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 인요한 "기무사 리스트에 내 이름 있었다"
사진=KBS2 대화의 희열 캡처 |
의사 인요한이 1980년 5월 광주와 관련한 기억을 털어놨다.
29일 밤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에서는 의사 인요한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인요한은 "귀화를 했다. 특별 귀화를 했다. 원래 미국 국적인데, 특별 귀화는 제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제가 순천 인씨 시조"라고 밝혔다.
인요한은 린튼가 정착기를 털어놨다. 강원국은 인요한 할아버지가 맡았던 신흥고등학교 출신이라며 "제가 신흥고를 나왔다. 우리 학교에 인톤관이 있다. 그 인톤이 무엇인지를 학교 다니는 내내 몰랐다"라고 털어놨다. 인요한은 "할아버지 이름이 린튼인데 인톤으로 바꾼 것"라고 설명했다. 인요한은 "신사가 있던 자리에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공중화장실을 지었다. 화장실 전망이 좋았다더라"라며 "제 고향은 순천이다. 태어난 곳은 전주다. 스코틀랜드 켈트족 피가 섞이고 엄마는 인디언이다. 켈트족이 인디언과 결혼해서 전라도에서 산다"라고 말했다.
인요한은 "심장 근처부터 명치까지 아플 때, 피가 많이 날 때, 부를지 말지 판단하기 어려울 땐 불러야 한다. 확실하지 않으면 불러야 한다. 술 먹고 쓰러져 있을 땐 원칙적으로는 불러야 한다. 위급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희열은 "구급차를 시내버스처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라고 입을 열었다. 다니엘은 "독일에서는 면허 딸 때 구급차 관련 조항을 배운다. 한국에도 그런 게 있느냐"라고 물었다. 인요한은 "법령으로 된 건 없는 거로 안다. 사람들 인식이 구급차 사일렌이 들리면 한 차선을 비우는 건 어렵지만, 요즘 인식이 많이 느껴진다"라고 답했다.
유희열은 "강원국 작가님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 증상이 심하다. 녹화 전에 식사를 안 한다. 해결책이 있느냐"라고 질문했다. 인요한은 "첨단 지식을 동원해 말하자면, 전라도에서 죽을병에 걸리면 똥통에 가서 물을 퍼마셔라라고 한다. 우울증도 변이식으로 고친다. 저도 한 명에게만 해 봤다. 95세였는데, 일주일 만에 병원균이 나오지 않더라. 장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장균이 좋은 사람 걸 받으면 좋아진다. 전 세계에서 연구 활발하다"라고 전했다. 강원국 작가는 "자기 거 먹어도 되냐"라고 질문했다. 인요한은 "자기 거 먹으면 안 된다. 균이 좋은 사람 걸 먹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다른 출연진이 이 말을 믿지 못하자 인요한은 "첨단이다"라고 덧붙였다.
