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판 '천원의 행복'… 치솟은 밥상물가에 삼겹살은 언감생심
10여 년 전 방송된 '천원의 행복' 따라 하기
고추장 삼겹살은 삼겹살 대신 앞다리살로
봉골레 파스타 핵심 마늘은 겨우 한쪽 반
2021년판 '천원의 행복'으로 만든 고추장 삼겹살과 봉골레 파스타. 윤한슬 기자 |
단돈 1,000원으로 맛있는 밥 한끼를 만들 수 있을까.
2003~2008년 MBC에서 연예인들이 1만 원으로 일주일을 사는 모습을 그린 예능 프로그램 '행복주식회사'가 방송됐다. 그 안에는 1,000원으로 요리하거나 선물을 사서 고마운 사람에게 대접하는 '천원의 행복' 코너가 있었다.
밥상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요즘도 '천원의 행복'이 가능할까. 전반적 물가 상승을 감안해 3,000~3,500원으로 한끼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허용 예산은 현행 최저시급(8,720원)이 방송 당시보다 얼마나 높은지 계산하고 그 배율을 1,000원에 곱하는 방식으로 산정했다. 주재료는 장을 볼 때 흔히 가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동네 정육점에서 샀고, 양념과 같은 기초 재료는 집에 있는 걸 사용했다.
하하가 800원에 산 삼겹살, 지금은 구매도 못해
2004년 MBC에서 방영된 '행복주식회사'에서 하하가 고추장 삼겹살을 만들고 있다. MBC 유튜브 캡처 |
메뉴는 고추장 삼겹살. 방송인 하하가 2004년 '천원의 행복'에 출연해 만든 요리다. 그해 최저시급(2,510원)을 감안해 재료값은 3,50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하하는 1인분(200g) 분량으로 보이는 삼겹살을 800원에 샀다. 그러나 지금 삼겹살 구매는 언감생심이었다. 15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갔더니 하루이틀 전만 해도 100g에 3,000원 안팎이던 국내산 삼겹살 가격이 3,800원대로 올라있었다. 서울 중구 신당동의 정육점 사장은 "코로나19 때문인지 돼지고기값이 계속 오른다"며 "하루가 다르게 올라 가격표 수정을 제때 못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3,500원 예산에 맞추기 위해 '삼겹살 없는 고추장 삼겹살'을 만드는 것으로 물러섰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앞다리살을 샀다. 그마저도 통상적인 1인분 분량(200g)만큼 살 수는 없었다.
고추장 삼겹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재료들. 앞다리살 150g(2,000원), 상추·깻잎 45g(805원), 양파 반 개 (372원), 고추 한 개(129원)를 사용해 총 3,306원이 들었다. 윤한슬 기자 |
하하는 삼겹살에 상추, 쑥갓, 마늘, 고추를 곁들였다. 채소값도 만만찮은 터라 시들해져서 할인하는 상품을 골라 상추, 깻잎, 고추를 구매했다. 쑥갓은 사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요리에 들인 비용은 앞다리살(150g) 2,000원, 상추·깻잎(45g) 805원, 양파(반 개) 372원, 고추(1개) 129원 등 총 3,306원이었다. 채소를 할인 없이 정상 제품으로 샀다면 3,800원이 넘어 예산을 초과한다. 하하와 달리 고추장 삼겹살 1인분을 정석대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밥상 물가가 그만큼 오른 탓이리라.
마늘 넣다만 '반쪽짜리' 봉골레 파스타
봉골레 파스타 재료들. 3,000원 예산에 맞추기 위해 마늘을 한쪽 반만 사용했다. 윤한슬 기자 |
행복주식회사 종영 시점인 2008년 최저시급(3,770원)을 감안해 3,000원으로도 한끼 만들기에 도전했다. 메뉴는 봉골레 파스타. 알려진 레시피에 따르면 주재료는 스파게티면 80g, 바지락 200g, 통마늘 6~7쪽, 페페론치노 3~4개다.
180g에 2,390원인 바지락을 사고 나니 700원도 채 남지 않았다. 스파게티면은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골라 80그램(316원)만 사용했고, 마늘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35% 할인가로 사서 그중 1쪽 반(264원)을 썼다. 매운맛을 내는 페페론치노는 넣지 못했다. 바지락과 스파게티면에만 2,706원을 소비한 터라, 봉골레 파스타의 핵심인 마늘을 1쪽 반만 넣었다. 마늘을 정상가로 구매했다면 한 쪽밖에 못 넣었을 거란 계산을 위안으로 삼았다. 총 소요 비용은 2,970원. 예산을 맞췄다.
부족한 재료로 만든 봉골레 파스타. 윤한슬 기자 |
10여 년 전 대비 최저시급은 2~3배 올랐으나 밥상 물가가 그 이상 올라 장바구니가 점점 팍팍해지는 실정이다. 특히 기상 여건 악화로 작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농축수산물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6% 올랐다. 상반기 상승률로는 1991년(14.8%) 이래 30년 만에 최고다.
품목별로 보면 파가 1년 전보다 156.6% 급등해 1994년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사과(54.3%) 배(47.0%) 복숭아(43.8%) 감(22.0%) 등 과실류와, 마늘(45.7%) 고춧가루(34.9%) 등 향신료도 가격이 크게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여파로 생산량이 급감하며 가격이 치솟은 계란은 여전히 사태 이전인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