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처럼 내려앉은 ‘상사화’곁...호젓한 ‘영광’의 초가을을 누리다
전국서 가장 넒은 상사화 군락지 불갑사
불갑천 따라 수변공원 벤치는 ‘물멍’ 명당
바다인듯 하구인듯 문명·산물 교차로 법성포
방풍·건강산책 지혜담긴 ‘법성진성 숲쟁이’
대한민국 아름다운길 10선 ‘백수해안도로’
기암괴석·칠산도·갯벌...석양 황홀경 연출
‘약이 되는 미식’ 쑥떡모양 달콤한 모시떡
목화·쌀·눈·천일염 ‘4白’ 영광의 아이콘
초가을 절정을 이루는 영광 불갑의 상사화는 하늘로부터 내려 앉은 영광과 희망의 꽃비라고 한다. |
백수해안도로에서 8㎞ 북쪽에 있는 가마미해변은 철 지난 바닷가가 더 운치있는 곳이다. |
법성진성 숲쟁이 나무 사이로 내려다 본 법성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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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고택 |
‘희망의 꽃비’가 내려 앉았다는 뜻의 상사화(相思花) 붉은 꽃 바다, 불갑을 지나, 해질녘 백수해안 낙조의 정열 마저 가슴에 품는다면, 그것은 초가을 영광이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 방탄소년단(BTS) ‘불타오르네’의 실경(實景)이다.
초가을에 절정을 맞는 상사화는 꽃이 필 땐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땐 꽃이 피지 않으므로,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예사롭지 않은 이 꽃은 영광 불갑사, 서울 길상사, 남양주 봉영사, 완주 송광사 등 절에 많다. 상사화 꽃와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 처럼, 불제자는 속세와의 연을 끊었으니 수행에 정진하라는 것이다.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수 옆 법성포로 들어와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하고 불갑사 창건에 관여해서인지, 불갑사 일대 상사화와 군락지는 전국에서 가장 넓다.
▶하늘서 온 꽃비 상사화, 가을희망의 서막=상사화는 우리나라에선 하늘에서 내려오는 ‘희망과 영광의 꽃비’, 중국에선 비단과 맞바꿀 만큼 귀한 ‘환금화’, 일본에선 열반의 세계에 피는 ‘피안화’라 부르며 고귀한 대접을 받는다. 영광 상사화는 가을 희망의 서막이다.
불갑사는 고구려가 세운 강화 전등사에 이어 현존하는 국내 2~3번째 고찰이다. 이 일대에서 열리는 상사화축제(9.17∼26)는 올해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로 진행되는데, 세계최강 우리 디지털기술을 적용해 랜선축제도 실감날 것이다. ‘서로 그리워한다’는 상사(相思)의 느낌을 속세에 대입해 ‘사랑의 스튜디오’, ‘꽃맵시 좋은 아름다운 사람 선발대회’ 등도 열린다.
거리두기를 안할래야 안하기 어려운, 낮은 밀집도의 영광은 ▷상사화의 희망 철학 ▷낙조의 열정 미학 ▷4대 종교도래지 및 유적지라는 문명의 향기 ▷철 지난 바닷가라 더 멋진 가마미 해변의 정취 ▷숲으로 성을 구축한 숲쟁이 법성진성의 지혜 ▷115칸 저택 매간당 스토리 ▷70세 노인의 부모앞 재롱, 내산서원에 담긴 조선의 왜국 교화 이야기 등을 품에 안아, 단언컨대, 초가을 호젓하고 뿌듯한 인문학 탐방의 최적지라 할 만 하다.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모시떡·모시송편과 법성포 굴비, 칠산타워·젓갈타운이 있는 염산면의 천일염 최고급품을 챙기는 곳이다.
▶“법성에 돈 실러 가세” 지혜 담긴 숲쟁이가 엄호= 마라난타는 크리스트교로 치면 세인트 마라난타 성인인데, 그가 황해에 접어들어 물(水) 가는(去) 대로 다 간 곳을 ‘법(法)의 성지’라 해서 법성이다.
어감 상, 야단(野壇)에서의 법석(法席), 즉 부처의 설법장소가 떠오른다. 바다인 듯 하구인 듯한 물길로 접어들어와 강물 즉 와탄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 있는 법성포는 문명, 산물, 육해의 교차로이다. 고대 부터 중국, 일본과의 해상 교통로의 거점 항구이자,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의 집산지였다.
