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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 북극곰과 고래의 영혼이 오로라로 변한 알래스카 최북단 마을

김종덕의 북극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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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알래스카 우트키아비크


‘하얀 사막’. 인천공항에서 시애틀, 다시 앵커리지를 거쳐 도착한 곳,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미국 알래스카 최북단 우트키아비크의 첫 인상이었다. 해발 고도가 3m에 불과한 드넓은 평원은 얼음과 눈으로 덮혀 있었다. 영하 23도 체감온도 영하 37도. 2016년 3월 알래스카 북쪽 꼭대기 첫 마을 우트키아비크와의 첫 인사는 겨울 끝자락의 매서운 추위였다. 얼어붙은 활주로를 벗어나 시내에 들어가자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과 스노우모빌을 제외하고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트키아비크는 이곳 원주민 이누피앗의 말로 ‘흰올빼미 사냥터’라는 뜻이지만, 오랫동안 영어식 도시명인 ‘배로우’로 불렸다. 19세기초 이곳을 탐험했던 영국의 해군상이자 탐험가인 존 배로우의 이름을 땄다. 2016년 12월에 들어서야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부르던 옛 이름인 우트키아비크를 되찾았다. 이 곳 사람들은 이것이 진정한 자치권 쟁취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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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넘게 고래와 함께 살아온 마을


오후 6시반, 하얀 사막 너머로 붉은 해가 사라졌다. 지난 1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한달여 이상 24시간 밤만 계속되던 극야(極夜)의 동토다. 시간이 흐르고, 하늘이 흑막으로 뒤덮이자 잊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오로라. 녹색의 커튼이 밤하늘에 일렁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오로라를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북극곰과 고래ㆍ물개 등 이곳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잡아먹었던 동물들의 영혼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9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우트키아비크의 주변 바다인 축치해는 북극해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터이기도 하다. 나의 친구인 알래스카 환이누잇위원회(ICC) 의장 짐 스토츠는 고향인 우트키아비크에 올 때면 친척들이 마련해준 고래고기를 소중히 받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이곳 원주민들은 1000년 넘게 이어온 그들의 생존 방식인 북극곰과 고래사냥이 왜 타지사람이나 국제규범 등 외부의 힘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꼭 필요한 사냥만을 하늘에 감사하며 해왔으며 그 동물들의 멸종위기는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래사냥의 흔적은 마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바닷가에는 이 도시의 상징처럼 알려진 고래뼈 조각공원이 있다. 이들의 말을 듣고 고래뼈 조각공원위로 홀연히 나타난 오로라를 보니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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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트키아비크의 바다얼음에 갇힌 회색고래를 원주민과 소련 쇄빙선이 함께 구출한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옛 소련의 도움으로 구출한 회색고래 이야기


매년 하지가 되면 우트키아비크에서는 ‘나루카타크’라고 하는 고래축제가 열린다. 겨우내내 바다가 얼어붙어 고래사냥을 할 수 없었던 이 지역사람들이 봄철동안의 고래잡이 시즌을 무사히 마치고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 축제이다. 말하자면 ‘고래추수감사절’인 것이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바다표범가죽으로 만든 담요 위에 고래사냥을 이끌었던 대장 사냥꾼을 하늘높이 헹가래를 치는 것이다. 이것으로 고래를 내려준 하늘에 대한 감사와 고래들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고래를 잡아와서 주민들의 생을 이어가게 해준 사냥대장에게 특별한 존경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이 곳 사람들이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는 것은 아니다. 1988년 10월, 갑자기 바다얼음이 두꺼워지면서 미처 북극해를 빠져나가지 못한 어린 회색고래 3마리가 얼음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고래들은 원주민들의 노력과 놀랍게도 당시 옛 소련 쇄빙선 마카로프호의 도움을 받아 20일 만에 구출됐다. 이 이야기는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12년, ‘빅미라클’(Big Miracle)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당시 소련의 붕괴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냉전 중에 소련의 쇄빙선이 미국 해역에 공식적으로 진입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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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둘러싼 세대 간 꿈의 차이


