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것도 모르면 시작도 하지 마라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가 중요한 진짜 이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반도체들을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는 건 어떻게 보면 각각의 반도체들에게는 매우 실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는 30%, 시스템반도체는 70%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에 올인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로 나누지 않고 DRAM, NAND 플래시, CPU, GPU처럼 각각의 반도체 단위로 시장을 나눠보면 우리나라가 주름잡고 있는 DRAM과 NAND 플래시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중요하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죠.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중요성이 달라 보이는 건 일종의 프레이밍 효과에 기인하는 범주화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반도체 시장에는 그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한 우물만 파온 강자들이 있습니다. 과연 메모리반도체에 거의 올인을 해왔던 우리나라 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똑같이 잘할 수 있을까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는 마치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처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메모리반도체를 넘어서 시스템반도체까지 잘해보자는 그런 희망 섞인 다짐이 아니라 우리의 본진인 메모리반도체를 사수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중에서도 어떤 시스템반도체를 공략할지 타겟을 명확하게 정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시스템반도체가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30대 70 정도인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의 시장 규모의 격차는 아마 앞으로 더 벌어질 것입니다. 부가가치와 성장속도 측면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시스템반도체를 따라갈 수는 없다 이것은 팩트인데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반도체가 가진 본질적인 성질입니다. 시스템반도체가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분명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도 필요하지만 메모리반도체는 시스템반도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만 단독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보통 시스템반도체를 보조하기 위한 역할로 많이 사용되죠.
앞서 DRAM은 책상, NAND 플래시는 책장, CPU는 교수, GPU는 조교에 비유했던 것은 단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비유에는 메모리반도체의 한계점과 시스템반도체의 가능성이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리 부모님께서 좋은 책상과 책장을 마련해주시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책을 많이 사다 주셔도 공부를 하는 건 결국 학생이죠. 좋은 책상과 좋은 책장이 있어야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지만,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 결국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한 좋은 학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현명한 부모라면 최고의 책상, 최고의 책장이 아닌 최고의 학생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앞으로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에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반도체를 잘했으니까 시스템반도체도 잘할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다소 섣부른 착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에서 얻은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시스템반도체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게 희망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는 반도체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들을 육성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 경제를 끌어올린 반도체 신화의 후속편은 배터리나 바이오가 아닌, 어쩌면 메모리반도체의 뒷면인 시스템반도체에서 새롭게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도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도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의 종류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로 구분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에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에 너무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시장이 훨씬 더 큰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까지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이 100% 맞는 말일까요? 이번에는 정말로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가 중요한 것인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단지 시장이 크기 때문인 것인지 알아볼 것입니다. 만약 반도체 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이것 만큼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책상과 책장
메모리반도체는 전원이 끊기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RAM과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ROM으로 나뉘고, RAM은 또 SRAM(정적 RAM)과 DRAM(동적 RAM)으로 나뉜다. 여기서 과학적인 원리로 들어가면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SRAM은 주인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가게, DRAM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차례로 자리를 바꾸는 가게를 생각하면 쉽다. 전자는 주인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지만, 후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교대할 때마다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가게는 주인이 관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비용까지 고려하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는 SRAM이 DRAM보다 빠르지만, DRAM이 SRAM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더 많이 사용된다.
한편 공학자들이 ROM의 장점과 RAM의 장점을 섞어서 플래시메모리라는 걸 발명했는데,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에 따라 NOR(Not OR) 플래시와 NAND(Not AND) 플래시로 나뉜다. 이것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면 어렵기 때문에 간단한 예로 설명할 것이다. 만약 노트를 한 장씩 뜯어서 펼쳐 놓는다면 필요한 페이지를 찾기에는 쉬울 수 있지만 페이지 수가 늘어날수록 보관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이 종이들을 한 권의 노트로 합치면 필요한 페이지를 찾기 위해 노트를 넘겨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보관하기에는 쉽다.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수평으로 배열하는 NOR 플래시는 데이터를 수직으로 배열하는 NAND 플래시보다 빠르지만, NAND 플래시가 NOR 플래시보다 크기를 줄이고 용량을 늘리는 점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곳에 사용된다.
결론적으로 메모리반도체는 여러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했고 DRAM과 NAND 플래시가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RAM은 곧 DRAM, 플래시메모리는 곧 NAND 플래시를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DRAM은 도서관에 있는 책상, NAND 플래시는 집에 있는 책장에 비유할 수 있다. 책상에 여러 책들을 펼쳐 놓고 봐야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아낼 수 있지만 도서관에서 나갈 때는 책상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DRAM과 비슷하고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볼 책이라면 집에 있는 책장에 꽂아두는 게 좋다는 점에서 NAND 플래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책상과 책장, 즉 DRAM과 NAND 플래시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것이 핵심이다.
|2. 대학교 사람들.
