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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살아도 산 것이 아닌’ 20대 자식 임종 지키는 어머니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7)

병원의 창문은 조그맣다. 절반 이상 열리지 않는다. 사람이 뛰어내리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라면 조금 섬뜩할 거 같다. 아무튼, 최대로 열어도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크기이다. 작은 건 창문만이 아니다. 병원은 건물 규모에 비해 출입문도 적고 입출입도 모두 통제된다. 그래서인지 종종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든다. 공기마저 흐르지 않고 정체된 기분. 그리고 고여있는 것은 언제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지금처럼.


나는 허튼 생각을 떨치기 위해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힘껏 창문을 열어젖혔다. 한겨울 찬바람이 귓등을 타고 소용돌이쳤다. 머릿속의 희뿌연 안개가 조금 옅어졌다. 주섬주섬 청진기를 챙겨 목에 두른 후 중환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안쪽 구석을 향했다. 사이사이 기계들이 요란한 비명을 질렀지만, 평소와 달리 그 소리는 내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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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작은 건 창문만이 아니다. 병원은 건물 규모에 비해 출입문도 적고 입출입도 모두 통제된다. 그래서인지 종종 세상과 단절된다. [사진 piqsels]

그렇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의사라고 해서 사람의 죽음에 초연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임종을 지켜본 후 나는 세상 모든 죽음의 본질을 고통이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평생 망나니로 살아 보호자가 차라리 죽여달라고 요구했던 환자도 있었고, 살려낼 방법도 없는데 죽는 순간까지 폐가 찢기는 고통을 겪던 환자도 있었다. 소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후 감옥에서 자살 시도를 한 환자도 있었다.


어쩌면 죽는 게 편할지도 모르는 사연을 가진 환자를 적잖이 보았지만, 그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곁에서 시원함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죽음이든지 종국엔 나를 깊은 수렁에 빠뜨렸고, 나는 농밀한 삶이 주는 끈적거림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런 앞날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죽음이 현실에 가장 가까이 내려앉은 세상으로 또다시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내 발로 걸어서.


초로의 어머니가 환자 손을 꼭 쥔 채 얼굴에 부벼대고 있었다. 꼭 감은 어머니의 두 눈. 이내 밑으로 적셔져 내리는 눈물. 표정 없이 잠들어 있는 자식. 말릴 수도, 위로할 수도 없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머니가 와 있는 줄 알았다면 조금 늦게 나올 걸 그랬다. 이런 슬픈 광경은 가급적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부지런함이 오히려 독이 됐다. 울컥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집어삼켰다. 아랫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울고 있는 어머니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려 환자에게만 집중했다.


목덜미에 또렷이 새겨진 두 개의 빨간 선. 시간이 지나도 전혀 희미해지지 않는 상처 자국. 환자가 처음 응급실에 실려 온 순간이 떠올랐다. 목을 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말마따나 목덜미엔 깊은 삭흔이 새겨있었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얼굴색은 피가 머리로 흐르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는데, 환자가 겪었을 고통이 미루어 짐작되었다. 젊고 건강한 20대의 육체는 의사의 비관적인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금세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의 장기도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몸통을 비롯한 사지도 원래 색을 되찾았다. 모든 신체가 사고 이전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단, 이미 죽어버린 머리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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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고 해서 사람의 죽음에 초연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죽음의 본질은 고통이다. [사진 pixabay]

보호자는 어머니였다. 자식이 아닌 어머니. 환자로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지만, 보호자로는 드물디 드문 이름. 어머니. 부모가 자식의 임종을 지켜보는 경우가 세상 어디 있단 말인가? 맨발로 뛰어와 부산한 의료진의 모습을 간절히 지켜보았고, 아들의 심장이 다시 뛴다는 소식에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쥔 채 하늘에 기도한 사람. 어머니. 나는 그런 그녀를 구석으로 불러내 감정 없는 목소리로 사실을 나열했다. 일종의 사망선고. 그녀는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나는 모질게 마저 못을 박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환자를 표현한 말이었는데, 그 이후 이것이 보호자를 표현하는 말이 될 거라고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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