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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퇴사 후 백수 호랑이 그려 '잭팟'

캐릭터 일러스트 브랜드 무직타이거

대기업 퇴사 후 부부 공동으로 개인 브랜드 시작

나른한 호랑이가 전하는 우리 이야기


“계속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과거 어른들은 아이 울음을 멈추기 위해 호랑이를 언급하며 겁을 줬다. 고조선 건국 신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신화, 민화 구분할 것 없이 호랑이는 이야기에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의 호랑이 사랑은 일러스트 브랜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MUZIK TIGER(무직타이거)’는 호랑이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문구류, 컵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무직타이거의 대표 캐릭터, 뚱랑이(뚱뚱한 호랑이) 시리즈는 2년 만에 누적 판매량이 30만개에 달한다. 에어팟 케이스·태블릿 파우치·노트북 스티커 등 20·30대 물건에서 무직타이거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 무직타이거는 호랑이를 앞세울까?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무직타이거 회사를 방문해, 배진영(34)·송의섭(36) 공동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송의섭(왼쪽) 대표와 배진영 대표. /jobsN

나만의 것을 만들고자 대기업 퇴사

배진영 대표와 송의섭 대표 모두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송 대표에게 그림은 생각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배 대표는 항상 그림을 그리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됐다. 이들은 졸업 직후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로 7~8년간 활동했다. 평소 자동차를 좋아하던 송 대표는 현대자동차 자동차 외관 디자이너가 됐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던 배 대표는 2년간 샘표의 식품 패키지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현대모비스로 이직했다. 그 후 5년 동안 GUI(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맡았다.


(배)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복지도 좋았고 배울 점도 많은 곳이었어요. 모두가 인정하는 곳이었죠. 하지만 연차가 오르다 보니 점점 저만의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경력과 함께 디자인 실력도 쌓이니 자신감도 있었고요. 회사 타이틀 없이 내 브랜드를 운영하면 성과 오롯이 내 것이 되겠다는 생각에 도전 의식이 불탔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퇴사 전까지 퇴근 후나 휴직 기간 중 틈틈이 일러스트를 그렸다. 여러 캐릭터를 그리며 문득 ‘무직 타이거를 출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무직(無職) TIGER. 실직을 의미하는 한자와 영어단어로 표현한 호랑이의 조합. 당시 회사에 다니고 있어, 어딘가의 굴레에 속하지 않은 채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무직’을 생각해냈다.


(송) “호랑이를 뒤에 붙인 건 한국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어요. 전 직장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보니 대륙마다 디자인 센터가 있었는데요. 경쟁을 통해 한 가지 디자인을 최종 선택하는 구조였습니다. 각국의 디자이너들과 협업·경쟁하며 한국적인 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느겼어요. 어설프게 다른 나라 감성을 따라 하면 한계가 있어요”


송 대표는 ‘무엇이 한국적일까?’ 연구하던 차에 민화를 접했다. 호랑이는 민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소재였다. 때로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서민으로 우리 민족을 나타냈다. 따라서 본인들이 희망하는 상태인 ‘무직’과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호랑이’를 조합해 무직타이거라고 이름 지었다. 또 송 대표는 “한국적임을 논할 때 전통만을 강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직타이거가 생각하는 한국적임이란 ‘현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무직타이거 초기 일러스트. /무직타이거 제공

1년 만에 터진 잭팟, 뚱랑이···”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덕”

처음부터 ‘어떤 브랜드가 되겠어’라는 생각은 없었다는 배 대표. 그는 브랜드 초기에 피보팅(외부 환경으로 사업 방향성을 바꾸는 것)을 경험한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2018년 5월 브랜드를 시작한 무직타이거는 라이프스타일 컨벤션 ‘CJ 올리브콘’에 참가했다. 당시 두 대표는 리빙 분야는 물론 오프라인 부스 참여가 처음이었다. 부스 성격에 맞는 제품을 준비하기 위해, 기존 민화 느낌 나는 일러스트를 패턴화시켜 패브릭 제품을 제작했다. 당시 방문자들은 무직타이거를 리빙 브랜드라고 인식해 구매 주문을 했다.


요청이 이어지자 쿠션 같은 리빙 제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하지만 리빙 제품 특성상 재구매율이 낮아 재고가 늘어났다. 두 대표는 당시 이사로 집 꾸미는 데에 관심이 커 리빙 제품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 컸다고 한다. 디자이너의 개인적 욕심과 소비자 수요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이후 무직타이거는 리빙 제품에서 문구류·디지털 액세서리 같은 잡화 제품으로 제작 방향을 틀었다.


무직타이거는 제품군은 바꿨지만, 일러스트 기반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브랜드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브랜드 초기와 현재 일러스트 느낌이 다르다. 최근에는 단순하고 귀여움을 강조한 캐릭터지만 초기에는 사실적이고 센 느낌이었다. 이러한 브랜드 느낌 변화는 데이터 검증 과정에서 이뤄졌다. 무직타이거는 하루에 일러스트 1개를 올리며 매일 고객 반응을 확인한다. 브랜드 고객이 누구이고 어떤 부분에서 고객들이 호응하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호랑이를 유연하고 귀엽게 표현할수록 반응이 좋았다. 무직타이거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기는 2019년 5월이었다. 바로 지금의 뚱랑이인 ‘LAZY TIGER’ 덕분이었다. 평소 반응보다 3배는 뜨거웠다고 한다. 기업에서도 협업 제의를 할 때 뚱랑이 시리즈를 원했다.


