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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샴푸·사과 화장품…그녀가 찜하면 지방이 산다

광고업계에서 10여년간 일했다. 직접 낸 아이디어로 탄생한 캠페인이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오랜 시간 상업광고를 만들던 중 우연히 맡은 로컬 캠페인에 푹 빠졌다. 광고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로컬 브랜딩에 집중하고 싶어 창업에 나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특산물을 브랜드화해 화장품 등을 만들고 있다. 지역만의 특색을 찾아주고, 더 나아가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비건 화장품 ‘온도’와 유기농 바디케어 브랜드 ‘어글리시크’를 운영하는 ‘브로컬리컴퍼니’의 김지영(40)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브로컬리컴퍼니’의 김지영 대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고 그 중 광고에 가장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광고는 다른 마케팅과 달리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소비자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직접 광고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졸업 후 광고회사인 HS애드에 들어갔어요. 광고기획자로 일하면서 기업의 상업광고를 만들었어요. LG전자 오븐인 디오스 광파 오븐, 청소기인 코드제로 A9 등의 광고를 기획했습니다. 타깃을 정밀하게 분석해 잠재 고객에게 영향을 줄 만한 메시지를 담아 광고를 만드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그렇게 오랜 기간 상업광고를 맡다가 2013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같은 사회단체와 함께 하는 캠페인 제작을 맡았습니다. 광고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가치 창출) 캠페인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기업이 이미 만들어낸 이익의 일부를 사회적 책임에 쓰는 방식이라면, CSV는 처음부터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광고를 만드는 데에 보람을 느꼈어요. 상업광고가 매출에 도움을 줬을 때 느꼈던 뿌듯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죠. 


광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관련 캠페인 기획에 집중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캠페인 중 하나가 2015년 서울문화재단과 진행한 도시게릴라 프로젝트 ‘마음약방’ 이었습니다. 마음약방 캠페인은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의 병을 자판기라는 재밌는 소재로 치료해주자는 프로젝트였어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난 지금 행복한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다른 사람의 삶도 비슷해 보였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을 알고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캠페인으로 풀고 싶었습니다. 치열한 경쟁,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한 시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캠페인을 해보자고 했죠. 


자살률과 연관성이 높은 우울증에 주목했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해요.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에 가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아요. 높은 문턱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길거리에 있는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자판기라는 가벼운 소재로 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마음약방’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마음약방 모습. /서울문화재단

예를 들어 자판기에 있는 여러 증상 중 ‘출근하기 싫어요’ 버튼을 누르고 500원을 넣으면 진단명과 함께 처방전이 나옵니다. ‘월요병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오늘만큼은 출근하지 말고 어디론가 떠나보세요’ 등과 같은 위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미래막막증’ ‘현실도피증’ ‘자존감 바닥 증후군’ 등 20가지 증상에 대해 각각 다른 처방전이 있었어요. 산책 지도와 함께 동네를 걸어보라던지 좋은 시나 명언이 적혀있는 쪽지 등도 있었어요. 이밖에도 기분 전환에 도움을 줄 만한 음식, 영화, 그림 등 다양한 처방전이 있었습니다.


2015년 2월 서울 중구 시민청에 마음약방 1호점을 론칭했습니다. 캠페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지역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약 11만명이 마음약방을 이용했다고 해요. 성공적인 공익 캠페인 사례를 국제적으로도 알리고 싶어 2016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칸 국제광고제에 ‘Remedies for the SOUL’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습니다. 건강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어요. 또 그해 한국광고주협회가 주관한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의 옥외 부문에서 좋은 광고상을 받았습니다.”

로컬 브랜딩에 관심 생겨 창업 결심

김지영 대표는 칸 국제 광고제 수상 이후 업에 대한 소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높은 업무 강도와 체력 소모가 큰 직업 특성상 많이 지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음약방’ 캠페인을 하면서 로컬 브랜딩에 관심이 커졌다. 서울이라는 지역 곳곳을 다니면서 동네마다 가진 특성과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지역마다 가진 특색을 브랜딩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17년 퇴사했다.


