 식품에 불과하다. 식품에 약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같은 식품이 어떤 때는 만병통치가 되고 어떤 때는 천하의 몹쓸 식품이 되는 게 참 이상하지 않나.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가 헷갈린다. 정보의 홍수가 오히려 올바른 정보의 수용을 구축한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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