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황금빛 비경' 펼쳐진 곳…강원도 산속 '비밀의 길'
운탄고도1330 6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 옛날 광산이 있던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어 거대한 숲을 일궜다. |
강원도 깊은 산속에는 ‘운탄고도’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원래 이름은 ‘운탄도로’였다.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트럭에 실어 날랐던 도로여서다. 해발 1000m 언저리의 산속에 낸 비포장 산길이지만, 대형 트럭이 달렸던 길이어서 지금도 넓고 평탄하다. 30여 년 전 탄광의 시대가 저물자 운탄도로도 잊혔는데, 요즘은 그 길을 사람이 찾아와 걷는다. 정선 동원탄좌 자리에 들어선 하이원리조트가 10여 년 전 리조트 뒤편 화절령 주변의 운탄도로를 ‘운탄고도’로 조성한 게 시작이었다.
지난 1일 강원도가 그 운탄고도를 폐광지역 4개 시·군을 잇는 산악 트레일로 확장해 ‘운탄고도1330’이란 이름으로 개통했다. 영월에서 시작해 정선, 태백을 지나 삼척까지 이어지는 9개 길(코스) 174㎞ 길이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이름에서 ‘1330’은 길이 지나는 최고 높이다. 운탄고도1330의 5길 종점이자 6길 시작점인 만항재의 해발고도가 1330m다.
운탄고도 이정표. |
강원도관광재단이 ‘운탄고도1330’ 중에서 이맘때 걷기 좋은 세 구간을 추천했다. 영월, 태백, 삼척에서 한 구간씩을 추려줬다. 지난 20, 21일 추천 구간 세 개를 걷고 왔다. 태백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을 거닐었던 21일 오전, 오래전 화절령에서 느꼈던 감상이 다시 떠올랐다. ‘운탄고도는 오래된 비밀 같은 길이구나.’
구름 속 마을
지난 20일 드론으로 촬영한 영월 모운동마을. 해발 1088m 만경산 중턱에 걸쳐 있다. 옛날 옥동광산이 있던 자리다. |
강원도관광재단이 추천한 첫 코스는 영월의 모운동마을이다. 얼마 전 방영됐던 TV 예능프로그램 ‘운탄고도 마을호텔’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옛 탄광촌이다. 운탄고도1330의 2길과 3길이 이 마을에서 만났다가 헤어진다.
모운동마을은 산속에 꼭꼭 숨은 마을이다. 만경산(1088m) 중턱 해발 550∼750m에 자리해 산 아래에서는 마을이 안 보인다.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란 뜻의 모운동(募雲洞)도 마을 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옥동광산으로 마을이 흥청거렸던 시절, 이 구름 속 마을에 1만 명이 넘게 살았단다. 그 시절엔 학교·병원은 물론이고, 극장도 있었단다. 지금은 마을에 31가구 47명이 산다.
모운동마을은 아기자기하다. 예쁜 벽화를 그려 넣은 집이 곳곳에 있다. |
모운동마을을 이끄는 이장 부부. 앞에 있는 사람이 김은미 이장이고 뒤에 있는 사람이 옥동교회 문현진 목사다. |
모운동마을은 폐광촌답지 않게 어여쁘다. 십수 년 전 폐가에 그린 벽화도 생생하고, 마을 곳곳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이장 부부의 헌신 덕분이다. 마을의 유일한 교회인 옥동교회의 문현진(49) 목사와 동갑내기 아내 김은미 이장. 이들 부부가 앞장서 오래된 벽화를 새로 그리고, 마을 화단을 조성했다. TV 프로그램 촬영 이후 부쩍 늘어난 관광객을 위해 부부가 밥도 하고 커피도 내린다. 아쉬운 건, TV 프로그램과 달리 마을회관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현진 목사는 “영월군청이 허가를 안 내줘 산골 마을까지 찾아오는 손님을 돌려보내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만봉사 암자 오르는 길. 오솔길 옆으로 돌탑을 쌓았다. |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운탄고도로 접어든다. 길을 걷다 보니 탄광 시절의 흔적이 하나둘 나타난다. 광부가 사용했던 목욕탕 건물, 입구에서 붉은 물 흘러나오는 광산 갱도도 남아 있다. 싸리재 넘어 만봉사 갈림길까지 간 뒤 만봉사 암자에 올랐다가 내려오면 얼추 8㎞ 거리다. 만봉사 암자 오르는 숲길에 가을 정취가 그윽했다.
