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망치 폭행 후 두달…서촌골목 '갑'들도 쪽박찬다
세입자·건물주·주변상인 모두 피해
음식점 세들었던 서촌 태성빌딩 등
인근 임대료 분쟁 건물들 공실 늘어
“지자체 등 나서 중재자 역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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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서울 내자동(서촌)에 들어와 지금은 아들과 함께 ‘계단집’이란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수영(79)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건’이란 두 달 전 벌어진 ‘서촌 궁중족발 망치폭행’이다. 궁중족발을 운영하던 김모씨와 건물주 이모씨가 상가 임대료를 놓고 지난해부터 다툼을 벌이다 급기야 지난 6월 7일 김씨가 이씨를 망치로 내리친 것이다. 이후 임차인은 구속됐으며, 궁중족발이 있던 체부동 212번지 태성빌딩은 폐허가 됐다. 건물주인 ‘갑’과 세입자인 ‘을’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안긴 셈이다. 주변 상인도 울상이다. 이수영씨는 “불경기로 장사가 예전같지 않은 데다 그런 일까지 생겨 동네가 흉흉해졌다”며 “그쪽은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고 말했다.
60년 전 서촌에 들어온 이후 줄곧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이종진(83)씨는 “(임대료 분쟁은) 두 사람 다 잘못했다”며 “조금씩 양보했으면 됐는데, 고집부리다 그 꼴이 났다”고 했다. 궁중족발 맞은편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이상암씨는 “중재자가 있었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텐데 분쟁을 조정할 만한 기구나 조정자가 없었던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배화여고 입구까지 이면도로 300여m에 조성된 서촌 ‘세종음식거리’는 지난 2011년 수성동 계곡 복원 이후 맛집을 찾는 미식가는 물론 중국·동남아 관광객이 유입되며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랬던 이곳에 궁중족발 사건이 찬물을 끼얹었다.
권승희 누리공인중개사 대표는 “태성빌딩 건물주가 명도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십수 차례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동안 서촌은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분쟁의 중심이 됐다”며 “지난 가을 이후 서촌에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80여 개의 서촌 점포 중 상당수가 보증금과 권리금이 절정에 달했던 2~3년 전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가장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상인들은 오히려 부동산 중개업소를 탓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식집 주인은 “부동산은 건물주와 손잡고 서촌의 임대료를 올려놓은 장본인”이라며 “더는 ‘힘들다’ 말하기도 지친다”고 했다.
서촌에서 임대료로 인한 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종음식거리 맨 끝 맞은편에 자리한 인왕빌딩은 2년 전 임차인·임대인 간 분쟁으로 지금까지도 3층짜리 건물이 모두 공실 상태다. 최근 이 빌딩 외벽엔 ‘1층(90.3평) 보증금 1억원, 임대료 1000만원’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2년 전 임대료를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린 궁중족발 빌딩과 비슷한 금액이다. 주변 상인들은 “저 월세를 내면서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분쟁은 월세뿐만 아니라 권리금도 문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대인이 철거나 재건축을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임차인에게 권리금에 상응하는 보상금 지급 등의 내용을 포함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6일 발의했지만 국회 통과까지는 험난하다. 임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대차보호법만으로는 임대료 분쟁을 해소하긴 어렵다. ‘바닥 권리금’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라며 “지자체 등이 나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접수된 임대차 분쟁 72건 중 31건이 조정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이뤘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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