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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多死) 사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 2020년부터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져…

- ‘좋은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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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꺼려지는 일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누군가의 슬픔일 수밖에 없다. 또는 서서히 회복돼 가고 있는 누군가의 슬픔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끄집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슬픔이란 누군가와 나눌 수는 있을지언정, 차마 이해한다 말하기는 한없이 어려운 영역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삶의 마지막은 찾아온다. 누구나 주변인의 마지막은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진정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이재태, 이하 NECA)은 2024년 원탁회의 ‘NECA 공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해 논의했다. 이를 토대로 합의된 ‘좋은 죽음을 위한 7대 원칙과 16개 주요 사항’을 발표했다. ‘NECA 공명’은 보건의료 분야의 현안과 쟁점을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공유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취지의 원탁회의 프로그램이다.

‘좋은 죽음’을 논하게 된 배경

우리나라는 저출산 및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20년부터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졌다. 2023년 한 해 동안 사망자 수는 약 35만 명이었으며, 향후 10~20년 사이 한 해 50~60만 명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다사(多死) 사회’인 것이다.


한편, 한국리서치에서는 2022년 7월 ‘조력 존엄사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안락사’ 및 ‘조력 존엄사’를 찬성하는 의견이 80%로 나왔다. 이는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고, 그 의향서를 미리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법 시행 이후로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환자 본인과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환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연명의료 시행 여부에 대한 의향서를 사전에 작성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실제로 작성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다. 이밖에도 여러 미비점이 거론되고 있어,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NECA에서는 ‘존엄한 임종을 둘러싼 사회적 과제’를 주제로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상급종합병원, 요양병원, 재택의료, 방문간호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물론, 법학, 생명윤리, 언론 등 관계자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

이번 원탁회의에서는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된 주제로 여겨왔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죽음을 대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편, 원탁회의에서는 생애 말기에는 ‘통합적, 가치중심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까지는 특정 질환, 의료 분과 등을 기준으로 한 치료, 혹은 당장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기술 중심적인 의료 접근에 중점을 둬 왔다. 그보다는 진정 환자 본인의 ‘삶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탁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좋은 죽음을 위한 7대 기본 원칙’과 ‘16대 주요 사항’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했다. 이를 통해 환자 본인과 가족은 물론,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임종 현장이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좋은 죽음’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은 무엇인지를 숙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재태 NECA 원장은 “우리 사회가 ‘다사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좋은 죽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한 것은 매우 뜻깊다”라며, “앞으로도 NECA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보건의료 분야의 현안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과 올바른 정보 제공에 기여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좋은 죽음을 위한 7대 기본 원칙

1. 사람을 중심으로 한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2. 생애말기 돌봄 계획은 미리 수립한다.


3.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


4.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생애말기 돌봄을 제공한다.


5.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데 최우선적 가치를 둔다.


6. 임종단계에서 환자 요구와 선호를 존중한다.


7. 양질의 생애말기 돌봄을 위한 국가적 투자가 강화되어야 한다.

좋은 죽음을 위한 16개 주요사항

1. 기술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생애말기 돌봄을 제공한다.


2. 생애말기 돌봄 대화는 환자와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3.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을 찾아낸다.


4. 생애말기 돌봄 대상자로 선별되면 사전 돌봄계획을 세운다.


5. 중요한 의사결정은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하되, 환자의 의견을 우선시한다.


6. 환자와 가족에게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제공한다.


7.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료적·사회적 자원을 환자 중심으로 통합한다.


8. 숙련된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다학제 돌봄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9. 생애말기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한 체계를 마련한다.


10. 생애말기 돌봄은 환자에게 부담되지 않아야 한다.


11. 환자와 가족이 참여하는 환자 중심 임종 환경을 마련한다.


12. 사별 후 가족을 위한 애도 지원을 제공한다.


13.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의 접근성을 개선한다.


14. 좋은 죽음을 위해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15. 생애말기 돌봄 계획과 실행을 통합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한다.


16.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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