인요한은 1980년 5월 광주를 회상했다. 그는 "사망자 명단이 공식적으로는 160여 명이지만, 내가 당시 봤던 종이에는 600명이 넘었다. 그걸 복사라도 해놓을 걸 그랬다. 외신 기자들이 힘들게 들어와서 취재했는데 당시 광주는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돼 있어 기자들이 기사를 내보내려면 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균관대 학생이 나를 맡았었다. '너 죽을지도 모르니 도망가라'라고 말했는데 '여기 남아있는 사람은 친척이나 친구가 죽은 사람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마라'라고 하더라. 그 학생이 나에게 여자친구 번호와 이름을 적어 주더라. 연락해 달라고. 나는 순천으로 돌아갔지만, 아버지는 미국 대사관에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느 정도 사람이 희생됐는지 모르는 거 같다'라고 말하더라. 그렇게 미 대사관에 도착해서 사태 중재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인요한은 "저는 시민들을 안전한 제3국으로 이송하자고 했지만, 대사관 측은 공문이 없다고 하더라. 그 안에서 공문을 어떻게 띄우냐. 그 다음 날 5월 27일 새벽에 일어나서 공문을 받아오려고 했다. 그때 터미널을 가는데 뉴스에 진압됐다고 나오더라. 다 죽었겠구나 싶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순천으로 다시 갔다. 미 대사관에서 나를 다시 불렀다. 아버지랑 같이 오라고 해서 갔더니 총영사가 편지를 꺼내더라. '조상들이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당신은 광주 항쟁 주동자로 돼 있다'라고 하더라. 나는 발끈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총영사가 욕을 하며 '나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너는 정치적인 골칫덩어리야. 한국에서 나가. 네 몸엔 총알이 안 지나갈 줄 아냐. 교통사고도 날 수 있다'라며 위협하더라. 그는 살고 싶으면 나가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미 대사를 독대했다. 아버지는 불안하면 웃었는데, 웃더라.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출국 및 최소 10년 입국 불가, 경찰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현 상태 유지, 대학 휴교 기간 시골에서 유배 생활을 하라고 하더라. 나는 떠나기 싫다고 했다. 순천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 생활을 했다"라고 전했다.
인요한은 "얼마 전 방송을 나갔는데 나이 많은 분이 '당신 말이요 살아있는 걸 고마워 해'라고 하더라. '당신 기무사 리스트에 있었어'라고 하더라. 그게 뭐냐고 물으니 '당신 말이야 원래 죽였어야 돼'라고 하더라. 어떻게 죽이냐고 물었더니 '군 수송기에 실어 바다에 산 채로 던져 버린다. 고기밥 되는 거지, 뭐'라고 했다. 그날은 잠이 좀 안 왔다. 감사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인요한은 "버킷리스트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는 거였다. 1994년에 만났다. 그분을 보자마자 전두환에게 보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꼭 저를 '인 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분은 '보복하면 안 돼요'라고 하며 넬슨 만델라의 인권 강의를 30분간 했다. 1996년에 또 봤었다. 많이 아프셨다. 그때 몇 번 뵈고 수액을 맞히고 했다. 대통령 당선되고 VIP석에 초대를 받았었다. 외부 일정을 취소하고 VIP석에 갔다. 그 자리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를 봤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탄했다. '저 사람은 노벨상감이다'라고 그 순간에 생각했다. 이 민족은 희망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용서와 화해, 이런 인재들을 만난 데 감사했다"라고 밝혔다.
강원국은 "그랬던 분이 박근혜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 쪽을 맡아서 혼란스러웠다"라고 입을 열었다. 인요한은 "당에 입당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엇을 강조하는지 들어보니 동서화합, 다문화 가정 지원 등을 이야기하더라. 보수야말로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수락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결핵 문제 때문에 29번 방북을 경험했었다. 보건 실태에 대해 많이 둘러본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요한은 "인도적 지원에 대해 (당시 정권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오만하고 교만한 생각이었다. 계산 착오였다. 현 정권이 북 정권과 가깝기에 중간에 얼굴 색 다른 사람이 필요할 사람이 없을 거 같다"라고 전했다. 남북 변화에 대해 인요한은 "반갑다. 백두산에 대통령이 간 건 많은 사람들 꿈을 실현한 거다. 저도 개마고원, 백두고원 다녀왔는데 너무 아름답다. '결혼'하고 비슷한 거 같다. 지금은 신혼여행이다. 통일 이야기도 나오고, 신혼여행도 나오는데 디테일이 중요하다. 핵문제라든지 미국, 중국과의 관계 등 굉장히 복잡하다. 조심을 해야 할 거 같다"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통일이 지금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 조약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휴전을 끝내야 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충분히 하면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독일 같은 경우 국토만 봐도 큰 차이가 난다. 동독은 전체 면적의 1/4밖에 안 됨에도 경제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50대50이지 않나"라고 전했다. 인요한은 "독일은 4명당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남북은 2명당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헤럴드POP=장민혜 기자]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