“퇴사 후 2달간 세계 곳곳을 여행했습니다. 런던의 쇼디치, 일본의 교토 등을 다니면서 지역 가치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허름하고 낡은 공장 터를 젊은이들이 이끄는 예술의 거리로 되살린 쇼디치, 전통적인 도시에 현대적인 요소를 더해나가는 교토가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나라의 로컬 브랜딩 사례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가진 특색을 브랜딩화하면 좋을 것 같았죠.

김지영 대표

한국에 돌아온 후 전남 무안군에서 김에 대한 리브랜딩 의뢰를 개인적으로 받았어요. 무안에서 생산한 김을 새롭게 마케팅해달라고 했죠. 사실 김 하면 완도나 대천이 유명하잖아요. 무안 특산물에 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무안에서 직접 김을 만드시는 걸 봤는데 두께에 맞춰 김을 굽는 기술이 대단하셨어요. 그걸 보고 ‘로스팅’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렸어요. 바리스타처럼 김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구워내는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전남 무안의 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생산품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죠. 지역마다 가진 독특한 정체성과 자원, 콘셉트를 살려 브랜드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제로원 프로그램’에 뽑혀 2018년 ‘브로컬리 컴퍼니’를 세웠습니다. 브로컬리컴퍼니는 브랜드(brand)와 로컬리(locally)를 합친 말이에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특산물 등으로 제품을 만들어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역 특산물로 만든 비건 화장품 브랜드 ‘온도’ 론칭

‘브로컬리컴퍼니는’ 지역의 생산품을 활용해 제품을 만든다. 첫번째 브랜드는 지역 특산물로 만든 비건 화장품 브랜드 ‘온도’다.

구절초를 수확하는 마을 풍경. /브로컬리컴퍼니

구절초를 달이는 모습. /브로컬리컴퍼니

“첫번째 제품은 전남 화순의 구절초로 만든 기초 화장품이에요. 어느 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전남 화순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서는 구절초를 전통방식으로 재배한다는 걸 알았어요.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청정한 구역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날 바로 화순에 갔어요.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었어요. 산등성이에 15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죠.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약초로 많이 쓰였다고 해요. 따뜻한 성질로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신진대사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구절초를 환으로 만들어 읍내에 있는 한약방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다고 했어요. 지금은 구절초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어요. 판로를 확보하는 게 어려워 구절초를 재배해도 연 소득이 5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이었죠.


전에는 가을이면 하얀 구절초꽃이 마을을 뒤덮어서 들국화 마을로 불렸는데, 수익이 나지 않아 구절초 농가 자체가 줄고 있다고 하셨어요. 마을 주요 소득원이던 구절초 재배 농가가 줄면서 마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우연히 할머니들의 손을 보는데 하나같이 부드럽고 매끄러웠어요. 비법을 물어보니 구절초를 우린 물이라고 하셨어요. 민간요법으로 구절초 우린 물을 이용해 피부를 진정시켰다고 해요. 아토피 등 피부에도 쓰이고요.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구절초에는 폴리페놀 등이 풍부해 항염, 항산화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구절초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순의 구절초 추출물을 담은 온도. /브로컬리컴퍼니

농약을 쓰지 않은 화순의 구절초 추출물을 화장품에 담아냈습니다. 1년여간의 연구 개발 끝에 구절초 수분 진정 라인인 에센스, 앰플크림, 클렌징 세 가지 상품을 론칭했습니다. 구절초의 영양성분과 효능을 보존하고자 가열 과정 없는 공정으로 만들었어요. 또 병풀, 쑥잎, 자작나무 수액 등 저자극 성분만을 사용해 민감성 피부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성분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그린 등급으로 자극 없이 쓸 수 있어요. 