숲쟁이(城)는 호남 최대 수산물 교역지 법성포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성진성 숲이다. 외적퇴치, 방풍, 건강산책 까지 한꺼번에 도모한 지혜가 엿보인다.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라는 말이 생긴 약속의 땅을 숲쟁이가 엄호한다. 성벽 둘레는 반원형 460m로 남녀노소 산책하기 딱 좋다.
▶바닷가 붉은 노을도 불타오르네=하구의 육지쪽 종점 같은 법성포에서 대양쪽으로 나가자마자 백수해안도로를 만난다. 낮에 가마미, 모래미 해변의 청취를 호흡하고 경운기 닮은 갯벌 택시로 어촌체험을 하다가, 해질녘 우리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길 10선에 빛나는 백수해안도로로 간다.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 길인데, 기암괴석, 칠산도,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진 석양이 황홀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해안도로 아래엔 나무데크 산책로 2.3㎞가 조성돼 있다.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대신등대-노을전시관-건강 365계단-칠산정이다. 법성포와 계마항을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 대신등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한 편의 예술작품이다.
홍조 띤 백수에서 기분이 ‘거시기’ 해지면, 굴비에 잎새주 한 잔을 하든가, 심하게 멜랑꼴리해진 감성을 노을전시관 과학탐구로 중화시키든가 해야 한다.
붉은 노을 앵글의 좋은 소품이 되고, 국내 최고품질의 굴비가 많이 잡히는 칠산도엔 희귀조류도 많다. 괭이갈매기·노랑부리백로·저어새 번식지는 천연기념물이다. 괭이갈매기는 음식찌꺼기를 먹어 체내 정화시켜 어촌의 환경파수꾼 노릇도 하고, 물고기떼를 따라 비행하면서 어군탐지꾼도 해준다. 노랑부리백로는 희귀종이라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얻어 들어가서도 촬영 조차 조심해야 한다.
▶70세의 재롱 효심과 71세 의병장,그리고 인도 공주= 삼국시대 불갑사 정운 승려가 인도 유학후 귀국하려 하자 그를 남몰래 흠모했던 인도공주는 붉은 열매를 건넨다. 얼핏 사랑의열매(호랑가시나무) 같지만, 참식나무다. 정운은 절 뒷편에 이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가꿔, 자목 손자목을 퍼뜨린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징표, 이 참식나무 군락지도 천연기념물이다.
71세 임진왜란 의병장 이야기도 빛나는 불갑은 영광 내륙쪽 청정트레킹의 중심이다. ‘칠산갯길 300리’ 5코스에 해당한다. 70세 나이에 부모 앞에 색동옷을 입고 웃음을 선사한 효심의 매간당 고택도 불갑과 멀지 않다. ‘조선의 저택’ 115칸 곳곳에 스토리와 교훈이 가득하다.
이 불갑사길은 도선국사가 ‘불제자의 도량 중 갑(甲)’이라 했던 불갑사에서 시작해 불갑천을 따라 불갑저수지까지 이어진다. 불갑천을 따라 걷다가 수변공원 벤치에 앉아 ‘물멍’ 때려도 좋겠다.
내산서원, 영광불갑테마공원과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등을 거친다. 내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으로도 활약했던 강항 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그는 왜군에 의해 강제로 모셔져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 유학을 가르친 스승이 되었다. 중세 일본문화를 알 수 있는 ‘간양록’으로 유명하다.
▶붉은 영광, 4백(白)도 세다=영광 하면 모시를 빼놓을 수 없다. 남들은 옷감으로만 쓰지만, 영광은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떡까지 만들어 ‘약이 되는 미식’의 아이콘으로도 삼고 있다. 쑥떡 모양새이지만 더 달콤하다.
영광은 목화와 쌀, 눈과 천일염 소금이 많아 4백(白)의 고장이다. 모시떡, 굴비, 석양, 청정호수, 교훈이 되는 스토리 인문학 등 매력이 넘치는데, 무엇보다,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가을 희망의 상사화꽃비가 광영 처럼 내리기에, 여행자 속이 좀더 시원해지는 곳이다.
함영훈 기자·[취재협조:문화재청·영광군]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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