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식 과학교육으론 잡스·저커버그 못 나와”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시험 치기 위한 과학은 금세 잊어
문학·미술·음악처럼 즐겨야 하는데
부모들이 찍어누르는 현실이 문제
5개년 계획으로 과기 정책 편다고
경제발전 이뤄지는 시대는 지나
-과학철학이란 뭔가.
“간략히 말하자면 과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애기다. 과학자들은 자기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물이 항상 같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100도로 정했을까’와 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진다.(그는 이 문제를 10년간 연구해 명저『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런 것들을 직업적으로 고민하고 과학자들과 협업하는 것이 과학철학자의 일이다. 최근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과학철학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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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온 국민이 다 과학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억지로 배운 과학은 시험을 치고 나면 쉽게 잊어버린다. 남는 건 과학은 정말 어렵고 싫었다는 느낌 뿐이다. 국민이 받아야 할 과학교육의 초점은 문화로서의 과학이다. 과학을 음악이나 미술ㆍ문학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재미있고 실험을 통해 아는 것이 정말 기뻐야 한다. 이렇게 해야 노벨상도 나오고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가 나온다.”
-한국은 대치동으로 대변되는 사교육 시장에서 암기식 선행교육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이지만 대치동에 아이들을 몰아넣어선 안 된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너 좋은 대로 살아봐라. 너의 고민이 뭐냐. 너의 인생에서 뭐가 즐겁나’고 물을 것이다. 부모가 찍어눌러서는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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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자체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이럴 경우 자연을 이해해보려는 지적활동의 문화적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과학을 진흥한다면 경제발전에 유용한 과학 자체도 발전하기 어려워진다. 과학지식이 기술에 응용되는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지식의 발전은 5개년 계획이나, 성장전략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정부에서 특정방향으로 과기 정책을 민다고 발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
-과학철학자로서 독자들을 위해 책을 추천하신다면.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추천하는 책이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내가 어릴 적 과학을 사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다. 과학을 재미있게 설명했을 뿐 아니라, 과학이 가지는 사회ㆍ문화적 위치,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인류에 기여해왔는지 등을 얘기해준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는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잘 얘기해주는 책이다. 흔히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면 기술이 발전하고, 공업으로 이어져 경제가 발전한다는 틀 속에서 과학을 생각하는 데 그런 생각을 깨워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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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좋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홍익대 부속 홍익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돌이켜보면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4,5,6학년 여름방학 숙제로‘자율연구’를 하게 했다. 요즘 같으면 극성 부모들이 대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름밤 조명 밝기와 색의 종류에 따라 어떤 벌레가 찾아오는지 연구하고, 불린 콩과 마른 콩을 비교해가며 키워보는 것도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은 정말 처참했다. 암기교육에 시달렸는데, 그나마 예술에 대해 마음껏 상상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미술시간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중2 시절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외금지가 된 것도 행운이었다. 그 덕에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고교에 진학하니 선생님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던 형과 나를 항상 비교해 힘들었다. 형(장하준 교수)은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수재였다. 그 시절 물리학을 너무도 좋아했는데, “물리학을 공부하려면 미국을 가야지”라고 농담삼아 던지신 아버지(장재식 전 장관)의 말씀에 유학을 결심하고 실천했다. 정말 한국식 공부를 하기 싫었다.”
-가풍이 궁금하다.
“집안에 유명한 분이 많긴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호기심이 매우 많으셨다. 내가 특정 사안에 대해 얘기하면 ‘그게 정말 그래? 왜 그래?’라며 항상 집요하게 되물으셨다. 어머니는 매사에 굉장히 철저하신 분이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이 두 가지가 잘 조합을 이룬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학자ㆍ관료ㆍ정치인이 두루 있는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장병상)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고, 부친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가 그의 친형이다. 장충식 전 한국닉스 회장이 큰아버지, 장영식 전 한국전력 사장이 작은아버지다.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사촌 사이다.
최준호ㆍ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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