‘온도’라는 브랜드로 구절초 재배가 늘면 마을이 다시 활성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제품력을 높이는 데에 더 집중했습니다. 2019년 온라인 펀딩 플랫폼에 제품을 처음 선보였어요. 순한 화장품에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7000만원 펀딩에 성공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화순 들국화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글이었어요. 로컬 브랜딩의 진정한 의미가 고객에게도 전해진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후 2020년 H&B(헬스·뷰티) 스토어인 올리브영, 29CM, 마켓컬리 등에 입점했어요. 화장품 재구매율은 60~70%로 높은 편입니다. 현재 화순 들국화 마을에서 구절초를 사들여 구절초 재배 농가에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사라져가는 지역의 야생초를 찾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나갈 예정입니다.”

못난이 과일로 만든 유기농 스킨케어 브랜드 ‘어글리시크’

이후 최근에는 두번째 브랜드 '어글리시크'를 론칭했다. ‘어글리시크’는 유기농 못난이 과일을 활용해 만든 스킨케어 브랜드다.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몰(bit.ly/3qE7M4K)에서도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못난이 과일로 만든 유기농 스킨케어 브랜드 '어글리시크'. /브로컬리컴퍼니 제공

“품질은 좋지만 상처 있다는 이유로 버려진 못난이 과일로 화장품을 만듭니다. 2019년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이 1년에 13억톤이라고 발표했어요. 전세계 음식물 소비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양이죠. 


국내 농가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예쁜 농산물’은 판로를 찾아가지만, 점이 있거나 모양이 굽어 있는 농산물은 ‘못난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있어요. 농산물의 경우 주로 겉모양을 기준으로 상품 가치와 등급을 매겨서죠. 이렇게 버려진 농산물은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줍니다. 농산물이 썩으면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메탄가스가 발생해요. 단순히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유기농 농산물을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제주 브로콜리로 만든 선크림, 경북 상주의 오미자로 만든 샴푸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브로컬리컴퍼니 제공

국내 로컬 농가에서 수확한 유기농 과일로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유기농 과일을 생산하는 농가를 찾아다니면서 협업을 제안했죠. 유기농 복숭아를 키우시는 한 농부님은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100개를 수확하면 마트에 보낼 수 있는 건 10개뿐이라고 하셨어요. 과일에 점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손상이 있으면 마트에서 아예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요. 영양과 성분은 그대로인데 너무 아깝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과일을 모아 천연 성분을 잘 살린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셨어요.


천연 유래 원료와 유기농 농산물로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지난 3월 제주 브로콜리로 만든 선크림(bit.ly/3qE7M4K), 경북 상주의 오미자로 만든 샴푸(bit.ly/3waFzn4), 전북 무주의 유기농 사과로 만든 여성 청결제(bit.ly/3x1so9j) 등을 출시했습니다. 제주 유기농 브로콜리를 담은 선크림은 쫀쫀한 크림 타입으로 피부에 부드럽게 발려요. 또 브로콜리 추출물에 있는 풍부한 비타민 성분이 민감성·트러블성 피부까지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또 눈 시림 현상 없는 순한 제품이에요. 벤조페논, 옥시벤존 등과 같은 유해성분을 쓰지 않았습니다.


경북 상주 유기농 오미자로 만든 샴푸는 오미자에 있는 비타민 성분이 머리카락에 영양과 윤기를 줍니다. 또 항산화 및 항균 효과도 있어 노폐물을 씻어내는 데 도움을 줘요. 두피를 건조하게 하는 합성 계면활성제 대신 식물유래 계면활성제를 썼습니다.” 

김지영 대표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최근 독일과 수출 계약을 했어요.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 ‘온도’, ‘어글리시크’ 브랜드로 더 다양한 로컬의 가치를 찾아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러한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지역에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도 로컬 브랜딩을 위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등 소농가가 모여 있는 동네를 위주로 다녀요. 현재는 제주도에 머물고 있어요. 제주 당근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 중입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로컬 브랜딩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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