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과의 대화를 빛으로 그리다
건축사진가 진효숙
사진을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 일컫는다. 그것이 또한 작가가 피사체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라면, 건축사진은 건축가의 고민에 사진가의 해석이 함께 응축돼 탄생하는 기록이자 작품일 것이다. 집과 ‘삶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한발 들어선 건축. 그 건축을 사진으로 담는 일 역시 세심한 관찰과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다.
첫 번째 개인전 'PRESENCE+ing' 에서 전시한 작품 중 'Now,we are.'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 이소진 건축가(아뜰리에 리옹 대표) 작업). |
아직 생소한 ‘건축사진가’로 일하기까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매우 운이 좋게도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고, 잘하는, 사진 찍는 일로 먹고산다. 더욱 운 좋게도 내게 일을 주며 함께 좋은 작업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클라이언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에너지를 나눈다.
대학 재학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보도사진연구회’라는 과내 동아리 활동으로 꾸준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매력과 사진을 찍는 ‘작업’으로부터 보고 생각하고 알게 되는 많은 일 덕분에 나는 졸업 후에도 사진 찍는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휴학 후 1년 동안 광고사진교육원에서 사진교육과정을 수료하면서 교육과정의 말미에 다양한 전문 분야의 사진 작업을 접했는데 그중 건축사진을 실습하는 과정에서 ‘내가 찾던, 원하던 사진의 길이 이것이다!’ 라는 느낌을 받고 건축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좀 낯간지럽지만 말이다.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에 건축사진 전문작가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2년 반가량 수업을 받기도 했다. 현장에서 작가 선생님의 작업을 보고, 간혹 과제를 내주시면 고민해보고 사진을 찍어 그 사진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그때만 해도 건축사진은 건축 분야 내에서도 그 전문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건축가들도 전문가에게 사진을 맡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때였다. 소개로 일을 조금씩 시작하면서 후에 건축잡지에서 일하게 됐지만, 처음에는 일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시간이 많을 때엔 틈틈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게 된 어떤 일에도 감사했다. 시작할 때는 정말 하루하루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절실한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부족한 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고민도 많았다. 사실 나는 사진가이기에 건축물을 이미지로 이해하고 이해를 넘어서는 감동을 받도록 사진 찍는 것이 일이지만, 부족하게 느끼는 부분은 책과 강연의 도움을 많이 받아 극복하려고 한다. 다행히 요즘에는 다양한 주제와 콘셉트의 건축 관련 책이 출판되고 있어 건축가의 고민과 지향하는 가치관, 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세미나와 강연, 전시회에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얘기를 듣는 것도 좋다.
건축가의 의도와 사진가의 고민이 만나는 건축사진
건축사진가의 활동 분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역시 건축전문잡지다. 건축사진가 대부분이 다양한 매체와 함께 작업을 하고, 나 역시 프리랜서로 여러 잡지의 의뢰를 받아 작업했으며 지금은 건축전문지 <와이드>의 전속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여러 건축가의 의뢰를 받아 촬영하기도 하는데, 요즘엔 건축가들도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면서 사진작업을 많이 의뢰하는 편이다.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한 그 건축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사진에 아름답게 담는 것이 사진가의 일인 만큼 나는 내가 찍어야 할 건축물과 처음 만나면 여러 가지 상상을 한다. 어떤 모습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이미지화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고민하고 그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할 공간과 면과 부분을 찾는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빛과 만나는 시간을 찾는다. 가장 좋은 시간대에 가장 좋은 모습을 찾아 담는 것이 사진을 찍으면서 늘 신경 쓰는 부분이다.
건축사진 작업은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사진 활동이다. 의뢰인인 건축가가 있고 사진가는 촬영할 대상을 의뢰받아서 찍는데, 그럼에도 결과물의 많은 부분이 사진가의 고민과 결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편이다. 물론 사전에 건축가와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간과 디자인 의도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진가의 해석을 더해 작업을 완성한다. 상업사진이지만 작업 과정에 사진가의 작가적 고민이 반영되는 것이 건축사진의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건축사진을 일로 삼은 후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공간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크게는 계절의 변화부터 작게는 하루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까지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건축사진 작업은 피사체가 외부에 있고 계절별로 대상의 분위기가 다르기에 이를 고려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하루 해가 뜨는 시간부터 지는 시간까지 빛의 작은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하기에 빛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건축사진 작업은 이런 관찰에 감성이 더해져 이루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사는 주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작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조재원 건축가(01_studio 대표)가 작업한 집 ‘ Floating-L’(제주도 소재)을 촬영한 작품 'Floating-여름'. |
‘이것이 최선일까’… 끊이지 않는 고민으로부터
모든 일이 그렇듯 좋아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스트레스는 있기 마련이다. 현장에서 촬영할 때에는 ‘왜 이것을 찍는 것일까’ ‘더 좋은 위치는 어디일까’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더욱 뚜렷한 생각이 담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고,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는 직업으로 가질 수 없는 때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걱정도 한다. 그래서 개인 작업에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의 끈을 조인다. 때때로 내가 고민하는 주제와 맞닿은 대상을 만나면 상업적인 활동 안에서 개인적 작업도 동시에 진행한다. 작년에는 개인전을 열어 그렇게 작업한 사진도 전시했다. 이 모든 일, 생각, 고민, 걱정이 즐거움과 적절히 섞여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건축사진가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건축사진이 자료일 뿐만 아니라 건축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더욱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건축 관련 책과 매체가 다양하고 일반대중도 많은 관심을 갖는 추세여서 사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을 실감한다. 사진가가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건축물이 가진 매력이 달리 보인다. 앞으로 사진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
건축사진가가 되려면?
1 건축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사진을 좋아해야 한다.
2 돌아다니는 일도 즐길 수 있어야 하기에 든든한 체력과 건강은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3 주위 환경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는 관찰력도 필요하다.
4 부지런함을 갖추면 더없이 좋다.
글·사진 진효숙
도시와 집과 사람을 찍는 건축사진가이자 사진가. 도시와 건축 안에 사람의 향기와 마음을 담기 위해 고민한다. 새것만큼이나 낡고 황폐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책 작업으로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아파트를 사진 기록으로 남긴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장림종·박진희 공저)와, 집 ‘잔서완석루’에 대한 3년여의 시간을 사진으로 담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송승훈·이일훈 공저)이 있다. 종묘와 낡은 아파트의 현재 진행형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PRESENCING>(원도시 건축갤러리) 전시회를 열었고, 2012년 건축사진가들의 단체전 <건축도시기행>(헤이리 모아갤러리)에 참여했다. 2014년 윌링앤딜링 갤러리에서 제1회 개인전 <PRESENCE+ing>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