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간다] 왜 두 아들엔 안줬나···80대 '400억 기부' 사연
논설위원이 간다
할아버지는 기부식 뒤 건강 악화
고려대, 학교 병원 VIP실로 모셔
“재산 많이 물려준다고 해서
자식이 잘된다는 보장 없어”
“평생 소원이 빌딩 세우는 것
고려대가 꿈 대신 이뤄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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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양영애 부부. 할아버지는 호적에 1927년생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31년생이다. 해방 뒤 북한 땅에서 월남했는데, 생계가 막막해 군대에 일찍 가려고 호적상 나이를 늘렸다고 한다. 우리 나이로 여든여덟이다. 할머니는 네 살이 적다. 부부는 60년에 서울 종로5가에서 손수레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76년에 청량리 로터리 인근의 상가 건물을 하나 샀고, 그 뒤 바로 옆 부동산들을 꾸준히 매입했다. 그렇게 마련한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부부에게는 20대 때 미국에 가 정착한 50대의 두 아들이 있다. 손자·손녀도 있다. 부부가 사는 청량리동 아파트에 지난 1일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양영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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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할아버지 많이 편찮으신 건가요?
A : “그 식(고려대에서의 기부식)을 한 날(지난달 25일) 다음날 새벽에 화장실에서 쓰러져 계속 집에 누워있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학교 사람들이 고대병원으로 데리고 갔어. 구급차까지 보내서. 지금 VIP실에 있어. 다리에 힘이 없어 걷지를 못하고 말도 못해. 어제 MRI(자기공명영상 장치)를 찍었다고 하던데….”
Q : 병원에 안 가보셨어요?
A : “아직 못 갔어. 그동안 등기 이전 뭐 그런 거 하느라 정신없었어. 나도 감기 때문에 아파서 오늘 나흘 만에 처음 샤워를 했어. 내일쯤 가려 해. 당장 뭐 어떻게 되고 그런 거는 아니니까.”
Q : 그 식 끝난 뒤에 어떠셨어요? 재산 다 내놓으셔서 마음이 허전하진 않으셨어요?
A : “전혀(손사래를 치며). 기부를 하고 나니까 기부가 좋다는 걸 알겠더라고. ‘아, 기부라는 게 이래서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
Q : 뭐가 그렇게 좋으셨나요?
A : “사람들이 다들 칭찬하잖아.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잘했다, 큰일 했다고 해. 지나가던 아이가 나를 보고 자기 엄마한테 ‘기부 할머니다’고 그러기도 하고. 이렇게 칭찬받고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
Q : 언제 기부하겠다고 마음먹으셨어요?
A : “내가 작년까지 열네 달을 유방암 치료를 받았어. 그리고 작년부터 할아버지가 말을 못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재산의 전부든, 반이든 학교 같은 데 기부하면 좋겠다’ 하는 맘이 들더라고.”
Q : 아드님이 두 분 계시는데(거실에 두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안 하셨어요?
A : “자식에게 절반 주고 나머지 절반만 기부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빌딩을 못 지을 것 같아 생각을 바꿨지. 내 소원이 빌딩 세우는 거야.”
Q : 빌딩이요?
A : “내가 처음 땅을 산 게 42년 전이야. 116평을 5400만원 주고 샀어. 평당 50만원이 안 됐지. 지금은 평당 6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네. 그 뒤에 은행 대출받고 해서 그 옆 건물들 계속 사서 그쪽에 있는 것 다 합하면 500평쯤 돼. 거기에 높게 빌딩을 세우고 싶었어. 근데 중간에 끼어 있는 땅 하나를 못 사기도 했고 돈도 없고 해서 빌딩을 포기했어. 이젠 늙어서 뭘 하기도 힘들고.”
Q : 결국 빌딩은 못 세우는 거네요.
A : “아니, 학교에서 빌딩 세워주기로 했어. 그 땅 위에 건물 세운다고 약속했어. 건물에 ‘김영석, 양영애’ 이름도 새겨주기로 했고. 건물을 세워서 뭐로 쓰던 할아버지하고 내 이름이 있는 빌딩이 생기는 거야.”
Q : 부동산을 어떻게 400억원어치나 갖게 되셨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A : “처음에 5400만원 주고 살 때 내 손에 400만원밖에 없었어. 은행에서 4000만원 빌리고, 아는 사람한테 1000만원 빌렸어. 과일 장사해서 원금·이자 18년 동안 갚았어. 그 뒤에 옆에 건물 팔겠다고 할 때 은행 돈 빌리고 세 들어 온 사람 보증금 합하고 해서 샀지. 그런 식으로 계속 산 거지. 이자 갚는다고 죽을 둥 살 둥 살았어.”
Q : 아드님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A : “그래도 하는 수 없지. 두 아들한테 옛날에 미국에 집도 하나씩 사주고 할 만큼 했어. 둘 다 살 만하고. 돈이라는 게 자기가 힘들여 벌지 않으면 의미 없는 거야. 재산 물려준다고 해서 자식들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자식 망치는 거지.”
할머니의 점심 반찬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
Q :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A : “난 애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자장면 한 번 안 사줬어. 평생 생일, 환갑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고. 그렇게 모은 건데 나 죽고 나서 그냥 흩어지면 슬프잖아. 자식들이 잘 지킨다는 보장도 없고. 이젠 내가 죽어도 고생하며 살아온 보람이 남게 되잖아. 난 요만큼도 후회 안 해. 정말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Q : 고려대를 선택하신 이유는 뭐죠?
A : “여러 사람이 여기에서 가까운 데 있는 고대가 잘 돼야 이 동네도 좋아진다고 하더라고. 큰아들이 고대 나오기도 했고. 토목공학과 79학번이야.”
Q : 기억력도 좋으시고, 말씀도 하나 틀린 것 없이 정확하게 하시네요.
A : “내가 육 남매 중 둘째인데. 언니하고 나하고만 학교를 못 갔지. 동생 넷은 다 좋은 학교 나왔어. 아버지가 ‘육 남매 중 네가 제일 머리가 좋다. 그러니 넌 학교 안 가도 잘 살 거다’고 했어.”
Q : 재산 다 내놓으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사세요?
A : “고대에서 할아버지하고 나하고 죽을 때까지 생활비 대주기로 했어. 아프면 입원도 시켜준다고 하고. 지금 이 아파트 8억원쯤 한다는데, 나 죽은 다음에 이것도 학교에서 가져가게 할 거야.”
‘400억 기부’가 보도된 뒤 많은 사람이 ‘과연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잘 쓸까’라는 의문을 표시했다.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기금기획본부장 겸임)에게 물어봤다. 그는 “두 분의 뜻을 받들어 그 땅에 건물을 짓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학생들 장학금을 주려 한다. 정말 힘들게 모은 재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 처장은 "이미 10억원 이상 기부자들은 전액 무료로 학교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두 분께 생활비도 드릴 것이다. 숭고한 뜻으로 모든 것을 내놓으신 그분들의 여생을 학교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고 덧붙였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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