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금융 업체들, 왜 블록체인 기술을 여전히 주목하는가
SUMMARY
- HSBC, 웰스파고, JP모건 등 글로벌 대형 은행들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전통적인 금융 거래에 적용하는 다양한 시도 진행 중
- 외환 거래뿐만 아니라 금 거래에도 블록체인의 토큰화를 도입하며 기술 적용 범위 확장
- 성공 사례는 적지만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움직임 자체가 의미있다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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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업계의 먹거리 암호화폐 인프라만이 아닌 기존 금융 서비스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블록체인 활용 시도들이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딱 이거다! 할 만한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글로벌 대형 은행 두 곳에서 거래를 보다 쉽고 저렴하게 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는데 바로 주인공은 HSBC와 웰스파고다. 대규모로 쓰는 건 아니지만 테스트가 아닌 실전에 배치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HSBC와 웰스파고는 2021년, 블록체인을 활용해 외환 거래를 정산하는 제휴를 맺었다. 두 은행은 블록체인을 사용해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화, 유로화 및 중국 역외 위안화 거래를 프라이빗 원장(private ledger)에서 정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양사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최근 보도를 보면 두 은행은 공유 데이터베이스 성격으로 볼 수 있는 공유 프라이빗 원장(shared private ledger)을 사용해 통화 거래를 추적하고 관리한다.
공유 프라이빗 원장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니라 허가된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보면 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두 은행은 동일한 거래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를 갖게 될 리스크를 줄였다고 한다. 분산 원장은 특히 중국 위안화 결제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 은행과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외화 결제 시스템인 CLS*(Continuous Lined Settlement)가 위안화는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CLS: 뉴욕에 있는 외환결제전문은행인 CLS 은행이 운영하는 외환동시 결제 시스템이다. 국가 간 시차 때문에 이미 돈은 보냈는데 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상대방 파산 등으로 결제가 되지 못하는 등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들 은행이 블록체인만 활용해 거래를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은행 계좌에 있는 법정 화폐와 기존 결제 방식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을 쓰는 효과는 있단 입장이다. 블록체인 사용과 관련해 HSBC와 웰스파고는 통화 결제를 더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HSBC는 기존 인프라보다 블록체인을 통해 송금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했고, 웰스파고는 블록체인이 운영 비용과 마찰을 줄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HSBC의 경우 웰스파고와 거래 정산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주목하는 모습이다. 내부에서 외환 송금 정산에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며, 2018년 초부터 HSBC가 보유한 서로 다른 통화들 간 거래 등에 활용하고 있다.
11월 초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HSBC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런던 금거래소 금고(vault)에 저장돼 있는 실제 금의 소유권을 토큰화하는 플랫폼도 선보였다. HSBC에 따르면 이번에 선보인 플랫폼은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제공되며, 규제 승인을 받을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금에 투자하는데도 사용될 수 있다.
미국 대형 투자 은행인 JP모건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현장에서 활용하는 케이스다. 10월 말 더블록 등 외신에 따르면 JP모건은 JPM 코인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을 통해 하루 10억 달러 규모 거래를 처리하고 있다. JP모건이 기존 플랫폼을 통해 하루에 처리하는 거래 규모가 10조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작은 비중이지만 몇 개월간 성장세는 인상적이다.
지난 6월 JP모건은 2020년 JPM코인을 선보인 이후 3000억 달러 규모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JP모건은 내년에 같은 규모 거래액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JPM코인은 현재 JP모건 도매 및 기업 고객들이 거래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리테일 버전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JP모건은 JPM 코인을 리테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둔 모습이다. JPM코인은 허가형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으로 JP모건 도매 고객들이 미국 달러와 유로를 전송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연중 무휴로 운영되며 빠른 거래를 지원한다.
마냥 낙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보면 블록체인이 금융 서비스와 궁합이 좋은 것처럼 비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아직까지는 더 많다. 비즈니스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다 뜻대로 안돼 포기한 사례들도 빈번하다. 2022년 말 호주 증권 거래소(The Australian Securities Exchange, ASX)는 노후화된 CHESS(Clearing House Electronic Subregister System)를 블록체인으로 대체하려는 프로젝트를 거듭 연기하다가 결국 취소했다. ASX는 워크플로우 많은 부분을 블록체인과 유사한 공유·분산 원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6년이나 진행해왔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블록체인 시스템 디자인에서 상당한 도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ASX와 비슷한 시점에 덴마크 해운 업체 머스크(Maersk)도 IBM과 협력해 진행하던 블록체인 기반 공급망 플랫폼인 트레이드렌즈(TradeLens)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트레이드렌즈는 글로벌 공급망을 개방적이고 중립적인 산업 플랫폼 기반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단 대담한 비전 아래 추진됐지만 성과 없이 사라지는 코스를 밟았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산업 생태계에 참여하는 기업들 간 협력의 필요성은 실전에서는 먹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많은 실패 사례들 속에서도 블록체인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블록체인에 담긴 개념 자체에 여전히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도들 중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간 거리가 여전히 많이 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당분간은 이런 구도 속에 블록체인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 같다. 이와 관련해 HSBC의 윌리엄슨이 강조하는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경험이다. 블록체인을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써보는 것이 그가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다. 현실을 외면한채 이상만 갖고 블록체인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려 들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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