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의 승리 공식
Keywords
- 시장의 법칙: 3등은 의미없다
- 파운드리: TSMC와의 동침
- 팹리스: 합종연횡
- 메모리: 리더의 품격
- 승리의 공식: 2등을 지켜라
올해 4월 초 삼성전자는 AMD와 라데온 그래픽 설계자산을 엑시노스에 확대 적용하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AMD는 2019년부터 AMD의 RDNA 아키텍처를 활용하는 라이선스를 체결했고, 2022년에는 RDNA2 기반 GPU인 '엑스클립스'를 공동 개발했다. 물론 기대했던 만큼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AMD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에서 삼성전자 LSI사업부가 설계 역량 강화에 얼마나 큰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AMD는 라데온이라는 GPU 브랜드를 안착시킨 데 이어 라이젠이라는 CPU 브랜드까지 출시하며 설계 명가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재평가받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설계 역량이 뒷받침된 엑시노스의 부활과 확장이 절실하다.
© 삼성전자 뉴스룸
|1. 자율주행, 차는 움직이는 스마트폰이다.
스티브 잡스의 뒤를 잇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일론 머스크가 거론되기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다음으로 인류의 삶을 뒤바꿀 디바이스로 자동차에 주목한다. 그리고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뀐 이후 자동차에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 '가장 거대한 전자기기'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기존에 자동차에 탑재되었던 MCU나 ECU 같은 차량용 반도체의 역할은 단순한 기능을 구동하고 제어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스마트카 시대의 차량용 반도체는 운전자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키고 운전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 완벽한 자율주행이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자율주행으로 귀결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엔비디아, 퀄컴, 모빌아이, 암바렐라 같은 자율주행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들로부터 수주를 받는 한편 시스템LSI 사업부는 자체적으로 차량용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다.
2022년 모바일AP 시장점유율은 출하량 기준으로는 미디어텍이, 매출액 기준으로는 퀄컴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칩의 성능 측면에서는 애플이 압도적이었다. 출하량, 매출액, 성능 그 어디에서도 삼성전자 엑시노스의 이름은 3위 안에 없었다.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가 되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고객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장수가 바로 모바일AP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출시된 갤럭시A54에는 엑시노스1380이, 갤럭시M14에는 엑시노스1330이 탑재되었지만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S23에는 스냅드래곤8 Gen2가,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에는 스냅드래곤8 Gen1+가 탑재되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이 맞붙는 전쟁에서 핵심적인 전투의 지휘권을 퀄컴에게 모두 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엑시노스가 A바이오닉, 스냅드래곤, 디멘시티에게 시장을 빼앗겼지만 그 명성이 평가절하 당해서는 곤란하다. 시장은 메모리반도체 불황기가 찾아오자 왜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쪽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냐며 질책하지만, 삼성전자는 오래 전부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파운드리는 TSMC를 유일하게 위협할 수 있고, 이미지센서는 소니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모바일AP는 세계 최고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한 차례 삐끗했을 뿐이다.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엑시노스는 내년 복귀를 앞두고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 뿐만 아니라 MX사업부의 AP솔루션개발팀과 파운드리 사업부의 SF4 공정이 힘을 보태고 있는데, AMD의 RDNA2 기반 GPU 솔루션과 FO-WLP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도 엑시노스2400에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2. 확장현실, 스마트폰으로 집을 통제한다.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은 AP의 성장성을 협소하게 바라본 전망에 불과하다. 이미 수많은 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차세대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제패했던 PC 제국이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 혁명에 무너졌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집중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기업들에게 사업 다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올해 하반기 애플의 XR 디바이스 출시가 예정되어 있고 삼성전자는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구글, 퀄컴과 함께 XR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확장현실이 몇 년 안에 상용화될 가까운 미래라면 자율주행은 아직 멀었지만 훨씬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다. 도로 위를 사수하기 위한 반도체 기업들의 전쟁도 이미 막을 올렸다.
© 삼성전자 뉴스룸
2019년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오토'라는 차량용 반도체 브랜드를 런칭했다. 엑시노스 오토는 NXP, 인피니언 등이 주름잡고 있는 MCU 같은 차량용 반도체가 아니라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작동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칩 위에 구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엑시노스 오토 V는 운전석에서 디스플레이나 오디오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 칩이고, 엑시노스 오토 T는 5G 네트워크로 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한 커넥티비티 칩이라고 할 수 있다. 엑시노스 오토는 이미 아우디와 폭스바겐에 탑재된 이력이 있고 최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BMW와도 공급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는 스마트폰보다 적게 팔리고 교체주기가 길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모바일AP에 비해 단가가 높고 대당 채용량이 많기 때문에 성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퀄컴 스냅드래곤 라이드플렉스, 테슬라 FSD칩과 D1)
|3. 위성통신, 상상을 자극하라.
(엑시노스 커넥트, 엑시노스 모뎀, UWB, 퀄컴 스냅드래곤 새틀라이트, 애플 위성통신 기술, 글로벌스타)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반드시 살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반도체 기업들의 전쟁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이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물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쉽지 않았고, IoT의 개념을 비즈니스모델로 안착시킨 기업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5G 통신이 상용화되고 인공지능 스피커가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여러 디바이스가 하나로 연결되기 위한 인프라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집 안의 가전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고, 헬스케어나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손과 차를 넘어 반도체는 이제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여러 사업부 중에 전사 실적의 방향성을 좌우할 정도로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는 사업부는 DX부문의 MX사업부와 DS부문의 메모리 사업부이지만 네트워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는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서서 챙긴다는 글로벌 통신 사업은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 중국의 화웨이가 버티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5G 통신 기술을 앞세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애플 홈페이지
(퀄컴 새틀라이트, 애플 위성통신과 글로벌스타)
올해 3월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커넥트'라는 UWB(Ultra Wide Band, 초광대역) 기반 근거리 무선통신 반도체 브랜드를 런칭했다. 엑시노스 커넥트의 첫번째 제품인 '엑시노스 커넥트 U100'은 초연결 시대를 위한 프로세서로 디바이스의 위치와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UWB 기반 디바이스는 2030년까지 18억 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스마트폰, 스마트카, 스마트홈,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응용처에서 활약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무선 전파 기반이기 때문에 GPS가 터지지 않는 실내에서도 활용될 수 있고, 초저전력 아키텍처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VR이나 AR 등 확장현실 디바이스에도 적용될 수 있다. 퀄컴, 구글과 XR 동맹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커넥트를 통해 IoT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코어를 자체 설계하겠다는 삼성전자의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 퀄컴이 독사를 뜻하는 '크레이트'라는 이름으로 CPU 코어를 개발하자 삼성전자는 독사를 잡아먹는 포유류의 이름을 따서 '몽구스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하지만 2019년 삼성전자는 실패를 인정하고 CPU 설계팀을 해체했다. 이후 퀄컴은 ARM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라이온'이라는 CPU 브랜드를 공개했다. 올해 출시되는 AP부터 퀄컴의 완전 독자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엑시노스가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한참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순식간에 가능으로 만드는 DNA가 있다. 엑시노스의 뼈 아픈 기억을 양분 삼아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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