(배) “브랜드의 성격을 바꾸는 데 있어 두려움은 없어요. 처음부터 ‘어떤 브랜드를 만들겠다’ 확고하게 시작한 게 아니었거든요. 저희는 충분히 대중들의 의견을 준비가 됐었죠. 엄밀히 말하면 피드백이 너무 필요했어요. 개인 브랜드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채로 시작한 터라 반응을 보이면 최대한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0명·100명·1000명 점점 늘어나는 피드백을 흡수한 결과가 바로 ‘뚱랑이’이에요. 사실 캐릭터 쪽으로 브랜드 방향성이 잡힐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가 기대됩니다.”

평소 우리가 쉬는 모습을 호랑이로 표현한 LAZY TIGER 사진. /무직타이거 제공

사업화 안정화까지 1년 반 동안 잠 못 자···

개인 브랜드에서 일러스트 하나를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SNS에 매일 일러스트를 올리며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추린다. 일반적인 반응이 100이라고 하면 110~120의 반응을 보이는 게시물을 의미한다. 또 시즌마다 디자인 제품 시장을 직접 다녀 다음 시즌에 나가야 하는 제품군을 정한다. 추려진 제품군과 일러스트를 조합해 가장 잘 어우러지는 조합을 샘플로 제작한다. 이후 샘플을 직접 쓰며 보완점을 찾아 최종 제품에 반영한다. 제품 촬영과 온·오프라인 출시를 마치면 끝이다.


(송) “제품 생산에 있어 개인 브랜드 디자이너와 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과정은 조금 달라요. 기업에서는 마케팅팀이 소비자 조사를 끝내 완성된 데이터를 디자이너에게 건넵니다. 예를 들어 ‘이번 타깃은 20·30대로 남성성을 강조한 제품이 필요합니다’라고 요구하죠. 디자인팀은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할 뿐 제품 생산에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 브랜드는 시장 조사나 타깃층 설정, 디자인, 상품성 검증 모두를 해내야죠.


사업 초기에는 가내수공업이 많아 며칠에 걸쳐 3~4시간을 자면서 견뎠다고 한다. 주문량이 많아질수록 포장이나 검수 등 직접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커졌기 때문이다. (배) “사업이 안정화되기까지 1년6개월 정도 걸렸어요. 좋은 직원들을 만나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이었죠. 지금의 운영 실장님을 통해 물류나 배송 작업을 저희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었어요. 저희는 디자인·기획·마케팅까지는 감당할 수 있으나 재고·CS 관리 등은 문외한입니다. 물류 창고도 갖추고 원가 계산·불량률 관리 등을 운영 실장님께 맡기니 업무 시간이 단축됐어요. 요즘 저희는 오전 9시 출근하면 오후 10시 전까지 근무해요. 하지만 이제 잠은 잘 잡니다. 아마 계속 둘이서만 진행했다면 지금도 어려웠을 거예요.”

무직타이거는 귀엽고 단순한 작화와 사실적이고 센 작화 방식을 모두 시도하고 있다. /jobsN

직장 생활 경험해봤기에 개인 브랜드 운영의 기쁨 느껴

배 대표와 송 대표는 2021년 5월 브랜드 3주년을 맞이했다.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개인 브랜드를 시작한 일에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두 대표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배) “인터뷰 시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으나 지금은 만족스러워요. 가끔 더 빨리 시작 못 한 걸 후회하기도 합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에서 원하는 업무를 반복해야 하니 타성에 젖었어요.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니 자의든 타의든 열정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더군요. 자극이 계속 필요한 성향이라 사업이 더 잘 맞아요. 직장 생활이 모노톤이 없다면 지금은 무지개빛으로 정신없답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에요.”


송 대표 역시 사업 이후 ‘결과물이 내 것이 맞나’하는 회의감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8~10명과 함께 나눠 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대표 모두 직장 경험이 소규모 개인 브랜드 운영에 있어 도움이 컸다고 평했다. 배 대표는 “직장 생활을 통해 전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익히고 디자인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이전에 좋은 직장을 경험했기에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안목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스파오와 진행한 콜라보 제품 사진. /jobsN

일러스트 부흥 시기, 꾸준한 활동이 답

무직타이거는 작년보다 매출이 160% 성장했다. 자사 홈페이지에 하루 7000명이 방문한다. 일본·미국·동남아시아 해외 트래픽은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해외 포함 브랜드 입점 가게는 120~140곳에 달한다. SNS 팔로워 수도 2년 사이 3배 넘게 증가했다.


(배) “사실 시기적으로 개인 일러스트 브랜드가 모두 잘 되고 있어요. 나만의 취향을 찾는 게 중요한 세상이잖아요. 저희도 흐름을 잘 탄 거죠.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페도 휴일이 유동적인 곳보다 항상 그자리에 365일 여는 곳을 좋아하는 것처럼요. 공감 가는 내용을 그리기 때문에 친구가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1일 1포스팅을 꾸준히 하니 고객들이 친숙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2022년은 호랑이의 해다. 따라서 내년에 있을 특수를 대비하고 있다는 송 대표. 그는 앞으로 해외 진출과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인 일러스트 브랜드 시작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송) “개인 일러스트 브랜드는 소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컨셉을 유지할 경우 돌고 도는 트렌드에 언젠가 뜰 수 있지만 보통 유지가 어렵거든요. 내 그림이 유행이 맞아떨어지길 기다리고 보다는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봅시다. 반응 수치도 계속 확인하면서 운영하면 더 쉬울 거예요."


글 CCBB 이도형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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