황금빛 자작나무 숲
태백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 지난 21일 오전 드론으로 촬영했다. |
강원도관광재단이 추천한 세 개 구간 중에서 가장 화려한 가을을 만난 구간이 운탄고도1330 6길의 지지리골이다. 약 4㎞ 길이의 숲길과 옛 운탄도로를 걸었는데, 깜짝 놀랄 만한 장관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취재에 동행한 강원도관광재단 강옥희 대표도 “지지리골은 강원도의 어느 가을 명소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지지리골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옛날 이 계곡에서 돼지를 잡아 돌판에 구워 먹었는데, 그때‘지지직’하며 고기 굽는 소리에서 골짜기 이름이 나왔단다. 해발 1100m 고원에 세운 오투리조트에서 지지리골을 따라 이어지는 서학골은 광부가 즐겨 먹은 돼지를 키우던 지역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서학골에 들면 돼지우리에서 나는 특유의 악취가 가시지 않았었다.
태백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 지난 21일 오전 드론으로 촬영했다. |
태백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 옛날 광산이 있던 자리에 조성한 인공림이다. |
오투리조트 주변 임도에서 가파른 산길을 약 1.5㎞ 내려가면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마침 자작나무 잎이 누렇게 익는 가을이었고, 마침 햇빛 받은 잎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오전이었다. 노란 잎사귀 휘감은 하얀 줄기의 자작나무 수만 그루가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는 장면은 오랜만에 만끽한 가을날의 절경이었다. 자작나무 숲에서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단풍으로 물든 운탄고도1330 6길. 산은 깊지만 길은 평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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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아래 운탄고도. 길을 따라 내려오는 개천의 물빛이 에메랄드빛이다. 석회암 성분을 품고 있어서다. |
가팔랐던 산길과 달리 약 20만㎡(6만 평)에 이르는 자작나무 숲은 평지에 가깝다. 바로 이 자리에 옛날 함태광산이 있었다. 자작나무 숲은 함태탄광이 1993년 문을 닫은 뒤 폐탄광 산림 훼손 복구사업으로 조성된 인공림이다. 20여 년 전 심은 자작나무가 이제야 오롯한 숲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평탄하고 널찍한 운탄도로가 마을까지 이어지는데, 운탄도로 옆을 흐르는 개천이 에메랄드빛이다. 옛 석회석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어서 옥빛을 띤다. 에메랄드빛 물과 노란 자작나무와 빨간 단풍나무와 파란 하늘이 어울린 거짓말 같은 풍광을 뒤로하고 마을로 내려왔다.
미인폭포
삼척의 미인폭포.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인생 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
운탄고도1330은 10월 1일 정식 개통은 선언했으나 지역마다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영월과 정선 지역은 정비가 마무리됐다. 이정표도 잘 돼 있고, 편의시설도 제법 갖췄다. 삼척은 사정이 다르다. 원래 계획에 있던 코스와 현재 운영되는 코스가 다르다. 이정표도 드물어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그런데도 삼척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인생 사진 명소로 떠오른 미인폭포다.
미인폭포는 ‘오로라파크’라고 이름을 바꾼 옛 통리역에서 약 1.5㎞ 거리에 있다. 그러나 그건 지도에 나오는 거리다. 미인폭포로 내려가려면 600m 길이의 산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이 구간이 영 고약하다. 직각에 가까운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길이 이어져, 폭포에서 올라올 때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삼척시 김성열 시설팀장은 “주말이면 이 절벽 길에서 극심한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미인폭포. 가파른 계곡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다. |
미인폭포 아래에서 이어지는 심포협곡. |
미인폭포는 볼수록 신비하다. 정말 미인처럼 생겼다. 약 50m 높이의 폭포로, 목이 긴 여인이 초록 저고리와 폭넓은 붉은 치마를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폭포 아래에 고인 물도 에메랄드빛이어서 신비감을 더한다. 폭포 주변이 석회암 지대여서 물빛이 다르다. 폭포를 두고 여러 버전의 전설이 내려오지만, 하나같이 설득력이 떨어진다. 폭포 아래로 협곡이 이어지는데, 이를 심포협곡(또는 통리협곡)이라 부른다.
미인폭포로 내려가는 산길에서 내다본 심포협곡. 멀리 하이원 추추파크가 보인다. |
협곡이 끝나는 자리에 하이원 추추파크가 있다. 옛 심포리역 터에 세운 기차 테마파크다. 심포리역은 10년 전 운행을 중단한 스위치백 구간에 있던 폐역이다. 옛날에는 기차가 통리역과 도계역 사이 16.5㎞ 구간을 운행할 때 전진과 후진을 병행하며 산을 넘었었다. 그 역주행 구간을 스위치백이라 한다. 지금은 기차가 거대한 나선형 터널을 통과한다. 스위치백은 광산의 시대가 남긴 역사유산이다. 운탄고도1330은 원래 미인폭포 아래 심포협곡을 따라 이어지지만, 내년 말에야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금은 통리에서 하이원 추추파크까지 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영월ㆍ태백ㆍ삼척=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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