사실 시스템반도체라는 말이 쓰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대한민국이 만드는 반도체는 거의 다 메모리반도체였기 때문에 원래 비메모리반도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이것은 마치 반도체를 DRAM 20%, NAND 플래시 10%, 기타 70%라고 분류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시스템반도체라는 단어도 메모리반도체와 구분짓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뿐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반도체를 메모리와 프로세서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메모리반도체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건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만 구분하면 됐는데, 시스템반도체에서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건 연산, 반응, 인지 등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역할과 종류가 훨씬 더 다양하다. 따라서 이 복잡한 시스템반도체를 이해하기 쉽도록 대학교에 빗대어 설명할 것이다.
대학교에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교수가 있는데 반도체 세계에서는 중앙처리장치라고 부르는 CPU가 그 역할을 한다. 이 CPU가 컴퓨터, 스마트폰, 데이터센터에 들어가서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 밑에는 수많은 조교들도 있는데 간단한 실험이나 조사도 하고 지도교수의 연구 내용을 차트나 그래프 같은 자료로 정리한다. 반도체 세계에서는 GPU가 이 역할을 한다. 원래 GPU는 CPU의 연산 결과를 이미지나 텍스트로 변환하는 일을 했는데, 특히 게임의 생동감을 주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최근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까지 GPU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 AI 학습에는 교수가 가진 연륜보다는 조교처럼 신속한 일처리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GPU는 점점 CPU의 보조 수단에서 벗어나 오히려 CPU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대학교에는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일처리를 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6개의 반도체가 핵심인데 각각 홍보팀, 설비팀, 행정팀, 촬영팀, 조명팀, 보안팀이라고 별명을 붙여서 이해하면 쉽다. 먼저 DDIC는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칩으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화면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PMIC는 파워 매니지먼트 칩으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방전과 발열을 막아준다. MCU는 주로 가전제품에 많이 사용되는데 TV 볼륨이나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의 타이머를 설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기능이다. CIS는 색감을 표현하고 초점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며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중요해짐에 따라 함께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꿔 반짝이는 LED 칩과, 결제나 인증 시 신호를 전송하는 NFC 칩도 반도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3. 공부하는 건 결국 학생.
이름이 존재하는 반도체를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실례이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대신 DRAM, NAND 플래시, CPU, GPU처럼 각각의 반도체 단위로 시장을 나누면 우리나라가 주름잡고 있는 DRAM과 NAND 플래시 시장이 얼마나 큰 시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중요성이 달라 보이는 건 일종의 프레이밍 효과에 기인하는 범주화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는 30%, 시스템반도체는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앞으로 메모리반도체를 버리고 시스템반도체로 넘어가자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우리의 본진인 메모리반도체를 사수하면서 어떤 시스템반도체를 공략할지 명확하게 정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부가가치와 성장속도 측면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시스템반도체를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반도체가 가진 본질적인 성질입니다. 시스템반도체가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분명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도 필요하지만 메모리반도체는 시스템반도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만 단독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시스템반도체를 보조하기 위한 역할로 사용된다. 게다가 각각의 반도체 시장에는 그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한 우물만 파온 강자들이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에 거의 올인했던 우리나라 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똑같이 잘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아직 미지수이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는 마치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처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시스템반도체가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하지만 DRAM은 책상, NAND 플래시는 책장, CPU는 교수, GPU는 조교에 비유했던 것에는 메모리반도체의 한계점과 시스템반도체의 가능성이 모두 담겨 있다. 아무리 부모님께서 좋은 책상과 책장을 마련해주시고 책을 많이 사 주셔도 공부하는 건 결국 학생이다. 좋은 책상과 좋은 책장이 있어야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지만,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 결국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한 좋은 학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현명한 부모라면 최고의 책상, 최고의 책장보다 최고의 학생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앞으로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에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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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메모리반도체를 잘했으니까 시스템반도체도 잘할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다소 섣부른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에서 얻은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시스템반도체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게 희망은 충분히 있다. 정부에서는 반도체의 뒤를 이어 배터리나 바이오처럼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산업들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린 1990년대 반도체 신화의 후속편은 어쩌면 메모리반도체의 뒷면인 시스템반도체에서 새롭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세계에 남은 마지막 영역을 모두 정복하고 점진적으로 시스템반도체라는 신대륙까지 진출해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주도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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