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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 살해' 가해자 부모, 180도 달라진 사과문자 보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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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엄마, 많이 놀랐지? 몸은 좀 나아졌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미안해. 나도 이렇게 괴로운데 ㅇㅇ엄마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거 알아. 정말 미안해. 몇 번이고 망설였어.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어. 죄송하고 미안해서…. 이렇게 문자라도 보내자 용기를 낸 거야.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갓 성인이 된 딸을 신혼여행에서 잃은 어머니에게 지난해 12월 8일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보낸 이는 사망 보험금 1억5000만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딸(사망·당시 19세)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A씨(22)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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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아버지 역시 피해자 아버지에게 같은 날 “몇 번이고 찾아뵙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차마 얼굴을 들고 뵐 수가 없어 이렇게 글로 올린다”며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살인 혐의로 재판이 시작되고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연락을 끊은 지 1년 만이었다.


2017년 4월 25일 A씨는 신혼 여행지에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일본 경찰에 신고했다. 부모 몰래 혼인신고한 지 10일 만의 일이었다. 한 달 후 A씨가 보험금을 청구하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보험회사는 경찰에 통보를 했고 그는 결국 덜미를 잡혔다. 2016년 12월에도 당시 여자친구에게 니코틴 음료를 먹이려다 실패한 혐의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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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집에선 살인 계획이 담긴 일기장이 발견됐다. 40세가 되기 전 동반자를 자살로 꾸며 살해한 후 억대의 보험금을 받아 이를 토대로 10억원 이상 재산 축적이라는 인생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생각만큼 (네가) 없는 것에 대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힘든 건 딱 하나. 보험금이 예상대로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5억에서 1억5000만원으로 바뀌긴 했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뿐”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A씨는 “아내가 죽으려고 해서 도와줬을 뿐”이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A씨는 반성문에 피해자에 대한 언급 없이 자신의 가족에게만 미안하다고 전했다. 유족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건 A씨 부모의 말이었다. 피해자의 언니(24)는 중앙일보에 “제 가족에게 와서 대뜸 ‘만족하냐’고 얘기하더라. 자신들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A씨 부모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항소심 첫 공판에서 A씨 변호인은 “정신감정을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한달 뒤 “A씨가 범행 당시 반사회적 인격 장애(사이코패스)로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며 정신 감정을 신청했다. A씨 역시 “평소 죽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며 “피해자로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도와준 것이지 살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살인 혐의를 여전히 부인했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부장 권혁중)가 정신과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 등 자료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해 12월 12에는 더 많은 병명을 이유로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A씨 변호인은 “A씨가 범행 전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점, 메모 강박증, 과대망상, 조현증, 포르노섹스중독증, 사리분별력 미약 등을 앓아왔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찰은 지난 2일 정신감정을 위한 허가 영장인 감정유치장을 집행했다고 통지했다.


유족은 형 감경을 위해 A씨가 정신감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피해자의 언니는 “1심 판결 나고 자기들 억울하다고, 만족하냐고 물을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죄 인정도 안 하면서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정신감정 요구하는 중 부모가 같은 날 사과 문자를 보내온 건 진심이 담겼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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