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없는 주식학 #19 정유&화학
|정유: 친환경 시대에 정유사가 웃는 이유.
#S-Oil #SK이노베이션
전세계에서 애플과 시가총액 1위 경쟁을 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마이크로소프트? 아니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정답은 바로 '아람코'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100% 소유한 국영 석유기업으로 중동이라 하면 떠오르는 오일머니의 대표주자다. 올해 또 다른 산유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서 석유 수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가가 폭등하는 에너지 대란이 발생했다. 덕분에 전세계 정유사들은 수십 년 만에 초호황기를 누리게 되었다. 정유 산업은 워낙 세계 경제와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기업에서 출발하는 Bottom-up 분석보다는 산업에서 출발하는 Top-down 분석이 적합하다. 정유 산업의 구조와 정유 기업의 미래를 알아보자.
정유 산업이란 원유를 정제탑에서 가열함으로써 발생하는 LPG, 휘발유(가솔린), 나프타, 제트유, 등유, 경유(디젤), 벙커유, 아스팔트 등을 판매하는 비즈니스이다. 이 중에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휘발유와 경유, 보일러에 쓰이는 등유, 비행기와 배에 들어가는 제트유와 벙커유, 건설업에 쓰이는 아스팔트 순으로 마진이 많이 남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유 기업이 경쟁력이 있다는 말은 원유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해서 최대한 많이 쥐어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내 정유사는 2010년대부터 원유를 효율적으로 가공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낮은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와 경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고도화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실적이 개선되는데 유가를 결정하는 것은 원유의 수요와 공급이다. 대표적인 원자재인 원유의 수급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몇 가지 요인들을 통해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짐작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원유 수요는 글로벌 GDP 성장률과 궤를 함께 했다. 현재까지는 경제가 꾸준히 발전했기 때문에 원유 수요는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원유 수요에는 실제 수요가 아닌 투기 수요가 섞이기 마련이다. 주식 시장보다 훨씬 규모가 큰 원자재 상품 선물 시장에서 글로벌 스마트머니는 유가의 방향성에 베팅을 하기 때문에 기간을 짧게 놓고 보면 원유 수요는 급등락을 반복한다.
원유 공급은 상대적으로 예측 가시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OPEC(석유수출구기구)이 전세계 원유 공급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유가를 조절하는데, 미국에서 셰일혁명이 일어나자 OPEC은 러시아를 포함한 비OPEC 국가들과 함께 석유 생산량을 논의하는 OPEC+를 결성했다. OPEC+ 입장에서도 너무 비싼 유가에서는 원유 수요가 감소할 리스크도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 상황을 고려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산유량을 유지한다. 이렇게 투기 세력과 과점 세력이 원유의 수요와 공급을 들었다놨다 하기 때문에 원유 시장에서는 수급 불균형이 자주 발생하고 유가와 정유사의 실적은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반복한다.
국내 정유 산업은 S-Oil,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빅4가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S-Oil은 정유 퓨어플레이어이며,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배터리 산업의 영향을 받는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GS와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로 정유주 투자로는 부적절하다. 정유 업계에는 사후정산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는데 주유소의 매출 불확실성은 커지는 반면 정유사는 독과점을 유지하고 실적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관행이다. 이로 인해 주유소와 정유사 간 분쟁은 계속되었고, 2010년대 초반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와 삼성토탈을 중심으로 알뜰주유소를 활성하려고 했으나 특혜 및 실효성 논란으로 무산되었다.
정유 산업을 분석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용어가 있다. '정제마진'이란 정유사가 원유를 가공해서 만든 제품 가격에서 원재료인 원유 가격을 뺀 스프레드이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는 원가 손실을 보지만 그 이상으로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정제마진이 개선된다. 또한 정유사의 원유 재고 가치인 '재고평가손익'을 회계적으로 계산할 때 S-Oil은 선입선출법을, 나머지 3사는 평균법을 사용한다. 유가가 오르는 국면에서 S-Oil은 낮은 가치의 재고를 먼저 사용하고, 높은 가치의 재고가 쌓이므로 실적이 크게 개선된다. 한편 나머지 3사는 평균법을 사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유가가 올라서 정유사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지만 사실 정유사 CEO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시장에서 급등이 있으면 급락도 있고, 특히 원유 시장에서는 급등락이 빈번하다. 따라서 정유사는 이렇게 돈을 잘 벌 때 기쁨에 취하지 않고 신사업을 준비한다. 아람코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S-Oil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수소연료전지 기업 FCI를 협력하여 수소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SK온(배터리)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친환경 사업에 나섰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또한 각각 전기차충전소와 도심항공교통으로 모빌리티 사업에, 화이트바이오와 블루수소로 친환경 사업에 뛰어들었다.
친환경 시대에 정유주 투자가 웬 말이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이 당선 이후 친환경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린에너지는 아직 먼 미래였다. 기술력의 한계와 실용성의 문제로 오히려 에너지 대란이 발생했고 친환경 전환에 실패한 대가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으로 되돌아왔다. 게다가 지정학적 갈등까지 겹치면서 최근에는 친환경에너지에 가장 적극적이던 유럽조차 항복을 선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비난받던 오일메이저는 그동안 전통에너지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친환경에너지을 인수하고 있다.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정유사들을 친환경 기업이라며 칭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학: 산업의 시작은 석유에서부터.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 #대한유화
#효성티앤씨 #태광산업 #코오롱인더 #한솔케미칼 #후성 #휴켐스 #롯데정밀화학
이쯤되면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도대체 석유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길래 아람코는 전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세계의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일 수 있을까? 감히 말하자면 모든 산업은 석유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우리 눈에 석유가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플라스틱, 비닐, 스타킹, 등산복, 타이어, 위생장갑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은 전부 석유를 가공해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석유화학 기업들을 중심으로 정유주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화학주를 알아볼 것이다. 두 산업의 연관성을 잘 이해하면 경기민감주 투자가 보다 쉬워질 것이다.
