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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60년 하춘화 “물 밑서 쉼 없이 노력하는 백조처럼 …”

신곡 3곡 포함 60주년 앨범 나와

‘마산항엔 비가 …’ 노랫말도 붙여

머플러 감고 잠자며 목소리 관리


6살 때 데뷔, 총 2500여곡 발표

내년 영암에 트로트센터 건립해

“피아노 열심히 익혀 작곡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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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에 데뷔해 인생의 9할을 노래에 바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최근 60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한 가수 하춘화(63)는 “어렸을 땐 어쩜 그렇게 청승맞게 노래를 잘하냐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목소리가 하나도 안 변했다는 얘길 듣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백조가 겉으론 우아해 보여도 물밑에선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그는 지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고운 목소리를 자랑했다.

한데 그가 한다는 노력은 대개 겨울철 가습기 켜기, 잘 때 목에 머플러 감기 등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보다는 매 5년 단위로 다음 공연을 준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55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그간 갈고 닦은 성악과 탭댄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흡사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처럼 다음 공연 준비 태세에 돌입하는 것이다.


2021년 60주년을 앞두고 앨범을 일찍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저는 항상 2~3년 전에 기념 앨범을 냈어요. 관객들도 생소한 신곡보다는 귀에 익은 노래에 더 많이 공감하잖아요. 그래서 공연에 오기 전에 충분히 익힐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거죠. 음원사이트에도 천천히 풀려고요. 1년간 방송 활동하면서 들려 드리고 한 1년 뒤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너무 남발돼서 일찍 사라져 버리는 게 싫어서요.”


그런데도 하춘화가 4년 만에 신곡을 발표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타이틀곡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는 KBS ‘아침마당’을 통해 단 한 번 선보였을 뿐인데 유튜브에 ‘하춘화 마산항’ ‘마산항 비가 내리네’ ‘마산항 비가 온다’ 등 유사 검색어가 자동 완성될 정도다. 이호섭 작곡가와 손잡고 이 타이틀곡 외에도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한 ‘여자 여자 여자예요’와 서정적 발라드풍의 ‘침블락에서’ 등 신곡 3곡을 담았다.


“그동안 발표한 곡 수로 치면 2500곡이 넘어요. 나훈아·이미자 선배님 다음이죠. 70년대는 레코드 앞뒤로 6곡씩 12곡이 들어가는데 어느 해는 독집 앨범이 11장이 나온 적도 있거든요. 한 해에만 130여곡이 나온 셈이니 저도 다 기억할 수가 없어요.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 위주로 부르게 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어렵고,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심사숙고 끝에 낙점된 타이틀곡은 직접 가사를 붙였다. 2010년 마산·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고향을 잃게 된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제가 마산에서 대학(경남대)을 다녔거든요. 마산시가 사라진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행히 마산항은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리워서 찾아온 고향~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라고 써 봤어요. 요즘엔 각 지역을 담은 노래들도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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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게 전통가요 시장을 지켜온 그는 사라져 가는 것에 각별한 애정을 자랑했다. 76년 부모님 고향인 전남 영암의 옛 이름을 따서 낭주고등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고등학교가 없어 광주나 목포로 유학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10대 때 처음 영암에 가서 ‘여기가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란 얘길 듣는데 뭉클했다”며 “부모님 고향이 제 뿌리인 만큼 이후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영암에 트로트 가요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하춘화 아트홀과 전시관도 함께 개관을 준비 중이다. “해외엔 유명한 음악학교가 많은데 한국엔 전문기관이 없는 게 늘 아쉬웠거든요. 전통가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암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교육을 받으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고, 무대가 있으니 꿈을 실현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이번 6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서는 어떤 깜짝 무대를 준비 중일까. 그는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감명 깊게 봤다며 “피아노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피아노를 배우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얼마 못 배웠거든요. 그게 못내 아쉬움이 남아서 1년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시 다니고 있어요. 선생님이 공책에 별 스티커도 붙여주고, 참 잘했어요 도장도 찍어줘요.”


의외지만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고백이다. 올해 아흔 일곱인 아버지는 4자매를 모두 박사 학위를 받게 한 일등공신이자 하춘화의 첫 히트곡 ‘물새 한 마리’(1970)가 탄생하자 “이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니 사회에 갚아나가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분이다. 하춘화는 2006년 성균관대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데 이어 2016년에는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공연 수익을 통한 기부금만 200억원이 넘는다.


그는 70~80년대를 강타한 퀸의 음악이 여기저기서 다시 흘러나오고, 나훈아·조용필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가수들의 신보 소식이 전해지는 지금이 반갑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라이벌이 안 나오면 활동 더 많이 하고 좋지 않냐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가게가 많이 모여 있어야 장사가 더 잘 되듯 우리도 모여 있어야 가요계가 더 풍성해지죠. 마음 같아선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계속 노래 하고 싶어요. 그게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다음엔 그동안 열심히 배운 피아노로 작곡해서 후배들에게 줄 수 있다면 참 행복하지 않을까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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