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손수건 한 장이 부른 죽음…베르디 ‘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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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9)
1887년 베르디가 발표한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한 오페라입니다. 천국의 지극한 사랑과 지옥만큼 끝 모르는 질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오페라이지요.
원작에서는 전쟁영웅이자 베네치아의 총독인 오셀로는 얼굴색이 다른 무어인인 데다, 음탕하고 날강도의 이미지로 배척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는 단호합니다. 오셀로의 마음에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하지요. 그럼에도 베네치아인 이아고의 치밀한 계략과 용의주도한 혀 놀림으로 오셀로는 끝내 그의 진실한 사랑을 목 조르고 스스로를 찌릅니다.
오페라 ‘오텔로’는 노년의 베르디가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고 세밀하게 수놓은 마지막 비극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대표작입니다. 자, 이제 가슴 졸이는 질투와 애틋한 파국이 기다리는 오페라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막이 오르면 이아고는 겉으로는 오텔로에게 충성하지만, 내심으론 그를 증오합니다. 오텔로가 부관 자리에 자신 대신 카시오를 임명했기 때문이지요. 이아고는 로드리고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같이 복수하자고 합니다. 로드리고 역시 오텔로의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연모하다가 오텔로에게 그녀를 빼앗겼거든요.
이아고는 오텔로를 파멸시킬 흉계를 꾸미는데, 카시오를 첫 제물로 삼습니다. 그는 카시오에게 부관 승진을 축하하며 거듭 술잔을 권합니다. 카시오는 평소 과음하면 흐트러지는 술버릇이 있습니다. 카시오는 결국 취하고, 이아고는 로드리고에게 만취한 그와의 싸움을 유도해 소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마셔요, 들이켜요’로 시작되는 이아고의 아리아는 “에, 에, 에”라는 독특한 저음이 반복되는데, 이 장면은 교활한 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오텔로가 호통치며 등장합니다. 카시오에 대한 이아고의 모함과 이간질은 계속되고, 술에 취해 정신없는 카시오는 머리만 조아릴 뿐이랍니다. 결국 오텔로는 자신의 신뢰하는 부관 카시오를 면직하고, 소란을 정리한 그는 데스데모나와 사랑의 키스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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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아고가 카시오에게 접근합니다. 데스데모나로 하여금 오텔로에게 그의 면직을 취소해줄 것을 탄원하도록 하라고, 그녀의 이야기라면 오텔로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꼬드기지요. 자기 부인이 데스데모나의 시녀라며, 데스데모나와의 만남을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카시오가 좋은 생각이라며 그녀를 만나러 서둘러 나갑니다.
혼자 남은 이아고는 자신의 악을 찬미하는 아리아 ‘난 악의 신을 믿는다’를 부릅니다. 마치 세익스피어 연극에서 독백하는 듯이 뿜어내는 그의 아리아는 너무나 강렬합니다. 아리아를 듣는 관객은 자신의 혈관에서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을 받게 되고요.
이아고는 거짓된 사실을 넌지시 던지면서 오텔로의 질투심을 자극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데스데모나가 카시오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자 그의 질투의 불길은 치솟아 오르지요. 그녀가 거듭 호소하자 결국 오텔로는 화를 내며 머리 아프다는 핑계로 그녀를 물러가라 합니다. 그는 그녀가 머리에 두르라고 준 손수건조차 내던지는데, 그것을 주운 에밀리아에게서 이아고가 손수건을 빼앗습니다. 이 오페라의 중요한 심볼인 ‘이아고의 손수건’을 손에 넣은 것이지요.
오텔로는 이아고에게 그들의 불륜에 대한 명백한 ‘직접증거’를 가져오라고 하자, 그의 간교한 혀가 또 꿈틀거립니다. 불륜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고 사실을 추정할 ‘정황증거’는 있다며, 오텔로가 그녀에게 선물한 꽃자수가 새겨진 손수건을 카시오의 집에서 보았다고 꾸며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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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오텔로는 거의 이성을 잃고는 데스데모나의 죄를 응징하겠다고 하는 게 아닙니까! 그들의 분노와 간교함이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소름 끼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활함을 마주한 관객은 더욱 숨을 죽이게 된답니다.
장면이 바뀌어, 목 앞에 올가미가 있는 줄 모르는 데스데모나는 카시오를 용서해 달라고 오텔로에게 재차 간청하고 있습니다. 아아~ 상대의 반응을 봐가며 청탁도 해야 하는 것을, 이 순진한 데스데모나는 어째서 계속 이러는지요? 오텔로는 자신이 준 손수건을 보여 달라고 아내에게 요구합니다.
허나, 그 손수건은 이아고가 카시오의 집에 가져다 놓았기에 그녀는 보여줄 수가 없었지요. 그러자 오텔로는 난폭하게 그녀의 정숙치 못함을 힐난하고, 심지어 그녀를 ‘거리의 매춘녀’ 운운하며 그녀의 명예를 모욕합니다.
그녀가 충격받아 도망치듯 나가자 오텔로는 비통하게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아리아 ‘주여, 이 치욕을 제게’를 부릅니다. 격정적으로 요동치는 선율 위로 그는 절규합니다. 이 오페라의 명장면이기도 하지요.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 침울한 선율이 흐른 뒤 장면은 데스데모나의 침실입니다. 그녀는 불행을 직감한 듯 시녀 에밀리아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드디어 오텔로가 비장하게 등장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에밀리아가 달려와 비명을 지릅니다. 이아고의 아내였지만, 그녀는 남편의 계략과 손수건에 대한 진실을 고발하며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무고를 변호합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오텔로는 비통해하며 자신의 몸을 찌릅니다. 그는 선혈이 낭자한 몸으로 데스데모나에게 기어가 그녀의 입술에 오래도록 마지막 키스를 합니다. 이는 사랑의 키스인가요? 죽음의 키스인가요? 그들이 사랑을 나누던 때의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오텔로는 숨을 거두고 막이 내려집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은 없었는데도 사랑의 키스는 바뀌어 죽음이 되어 버렸답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의심하는 갈대가 되어버린 오텔로는 이아고의 세 치 혀와 결정적 배신의 증거라고 오해한 ‘손수건’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확신범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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