우선 정유 산업과 화학 산업을 비교해보자. 두 산업 모두 석유에서 출발하지만, 정유 산업은 정제탑에서 석유를 끓여서 나오는 물질들을 판매하고, 화학 산업은 그 중에서 나프타(납사)만 한번 더 끓여서 나오는 물질들을 판매한다. 즉, 정유 기업이 여러 부위를 1차 가공하는 도매업자라면, 화학 기업은 특정 부위만 2차 가공하는 소매업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전후방 산업 간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 정유사는 정유, 윤활유, 석유화학 산업을 동시에 영위하지만 정유사의 매출구조를 살펴보면 정유 부문이 70% 이상 차지한다. 이번에는 위에서 살펴본 정유사를 제외하고 석유화학 부문의 매출 비중이 높은 화학 산업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볼 것이다.
정유화학은 낯선 용어가 많기 때문에 비전공자라면 처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석유화학협회의 '국내 석유화학 계통도'를 보면서 전체적인 산업에 어떤 기업이 포진되어 있는지 보면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화학 산업 또한 정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B2B 비즈니스 중심이기 때문에 마케팅보다는 업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가 화학주의 희비를 결정하는데,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구분하는 것은 원재료 조달능력과 제품 가공능력이다. 원재료인 나프타를 저렴하게 조달해서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 같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가공할수록 기업의 이익 스프레드가 커지고 실적이 개선된다.
매주 화학 산업의 제품 및 원재료 가격을 팔로우업하면서 익숙해지면 단순한 전략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화학 기업은 NCC(Naphtha Cracking Center)에서 나프타를 끓여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 톨루엔, 자일렌을 추출한다. 그리고 이 원료를 가공하여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먼저 합성수지에는 범용 플라스틱으로 활용되는 PE와 PP, 장판이나 샷시에 쓰이는 PVC, 가전제품에 쓰이는 PS와 ABS 등이 있다. 또한 합섬원료에는 면을 대체하는 폴리에스테르, 울을 대체하는 아크릴, 스타킹에 쓰이는 나일론, 등산복에 쓰이는 스판덱스가 있다. 그리고 합성고무에는 타이어에 들어가는 BR과 SBR, 위생장갑에 들어가는 NBR이 있다.
정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금호석유가 국내 화학 산업 빅4로서 자리잡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정유 산업은 소수의 업체들이 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화학 산업은 빅4 외에도 다수의 업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학 산업 전반에 투자하고 싶다면 롯데케미칼이나 금호석유를, 배터리나 태양광처럼 화학 외 산업에도 발을 뻗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면 LG화학이나 한화솔루션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한편 롯데케미칼이나 금호석유보다 리스크는 크지만 모멘텀을 크게 받을 수 있는 대한유화 같은 작은 화학 기업도 턴어라운드 하는지 모니터링 하면 좋다.
대체로 화학 산업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만 각 기업마다 주력 제품이 있다.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는 PE와 PP의 비중이 가장 높고, LG화학은 PS와 ABS의 비중이 가장 높다. 한화솔루션은 국내 최초로 PVC를 생산하며 핵심 사업으로 육성했고, 금호타이어를 연상시키는 금호석유는 BR과 SBR 등 합성고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한편 합섬원료 시장에서 효성티앤씨는 전세계 스판덱스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태광산업은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나일론, 스판덱스 뿐만 아니라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탄소섬유 사업에도 진출했다. 코오롱인더는 패션 부문 외에도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를 골고루 생산하고 있다.
한편 특정 제품을 2차 가공하거나 정밀화학 분야에 집중하는 화학 기업들도 있다. 한솔케미칼은 반도체용 과산화수소를 주력 제품으로 2차전지 소재까지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고, 후성은 대표적인 불소화학 업체로 냉매, 2차전지 전해질, 반도체 가스 등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하여 경쟁력을 구축했다. 한편 휴켐스와 롯데정밀화학은 각각 질산과 암모니아를 토대로 한 정밀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롯데정밀화학은 셀룰로오스 기반 친환경 소재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또한 롯데그룹의 수직계열화 작업에 따라 롯데정밀화학을 롯데케미칼이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다는 루머가 제기되면서 수급 측면에서도 주목해 볼만하다.
화학 산업은 우리 삶에 가까이 있지만 실체가 보이지 않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B2B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브랜드나 마케팅보다는 퀄리티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따라서 화학 산업 투자 시에는 음식료 산업과 정반대로 원재료와 가장 가깝고 가공업체에게 원재료 가격 상승을 전가할 수 있는 기업들로 추려야 한다. 그리고 기업마다 취급하는 제품군이 다르므로 특정 제품 수요가 증가하면 해당 기업의 실적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차를 두고 화학 산업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아직 화학 산업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안전마진이 확보된 대장주 중심의 투자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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