우트키아비크는 북위 7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알래스카 최초의 원주민자치구인 노스슬로프 군(Borough) 8개 마을 중의 하나이며 인구는 약 5000명이다. 2000년에는 북극이사회 사상 두 번째 장관회의가 개최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으로는 고래와 사슴류 사냥, 어업같은 전통산업과 석유 및 광물 등 자원개발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국제유가 하락과 미 본토의 세일가스 개발로 인한 영향으로 지역민의 70% 가까이 실직상태였다. 높은 자살율과 알콜ㆍ마약의 확산, 가공식품 범람으로 지역사회 불안정이 심각한 단계에 있다는 걱정 담긴 원주민 원로들의 고백을 들었다. 반대로 킴블리라는 이름의 여고생으로부터는 장차 지질학을 공부해서 지하자원 개발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온 지역의 부흥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의 자연과 환경이 세월에 따라 변했지만, 그들의 삶과 꿈도 일편적 시각으로만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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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쉬운 탑오브더월드 호텔.


필지가 참석했던 북극이사회 회의가 개최된 장소는 이 도시의 유일한 3성급 호텔인 탑오브더월드(Top of the World) 호텔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고래 구출 활동 때 총괄지원센터로 활용되었다고 했다. 표현은 조금 과장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호텔 이름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호텔 뒤 해안가에 밀려와 있는 북극해의 얼음 위에 섰다. 얼굴을 찢어낼 듯 부는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칼바람과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눈부신 햇살,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걷기조차 힘든 바다얼음을 느껴보면서 이곳이 북극해 첫 마을임을 실감한다. 밖에서 찍은 사진을 회의에 참석한 동료에게 보여주었더니,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며 경고한다. 며칠 전 그 근처에 북극곰 세마리가 나타났고, 강한 태양빛으로 시야가 제한되고 얼음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북극곰이 다가와도 나같은 이방인들은 전혀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호텔앞 공동묘지가 떠올라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우트키아비크에는 150년 전부터 이미 과학조사가 시작되었다. 배로우 북극연구센터(BARC)에서는 코노코필립스ㆍ쉘ㆍ스타토일 등 대기업의 연구지원이 눈에 띄었고, 심지어는 중국해양대와도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 미국은 알래스카를 포함하여 15개 주로 구성된 주방위군 북극위원회를 설치하고 수색구조, 비상사태 대응, 공공안전 확보, 합동작전 계획, 그리고 북극환경에서 훈련 경험이 있는 인력을 공동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인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주방위군이 이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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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쇄빙선 아라온호가 기항하는 곳


알래스카주는 북극의 개발을 위한 대형인프라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석유가스가 풍부한 우트키아비크 인근의 푸르도베이를 중심으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AKLNG)와 노스슬로프지역간의 교통망 구축을 위한 전략적 북극 교통 및 자원(ASTAR)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또한 미국 본토로의 원유송출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는 노력도 시작했다. 심수항을 개발하고 석유와 더불어 막대한 매장량이 확인되고 있는 천연가스를 액화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LNG 시장인 동아시아를 겨냥하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알래스카가 경쟁력 있는 에너지자원을 세계시장에 내 놓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들지만, 언젠가 우리가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도 크지는 않지만 한국의 존재도 보인다. 우리나라 극지연구소의 쇄빙연구선인 아라온은 북극해조사를 위해 이곳을 자주 기항한다. 또 한국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도 있다. 한국 북극아카데미에 참가했던 일리사비크대학에 재학하는 알렉스 그리프 양은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을 강좌를 통해 이곳 북쪽 땅끝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북쪽 땅끝에서 한국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북극해 최전선에 위치한 우트키아비크의 역할은 점점 커져갈 것이다. 천년 넘게 흰올빼미와 고래사냥으로 살아온 이곳 북쪽 땅끝마을, 이곳조차 국제정치와 경제, 그리고 과학과 신앙은 존재하며 갈등한다.


⑩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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