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과 반도체, 꽃놀이패를 들다
CEO's Spirit 5. 삼성전자가 그리는 빅 픽처와 꿈꾸는 뉴 퓨처
Keywords
-반도체 슈퍼위크: 삼성전자의 빅 픽처
-DRAM: 블랙스완의 출현
-NAND: 치킨게임의 종말
-파운드리: 골디락스의 시작
-반도체 구조조정: 삼성전자의 뉴 퓨처
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실적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은 반도체 슈퍼위크를 보냈다. 하지만 경영자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업계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지난 달에 있었던 이슈를 정리해보면 오랫동안 기다렸던 인텔의 '사파이어래피즈'가 출시되며 DDR5 기반 DRAM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았다. 그리고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가 M&A를 재논의한다는 소식에 NAND 시장의 업체 간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또한 작년에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에 이어 일본 대기업 8곳이 합작하여 설립한 라피더스가 2nm 공정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DRAM, NAND, 파운드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전자도 복잡해지는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빅 픽처를 그려야 할 때가 됐다.
|1. DRAM,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80년대 미국에서 일본으로, 1990년대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DRAM 주도권이 넘어갔고 현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90%에 가까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치열했던 가격 경쟁 끝에 2000년대 독일의 키몬다, 2010년대 일본의 엘피다가 무너지면서 살아남은 DRAM 업체들은 독과점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와서 보면 마지막 순간에 마이크론이 버텨낸 것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아니었다 싶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LCD 시장에서 이미 중국의 BOE와 CSOT에게 항복했고 OLED 시장까지 위협받고 있는데, DRAM 시장에서는 마이크론의 존재 덕분에 중국의 도발을 미국이 대신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DRAM 업체들이 자력으로 격차를 벌려나가야 한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올해 DRAM 시장도 녹록치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지만 장기적인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콘퍼런스콜에서는 'ChatGPT'와 같은 AI 기술의 발전이 메모리 업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비록 AI 테마가 과열된 건 사실이지만 자율주행, 확장현실, 빅데이터, 클라우드 같은 키워드가 전부 AI라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시대의 도래에 대비해서 차세대 DRAM 규격인 'DDR5' 양산 체제를 갖추고, DRAM과 NAND의 장점을 결합한 'STT-MRAM' 기술 개발을 마쳤다. 또한 DRAM에도 EUV를 도입하여 미세화를 통한 성능 개선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HBM-PIM', 'CXL-PNM'처럼 전력 소모는 낮추고 저장 용량과 연산 속도를 높인 AI에 최적화된 차세대 DRAM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어떤 싸움을 벌이면서 DRAM 1위 자리에 올랐는지 알고 나면 결코 안심할 수는 없다. 1980년대 삼성전자처럼 잠재적인 위험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의 CXMT가 3D DRAM 개발에 나섰다는 보도가 제기되었다. 물론 아직 기술 상용화까지는 많은 장애물이 남아있지만 삼성전자는 블랙스완이 출현하는 것에 경각심을 갖고 사소한 이슈에도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한다. 또한 2019년 삼성전자가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은 메모리 반도체를 버리고 시스템 반도체로 넘어가자는 뜻이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기반으로 시스템 반도체 신도약을 이루자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비전은 메모리, 특히 DRAM 왕좌 수성을 전제로 함을 깨달아야 한다. 절대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으면 안 된다.
|2. NAND,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002년 삼성전자는 당시 비주류였던 'NAND' 구조를 밀어붙이면서 'NOR' 구조를 고집한 도시바를 플래시메모리 선두에서 끌어내렸고, 2006년 'FG' 기술을 'CTF' 기술로 대체하면서 플래시메모리는 곧 NAND라는 인식을 심었다. 최근 NAND 시장에서는 고단화가 화두인데, 작년 7월에는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232단 NAND를 양산한 데 이어 8월에는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238단 NAND를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싱글스택'으로 128단까지 쌓을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256단까지 가능하다고 자신했으나, 작년 11월 '더블스택'으로 236단 NAND를 양산하는 데 그쳤다. 한편 삼성전자가 2030년 1000단 NAND 개발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SK하이닉스가 'PUC' 기술을 적용한 4D NAND를 선보이며 새로운 돌풍을 준비하고 있다.
