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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엘살바도르 우범지역서 일하는 전직 갱

더오래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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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만난 사무엘. 이 친구 눈빛이 굉장히 복합적이었다. 사뭇 날카로운 눈빛과 무해한 순박한 청년의 미소를 함께 갖고 있었다. 그는 전직 조직폭력배였다. [사진 허호]

2016년 중미의 엘살바도르에 처음 갔을 때입니다. 엘살바도르 컴패션의 국가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우리는 커다란 지도 앞에 섰습니다. 연중 살인과 상해 사건이 발생하는 건수에 따라 치안의 위험도를 색깔별로 구분해 놓은 지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붉은색 지역은 살인사건이 1년에 100명 이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지역이 붉은색이었습니다. 여러 국가를 방문해 봤지만 그 나라의 치안 문제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중 짙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의 어린이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 안에 있는 컴패션 어린이센터는 보통 개방된 감이 있었는데 그날 방문한 어린이센터는 철옹성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에 삶을 돌이킨 전직 조직폭력배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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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갱단 사무엘은 험악한 삶을 살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많이 지났다. 더 이상 죽을 위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도망치며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그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은 조직폭력단, 일명 갱이 지배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갱들 간의 세력다툼으로 1년에 100명 이상 살인사건이 나는 우범지역에 교회가 들어왔고 이후 컴패션이 세워졌습니다. 갱들 간의 싸움이 일상사인 무서운 지역이라고 해도 그들도 한 사람의 아버지였습니다.


컴패션은 우범지역 갱의 아이들을 차별 없이 양육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아버지가 고맙다며 센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느냐고 물었고 목사님은 마당이라도 쓸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유명한 조직폭력단의 두목이었습니다. 자기 아이가 컴패션에서 도움받으며 크는 것을 보며 그는 마침내 갱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센터 마당을 쓸고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라이벌이었던 조직폭력단의 두목이 그를 죽이러 왔다가 하찮기 그지없는 허드렛일을 하는 그가 궁금해져 관찰을 시작했고, 그도 목사를 만나 갱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라이벌이었던 갱단 두목 두 명이 지금 함께 마당을 쓸고 센터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갱단 두목 둘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으니, 살인 사건이 일 년에 한두 명으로 줄어든 정도로 완전히 탈바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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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갱단 두목 둘이 센터에서 마당을 쓸고 그중 한 명에게 속해 있던 사무엘은 그림을 그린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그들 몸에는 지금도 수차례 목숨을 위협당했던 총상의 깊은 흉터와 길고 긴 칼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엘살바도르 갱단이었던 사무엘은 살인을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망 갔습니다. 미국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온 갱이 있었는데, 엘살바도르 갱은 그들 사이에서도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지막지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도시를 보면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닌데, 그라피티라고 그림이 거리에 그려 있는데 일종의 갱이 세력 범위를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그라피티를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 수준의 그림을 그렸는데, 또 살인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파나마로 추방돼 그곳에서도 다시 추방되어 결국 엘살바도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던 갱단의 두목을 찾아갔는데, 그는 갱생해 어린이센터 마당을 쓸고 있더랍니다. 전직 갱단 두목은 사무엘에게 자신과 같이 있자고 권했고 사무엘 역시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갱단의 세력 표시를 하던 실력으로 센터에서 어린이가 좋아할 라이언킹 같은 캐릭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며 그는 마침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아이의 가정방문을 갔습니다. 그는 앞서 이야기를 해준 사무엘이나 전직 두목과 달리 현직 갱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순수한 한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특별히 위협적이라거나 살기가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그는 그렇게밖에 살 수밖에 없다고 했고 자기 아이만큼은 그런 위협에서 노출되지 않고 살기를 바랐습니다.


2017년 그 이듬해에 전 국가대표 선수인 이영표 선수와 엘살바도르에 다시 갔습니다. 재밌었던 것이 우리는 전년도에 이미 방문을 했었기 때문에 동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 손을 잡고 가정방문을 가는데 동네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깨끗하더라고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직원이 한국에서 귀한 후원자가 온다고 해서 이 지역 갱들이 휴전협정을 했다는 겁니다. 오늘만큼은 자기들 아이들을 돕는 귀한 사람이 온 거니까 싸우지 말자고요. 거기에서 사무엘을 다시 만났는데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하러 나왔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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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왕성한 나이에 삶을 돌이킨 전직 조직폭력배 사무엘.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센터 벽면에 그림을 그리며 평안을 찾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다수의 적을 물리치고 웬만하면 다 이기죠. 현실의 갱은 총 맞고 칼 맞고 공포 속에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이 사랑받으며 자라는데 어떻게 안 변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그런 지역일수록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한편 중남미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이 나라들에 대해 좀 더 고민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알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정말 많은 수탈을 당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남의 것을 뺏고 뺏기는 데 있어 그들은 심각성이 별로 크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문제까지도요. 그런데 그런 심각한 수준의 윤리의식이 결국은 가장 연약한 자들이 고통당하는 가난의 대물림을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이 더욱 가슴 벅차기도 하고 정말 먹먹할 정도로 답답하기도 한 그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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