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자형 선거공보 구해 들여다보니
머슴, 심부름꾼, 낮은 자세 등 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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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북 예천군 유천면. 해외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해 논란이 된 박종철 예천군의원의 지역구이자, 집이 있는 동네다.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한 60대 주민에게 "박 의원을 아느냐?"고 묻자, "(지방선거 때) 잘 할 거라고 해서 믿고 밀었더니, 해외에 나가서 사고치고, 예천을 부끄럽게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인근 동네인 용궁면. 지방선거 때 1700여표를 받아 초선으로 당선된 박 의원. 그의 지지표가 상당히 많이 나온 동네다. 용궁면에 사는 전병동 예천군의원 전원사퇴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선거 때 군 살림살이 잘 챙기고, 군민을 잘 모시겠다고 하더니 거짓말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괘씸하게 생각한다. 왜 사퇴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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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박 의원은 군민에게 어떤 약속을 하고 군의원 배지를 달게 된 걸까. 6개월 전 지방선거 당시 그는 7장짜리 선거공보를 제작해 배포했다. 포부와 공약·이력·수상 등을 자세히 담아서다. 중앙일보가 이를 구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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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대로 일할 사람, 반드시 해낼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그러곤 자신의 포부를 담은 장문의 글을 실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군민 여러분'으로 시작한 글에 '군 의원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겠습니다.', '예천군 행정부의 견제와 감시를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예천군민 여론이 잘 반영되도록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참 좋은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같은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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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세로 머슴처럼 일하고, 군민 의견을 경청하는 살림 잘 사는 의원, 군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던 박 의원. 하지만 그는 6개월 지난 지금. 세금으로 해외에 나가 안경을 쓴 가이드를 때리고, 사퇴를 촉구하며 108배 하는 군민들이 있는데도 경청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군의원이 된 셈이다. 그래서 군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 의원은 수상 내용과 이력 등도 공보에 담았다. '박종철이 걸어온 길'이라는 소제목을 적은 뒤,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수상, (전)한국농어민신문 예천군지국장, (전)예천군 보조금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전)예천군의회 의정비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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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란엔 '호산대학교 휴면복지학부(2년제) 노인보건복지 전공 재학중'이라고 적었다. 다음 달 15일 박 의원은 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봉사·예절 등과 연결점이 있는 노인복지. 농업인으로 받은 장관상. 예천군 보조금 심의위원. 가이드 폭행 문제로 논란이 된 박 의원의 현재 상황과는 대척점인 이력과 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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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엔 9가지 그의 공약도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용문지역에 실내체육관을 신축하고, 회룡포마을에 농특산물 주말 장터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죽안지 관광문화 벨트 조성 추진 등도 공약했다.
익명의 한 예천군 간부는 "용문 실내체육관은 예산이 배정된 게 없고, 회룡포마을 주말장터는 계획 자체가 아직 없다. 죽안지 관광문화 벨트 사업도 아직 공모를 하지 않아 구체적인 사업 진척은 없다"고 했다. 그는 "박 의원의 공약 중 일부는 예천군에서 계획하거나 이미 구상 중이던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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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박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휴대전화로 연락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의 집이 있는 동네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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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9일부터 예천군농민회가 의장실을 점거해 농성 중인 가운데 14일 예천군의회에는 감천면 이장들이 찾아와 군의원 전원사퇴를 요구하는 서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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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을 비롯한 예천군의원 9명과 군의회 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7박 10일간 일정으로 미국과 캐나다 해외연수를 떠났다. 연수 나흘째인 12월 23일 박 의원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가이드를 때려 다치게 했다.
예천=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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