NAND는 DRAM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건 삼성전자밖에 없다. DRAM에 비해 여전히 기술 발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뿐더러 무려 6개 기업(삼성전자, 키옥시아, 웨스턴디지털,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텔)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2021년 SK하이닉스가 인텔의 NAND 사업부(솔리다임)를 90억 달러에 인수하며 단숨에 2위권으로 도약했다. 이때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이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NAND 업체 간 통합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2023년 반도체 불황 속에서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의 M&A 가능성이 재점화되면서 NAND 시장도 DRAM 시장의 역사를 뒤따라가고 있다.
최근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 인수를 위해 헤지펀드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만약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를 흡수하는 형태로 M&A가 완료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도 호재가 된다. 232단 NAND 양산에 성공하며 거세게 추격하는 중국의 YMTC를 미국이 눌러줄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M&A 성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생산 효율화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치킨게임이 종말로 치닫는 NAND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말고 신기술 개발을 통한 초격차를 도모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DRAM과 NAND라는 메모리 양 날개를 휘저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외쳤듯이 지금은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출 때다.
|3. 파운드리,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챙겨야 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기껏해야 7년 남짓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세계 최초로 10nm 공정 양산에 성공하고, 2019년 세계 최초로 EUV 기반 7nm 공정을 도입하며 TSMC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0년 삼성전자가 5nm 공정 양산에 먼저 성공했지만 곧바로 TSMC가 따라붙었고, 이때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지속적으로 수율 문제가 제기되며 많은 고객사를 TSMC에게 빼앗겼다. 2022년 두 기업은 이번에도 거의 나란히 3nm 공정 양산에 성공했는데 이번 맞대결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는 삼성전자는 신규 공정기술인 'GAA'를 도입하고, TSMC는 기존 공정기술인 'FinFET'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메모리에서 역전을 거듭했던 삼성전자가 이번에도 패스트팔로워를 넘어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10nm 이하 공정 양산이 가능한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뿐이다. 기술적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만의 UMC와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는 10nm 이하 공정 개발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런데 TSMC와 삼성전자의 이파전에 난데없이 인텔과 라피더스가 등장했다. 반도체 자국 생산을 위한 각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인텔은 2024년 상반기 2nm 공정 양산 및 하반기 1.8nm 공정 양산, 라피더스는 2027년 2nm 이하 공정 양산이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TSMC와 삼성전자도 2nm 공정 양산은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텔과 라피더스의 로드맵은 다소 신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뚜렷한 로드맵 없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10nm 공정 개발에 실패한 기업들의 사례에서 장기 비전의 필요성은 이해가 된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보면 TSMC가 압도적으로 앞서 있지만 조만간 선단공정과 성숙공정으로 시장이 구분될 것이다. 또한 TSMC는 고질적인 중국 리스크를 안고 있고, 최신 공정이 애플에게 선배정되기 때문에 팹리스 기업들은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설령 삼성전자가 기술력이나 영업력에서 TSMC보다 열위에 놓이더라도 유일한 대체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한편 인텔과 라피더스가 선단공정에 진입하더라도 반도체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파운드리 시장은 경쟁이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골디락스가 시작될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엣지를 지니려면 전공정과 후공정을 아우르는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명품 코스요리를 위해서는 셰프가 에피타이저와 디저트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 법이다.
많은 국민들이 삼성전자를 소비자 또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제품을 공개해도 단점만 부각하며 깎아내리기 바쁘고, 실적을 발표하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동안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위대한 기업이고, 이를 위해 힘쓴 삼성전자의 경영자와 근로자는 모두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독과점 체제로 반도체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미래에는 삼성전자가 꽃놀이패를 들고 있는 키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도 사람과 같아서 전성기가 지나면 쇠퇴하기 마련이지만, 인간의 수명이 의료기술의 발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처럼 기업도 신기술과 신사업을 이식하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뉴 퓨처를 꿈꾸는 기업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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