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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마을 '뜬금없는' 회 식당…전국서 몰린다, 주말엔 1시간 줄

이택희의 맛따라기

참 뜬금없다. 이 외진 내륙에 ‘회 식당’이라니.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온다니.

경주 남산과 이어진 금오산 서남쪽 자락 시골 마을이다. 가장 가까운 바다는 금오산·토함산 두 산줄기 너머, 직선거리 25㎞ 동쪽 감포다. 차로 가면 감포항 42㎞, 울산 방어진어시장 43㎞, 포항 죽도시장 47㎞, 구룡포항 57㎞ 거리다. 겹겹 산에 둘러싸인 깊은 내륙이다.

갓 지은 밥 누룽지 숭늉 맛도 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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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썬 전어와 물가자미 회를 수북하게 담아 내온 경주 금오산 아래 ‘용산 회 식당’ 회밥. [사진 이택희]

이런 곳에 싱싱한 회를 냉면 대접 안에 수북이 올린 회밥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문을 여는 5시간 30분 동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재료가 떨어져 일찍 문을 닫는 날도 있다. 3월 16일과 10월 25일 두 차례 새벽 열차를 타고 오전 8시 20분쯤 그곳을 찾아갔다. 문 열자 얼마 안 돼 대기 손님이 줄을 선다. 회전이 빨라 오래 기다리지는 않지만, 외지 손님이 70%쯤 된다는 주말 점심이면 1시간 대기는 보통이다. 처음 온 사람 눈에는 이 또한 뜬금없는 일이다.


‘뜬금없다’는 말은 갑작스럽고도 엉뚱하거나 뜻밖이라는 의미다. 대한제국 시기까지 곡물시장에는 말감고(斗監考)가 있었다. 곡식을 한 말, 두 말 재는 마질이 직업인 사람이다. 애초엔 곡물 품질등급을 정하거나 부정한 거래를 감시하는 소임이었는데 점차 곡물의 기준시세를 제시해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일도 맡게 됐다. 곡물이 장에 나오면 말감고가 값을 정해 띄운다. 그 금새(가격)가 그날의 ‘뜬금’이다. 뜬금이 없으면 곡물을 거래할 사람들은 의아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입지도, 메뉴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뜬금없어 보이는 이곳은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용산 회 식당’이다. 메뉴가 하나이므로 주문은 받지 않는다. 앉으면 사람 수대로 상을 차린다. 가끔 변동이 있지만, 쌈채소·풋고추와 쌈장, 갈치 넣고 담근 묵은 김치, 마른 오징어 채가 들어간 가자미 식해, 마늘종 장아찌, 많은 비밀이 녹아 있는 푸짐한 초고추장, 홍합국, 숭늉이 기본차림이다.


숭늉 맛이 아주 구수하다. 밥솥에서 쌀뜨물 가득 머금고 눌은 누룽지 맛이다. 누룽지와 물이 반반이다. 수저통 뚜껑마다 써 붙인 ‘맛있게 먹는 팁’ 첫 줄에는 “우선 따뜻한 숭늉으로 속을 따뜻하게(회는 찬 음식이니까.^^)”라고 씌어 있다. 자상한 배려와 친절이 느껴진다.


다음 줄에는 “밥은 바로 넣지 않아요(뜨거우니까.^^)”라고 안내한다. 뜨거운 밥이 바로 들어가면 회 맛이 떨어지므로 주발 뚜껑을 열어 한 김 식히기를 권한다. 밥을 갓 지어서 그만큼 뜨겁다는 얘기다. 이 집에서는 20~22그릇이 나오는, 속이 깊은 냄비 세 개로 밥을 연달아 짓는다. 그때마다 나오는 누룽지로 숭늉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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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는 삶은 누룽지, 홍합국, 갈치김치, 마늘종 장아찌, 쌈과 초고추장이 차려진다. [사진 이택희]

이어서 회 대접과 밥이 나온다. 회는 계절과 바다 사정에 따라 1~3가지가 오른다. 3월에는 숭어, 10월엔 전어와 물가자미였다. 무 채와 상추를 바닥에 깔고 참기름을 친 다음 채로 썬 생선 회를 수북하게 올렸다. 초고추장을 입맛에 따라 한두 국자 퍼 넣고 회를 비빈다. 참기름이 바닥에 깔려 있으므로 속속들이 비벼야 한다. 안내문대로 비빈 회를 그냥 먹고, 쌈에 싸서 먹으며 맛을 즐긴다. 회를 반쯤 먹고 나서 밥을 넣고 비빈다. 비빈 걸 바로 먹고, 쌈으로 싸서 먹고 한다.


초고추장 맛이 희한하다. 맛은 있는데 설명하기 어렵다. 흔히들 ‘마법’이라 한다. 그냥 찍어 먹으면 별로 달지 않지만, 회에 비비면 단맛이 살아난다. 마늘 향이 진하다. 발효한 마늘이 들어갔다 한다. 더 들어간 재료는 ‘질문 금지’다. 다만, 해마다 서안동농협에서 고추 2000근을 사서 고추장을 담근다는 사실은 상세히 설명했다. 하루 일정량만 파는 초고추장은 오전 일찍 동난다. 1.5L쯤 되는 한 병에 1만8000원이다. 쌈채소도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직접 재배해서 쓰고, 겨울 동안은 계약재배한 농가에서 조달한다.

회밥 맛의 완성은 친절에서 나와

오후 2시에 문을 닫는 식당의 일과는 밤 12시에 시작한다. 바깥주인 서종태(72)씨가 울진에서 내려오는 물가자미 수송차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중간에 만나 물건을 받고, 포항과 구룡포 어시장에 들러 좋은 생선을 구해온다. 구룡포 호미곶이 그의 고향이다. 안주인 김정애(64)씨와 아들 서공해(39)씨는 오전 2시 30분 식당에 나와 생선 손질 채비를 한다. 잔가시 하나도 없게 살을 발라 채 썰어서 냉장고에 두고, 쌀 불리고 쌈도 준비한다.


이 집 음식의 맛을 내는 세 기둥은 회·밥·초고추장이다. 그 셋이 내는 맛은 손님들이 감탄하는 맛의 50~60%라고 사람들은 평한다. 나머지 40~50%는 홀을 담당하는 아들의 친절이라는 것이다. 늘 뛰는 자세로 15년째 홀을 누비는 아들이 아직 뱃속에 있던 1984년, 김 여사가 새댁일 때 식당을 열었다. 처음부터 손님이 많았지만, 김 여사는 “내 양심을 속이면 안 된다”는 마음 하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마을은 걸출한 인물들의 본향이기도 하다. 동네에 경주최씨 최진립(1568~1636) 장군을 모신 용산서원이 있다. 동상과 신도비, 생가인 충의당도 있다. 그는 임진왜란엔 의병, 병자호란 때는 관군 장수로 참전했다. 병자호란 때는 68세 고령에도 남한산성에 고립된 임금을 구하러 근왕병을 이끌고 공주에서 북상하다가 용인 험천(현재 수지·분당 경계인 동막천)에 이르러 매복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 전사했고, 청백리에 녹선됐다.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 명가인 경주 교동 최부잣집의 시작은 최 장군의 3남 최동량이고, 4남 최동길의 7세손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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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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