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되는 인플레이션, 이제 남은 것은 디플레이션?
SUMMARY
- 공급 불안 요인이 영향을 크게 미쳤던 2022년 인플레이션
- 2023년 물가 상승은 제품 가격 상승이 영향 미친 것으로 보임
- 한국 1인당 실질 소득 감소로 내수 침체 우려 커져 디플레이션이 일상화될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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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어느덧 어제 일처럼 됐습니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요. 20세기 초 전 세계를 공포로 휘몰아 넣었던 스페인 독감과 비교하면 21세기 인류는 이 유행병을 잘 대처한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세계 경제는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쇼크를 이겨내기 위해서 미국을 필두로 많은 나라들이 돈을 뿌렸습니다. 금리를 내린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정부는 또 재정을 확대했습니다. 재난지원금이라는 전대미문의 공짜 돈까지 풀었죠. 결과적으로 시중 통화량이 늘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됩니다.
이를 반영하듯 2022년과 2023년은 인플레이션이 화두였습니다. 코로나19 전 2019년까지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지만 2021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온 10년 동안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없었으니까요. 인플레이션은 없거나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40년 만에 나타난 인플레이션은 이런 우리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하루하루 치솟는 물가 걱정을 하게 된 것이죠. 그게 작년과 올해의 우리 모습입니다.
어느덧 인플레이션은 완화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동월 대비 3%대로 들어왔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정책에도 변화가 올까 봐 촉각을 기울이게 된 것이죠.
앞으로 물가는 어떤 추이를 보일까요? 그에 따른 우리 경기 심리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2022년의 물가 올랐던 진짜 이유 경제 교과서에서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물가가 올라간다. 이때는 금리를 높여 통화를 흡수하는 정책을 펼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2022년 물가 관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교과서에서 봐왔듯 금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통화량 급증 이전에 공급망 불안이라는 외부적 요소가 컸기 때문입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가 술렁였습니다. 러시아는 주요 산유국이자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자원 부국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최대 곡물 생산지이죠. 서유럽과 멀지 않은 지역에서 석유 부국과 곡물 생산국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와 곡물가는 출렁였습니다.
이 와중에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완화되었고 원유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불안하니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 유가는 전체적으로 물가를 끌어 올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료 외 플라스틱 등 소재 전반에서 석유가 쓰이기에, 국제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죠.
2010년대 이후 중국의 인건비 상승도 점점 더 세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또한 늘었죠.
따라서 2022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인플레이션을 진화하려고 했던 접근법은 ‘맞지 않는다’라는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금리를 급박하게 올리면서 통화량 자체를 흡수하려고 했던 방법이 일견 맞지 않다는 얘기죠. 애꿎은 대출자 등 일반 서민들의 이자 부담만 가중시킨 셈입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박한 금리 인상은 전 세계 환율을 출렁이게 했습니다. 한국의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가 크게 올랐습니다. 원료와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의 물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2022년만 놓고 봤을 때 물가에는 통화량 급증과 같은 내부적인 요인보다는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정기에 들어온 것 같지만... 2023년 물가는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2022년과 비교했을 때 환율의 변동성도 급박하지 않고 국제 유가와 곡물가도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국제 밀 가격은 1년 사이 40%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만드는 공산품의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한번 올랐던 물가가 떨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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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소주 가격을 예로 들어볼게요. 지난 3월 조선비즈에 '6,000원...'서민 술' 가격 구조 뜯어보니'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강남구 일대에 음식점 10곳을 조사했는데 소주 가격이 한 병에 6,000원이 됐다는 내용입니다. 2곳은 7,000원이나 했다고 합니다.
소주를 공급하는 주류 회사들이 가격을 높게 올려서 식당 소주 가격이 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주류회사의 소주 납품가는 100원 정도 올랐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2012년 출고가가 961.7원이었는데, 2022년 2월 1163.4원입니다. '처음처럼'을 공급하는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한 병당 출고가는 946원에서 1162.7원으로 올랐을 뿐입니다. 같은 기간 식당 소주는 약 2,000원에서 5,000원, 많게는 6,000원, 7,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쉽게 말해 원료비 100원이 오를 때 이를 빌미로 1,000원을 올렸던 셈이죠.
© 제조원가 550원 ‘소주’ 식당에선 6000원...‘서민술’ 가격구조 뜯어보니
손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충분히 배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 소주 출고가 100원 오르는 동안 3,000~4,000원 가량 올랐으니까요.
물론 식당 업주들도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이 오른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몇 년 사이 극적으로 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만 놓고 봤을 때 임대료는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인건비도 올랐다고는 하지만 최저임금 기준으로 점진적으로 올랐습니다. 어쩌면 마진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인건비나 임대료,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죠.
