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휴거’ PD가 말하는 신천지 “극단에 빠지는 심리는…”
KBS ‘모던코리아’ 6편 임종윤 PD
다미선교회 종말론 포교 이면 담아
“언제 어디든 우울에 빠진 이들 있어
그 자극점 채워주는 게 왜곡된 종교
일부 기성교회 ‘환란온다’ 판 깔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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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속에 최근 시청자 호응을 끌어낸 TV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난 20일 방영된 KBS1 다큐 인사이트의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리즈 6편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이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가 공중에 재림해 ‘믿는 자’만 천국으로 들어 올려진다던 이른바 ‘휴거’ 소동을 다뤘다.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된 진앙지로 꼽히는 신천지 교회 역시 조건부 종말론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연관성 때문인지 ‘휴거’ 편은 시리즈 6부작 중 최고 시청률(5.1%, 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임종윤(38) PD가 지난해 4월 소재를 선택했을 때 전혀 예견하지 못한 상황이다. 당시 각 연출자가 수능·삼풍백화점·해태구단 등 30~40년 전 한국 사회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소재를 나눠 정했을 때 임 PD는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 현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대양 사건 등도 검토하다 휴거로 정했다.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막바지 4개월간 매일 김밥 한줄로 버티며 편집에 매달렸는데, 초반엔 여의도 사옥 인근 반정부 찬송가 시위대가, 막판엔 신천지 교회 이슈가 눈과 귀를 괴롭혔다”면서 “이런 광신이란 게 30년 지나도 변함없구나 실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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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코리아’는 KBS의 축적된 방송 자료(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당시 관계자를 현재 시점에서 인터뷰하면서 일체 내래이션 없이 당대를 희극적으로 재구성해 화제를 모아왔다. 이번에도 당시 휴거 종말론을 주창한 대표적인 포교집단 다미선교회 출신 신도 및 목사들을 직접 만났다. 임 PD는 “다른 이단 종교보다 피해자 찾기가 특히 어려웠는데, 오래전 일인 데다 휴거 집단에 빨려든 것 자체를 창피해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말했다. 다미선교회를 이끈 이장림 목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전국을 돌며 간증했던 전양금 목사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는 기성 교파에서 평범한 목회 활동을 하는 이들은 “철저히 믿었다” “(휴거가 불발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게 뭔지 알았다” 등의 말로 지난날을 회고했다.
50분짜리 다큐엔 지금 보면 의아한 지점들이 보인다. 예컨대 당시 종말론 세력은 유럽연합(EU)의 출범을 성경 속 묵시록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당시 국내 최대 대형교회의 한 목사가 “성경에는 유럽 통합이 이뤄지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교회는 공중으로 들려올라가고 7년 환란은 다가온다”는 식으로 설교했던 것도 음성으로 깔린다. “휴거 세력이 극단적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부 기성 교회가 밑판을 깔아준 것도 한 원인”이라는 게 임 PD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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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시 교회들은 다퉈 이런 신비주의 포교를 했을까. 여기엔 ‘모던 코리아’가 일관되게 조명하는 1980~90년대 한국사회의 민낯이 작용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속에 기존 공동체와 가치는 붕괴하고 격차는 커졌다. 이 빈틈을 종교가 파고들었다. 이들 표현으론 십자가만 꽂아도 사람이 모이는, “성령이 충만한 시기”였다. 특히 극단주의를 앞세운 다미선교회가 세를 확장하자 기성 교회마저 간판을 ‘다미’로 바꾸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식으로 세를 불려 전국 300여 개 교회에 최소 2만여 명, 많게는 10만 명 정도가 영향권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TV로 생중계된 걸프전(1990~91) 등의 트라우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국제 사회에 깊숙하게 편입된 한국인들은 실시간 세계 뉴스뿐 아니라 컴퓨터 등 신기술에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바코드 666’ 등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임 PD는 “뉴스를 무언가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이게 불안을 재생산하고 다시 뉴스가 되는 일이 반복됐다”고 했다. 이런 사회상이 반영된 뉴스·드라마·개그프로그램 등을 이번 다큐에 적재적소 엮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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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10월 28일 당일 생중계까지 됐던 휴거집단의 마지막 집회 모습이다. 흰색 승천복을 입은 사람들이 각지에 결집하고 경찰이 출동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화면에 느닷없이 전통악기인 징이 등장한다. 12시 자정 순간, 교차편집된 화면 속 장인이 징을 울리는데 방송사고가 아닐까 싶게 정적만 흐른다. 이어지는 화면은 허탈한 신도들 모습이다. 당시 상황을 최대한 건조하게 전달하려 애쓴 편집이다.
임 PD는 “지금도 여느 부흥회에서 흔히 보는 모습, 당사자들로선 성령이 충만한 상태인데 그걸 희화화하거나 상처를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징 장면은 기존 KBS 다큐의 부분 재활용이다. “징의 모양은 되었으되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것은 아직 쇠에 불과하다”는 장인의 말이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싶어 인용했다고 한다.
당시 휴거 파문은 겉으론 일단락된 듯이 보이지만 임 PD가 보기엔 “일상 대신에 이 같은 종교 체험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을 10만 명 남겼다”고 한다. 이 중 일부는 신천지 등으로 빠졌을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휴거 종말론자에게 연락하니 “어차피 (2019년) 8월에 3차 대전이 일어나는데 다큐 제작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 이도 있었단다. 그들 일부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유행도 종말의 징후로 받아들일 거라는 게 임 PD의 진단이다. 다큐 말미에 전양금 목사가 “요즘 교회가 더 어려워지니까 (계시를) 받았네 보았네 (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그런 역사는 이어져 왔다”고 단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죽음과 우울에 빠진 이들은 있고 그 자극점을 채워주는 게 왜곡된 종교죠. 신비주의적 포교와 사이비 이단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아요. 세계적으로도 소득 수준 1만 달러 시대에 종교가 최대로 잘 되고 이후엔 사회적 통제를 받게 되는데, 한국 사회가 그런 진통을 겪은 듯합니다.”
‘모던 코리아’는 2018년 88올림픽 30주년을 맞아 제작된 ‘88/18’이 원조다. 이를 시작으로 이번 6부작 전체를 총지휘한 이태웅 PD는 “아무리 솔깃한 정보라도 아카이브가 없으면 배제하면서 날것 그대로의 콘텐트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새로운 다큐 포맷을 제시했다. ‘모던 코리아’는 올가을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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