최저임금 추이와 증가율 © 최저임금위원회
이를 의심케 하는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6월 추경호 경제 부총리가 한마디 합니다. 국제 밀 가격이 정점 대비 50%가량 내려갔으니,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농식품부가 제분 업계를 불러 간담회도 열었습니다. 자유를 외치는 정부에서 직접 가격 통제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라면 업계가 가격을 낮춥니다. 신라면은 1봉에 50원씩 가격을 내렸습니다. 삼양식품 역시 삼양라면 4%, 짜짜로니 5% 정도 가격을 내렸습니다. 농심만 놓고 봤을 때 이런 가격 인하로 올해 200억 원 정도의 이익을 포기하게 됐다고 합니다. 달리 보면 가만히 있었다면 200억 원을 벌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죠.
올해 물가 상승에 얽힌 비밀 최근의 물가 상승이 국제 유가나 곡물 가격, 환율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은 스멀스멀 나오고 있습니다.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과 저명한 거시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지난 5월 브루킹스 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을 보면 최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다름 아닌 상품 가격의 상승에서 비롯됐다고 봤습니다.
국제 곡물가든 유가든 결국은 상품 가격에 반영되고 이를 빌미로 더 많은 가격 상승 폭을 기업들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 가격은 고정이 되고 내려가지 않습니다. 설사 기준금리를 급박하게 올린다고 해도 올라간 상품 가격이 직접적으로 떨어질 리 없죠.
결론적으로 봤을 때 물가 상승의 원흉은 따로 있지만 금리 인상의 고통은 일반 시민들이 나눠 갖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고통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실질소득이 됩니다.
© 한국은행,「국민계정」, 통계청,「장래인구추계」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우리 국민 1인당 명목 소득은 4,249만 원으로 전년(2021년) 4,065만 원보다 184만 원 올랐습니다. 증가율은 4.53%에 달합니다. 이 1인당 소득은 최근 30년을 기준으로 1998년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올랐습니다. 1998년은 IMF 구제금융을 봤던 때였죠.
그런데 2022년 실질소득은 3642만 원으로 전년(3659만 원) 보다 오히려 17만 원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실질소득 하락률이 0.1%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2022년 물가 상승이 개인 소득자에게 더 큰 악영향을 준 게 분명합니다.
|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만 원) |
전년 대비 증가율(%) |
2015 |
3,260 |
5.8 |
2016 |
3,391 |
4 |
2017 |
3,493 |
3 |
2018 |
3,532 |
1.1 |
2019 |
3,532 |
0 |
2020 |
3,530 |
-0.1 |
2021 |
3,659 |
3.7 |
2022 |
3,642 |
-0.5 |
© 한국은행,「국민계정」, 통계청,「장래인구추계」
문제는 실질소득 감소가 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30년 넘게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일본 국민들의 실질 소득이 크게 늘지 않은 점도 한몫합니다. 소비 여력이 늘지 않으니 '작년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기 힘든 것이죠.
이를 놓고 봤을 때 2023년과 2024년은 소비 증가율 둔화 혹은 감소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물가는 많이 올랐는데, 이를 감당할 만한 소득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우리 국민 각자가 소비를 줄여 나가는 것이죠.
물건이 안 팔리면 기업들은 어떻게 하죠? 재고 떨이를 하거나 가격을 낮추게 되겠죠. 가격 하락은 곧 디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조만간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시점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디플레이션 걱정 이제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입니다. OECD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1%대로 봤습니다. 내년에도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이나 동해 유전 개발 같은 극적인 호재가 있지 않다면 우리 경제는 앞으로 1~2% 성장률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젠 상식이 됐지만 고령인구의 증가는 내수 경기의 침체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인구 규모라고 해도 젊은 층이 많을수록 성장 잠재력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이제 그렇지 못합니다.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물건 팔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 증가율까지 제자리걸음을 걷게 되니 물가 상승보다는 물가 하락을 걱정해야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외부적 요인이 발발해 수입 물가라도 올라가면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겠죠.
중국 경제도 완연한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게 됐다는 점도 악재입니다.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고성장 수혜를 직접 봤던 것도 옛이야기가 됐습니다. 중국은 부지런히 수입 대체를 했고 이제는 한국 제품을 그전처럼 사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무역 역조를 우려해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전기자동차 등 비교적 첨단 공산품도 중국산에 밀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국내 운행하는 전기버스가 대부분 중국산인 것을 보면 알 만합니다.
중국 경제성장률 © 트레이딩이코노믹스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시장이었는데 더 어려워진 것이죠. 중국과의 관계 증진에 나가도 부족할 판에 우리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선택이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으나 현시점에서 봤을 때 불안한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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