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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지옥고 아래 쪽방] 누가 쪽방으로 돈을 버는가

서울 쪽방촌 318채 등기 전수조사… 강남 건물주ㆍ지방 부유층 등이 실소유주

“재개발 땐 대박” 투기 행렬… 쪽방 주민 기초생활수급비, 집주인 주머니로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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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0년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이모(67)씨는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개발 소식이 두렵다. 수년 전 개발 광풍 속 집주인의 “나가라”는 한 마디에 원래 살던 쪽방에서 쫓겨나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는 살림살이를 챙겨 7년 전 다시 자리 잡은 곳은 인근의 또 다른 쪽방. 지난달 23일, 3.3㎡(1평) 남짓 되는 자신의 쪽방 안에서 이씨가 TV를 보고 있다. 쪽방의 좁은 면적을 일반 렌즈로는 담기 힘든 탓에, 광각렌즈로 촬영해 사진의 가장자리가 볼록하게 왜곡되어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달 4일 정오 무렵,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 속칭 창신동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 잡은 9.9㎡(3평) 슈퍼마켓 앞 평상. 따뜻해진 봄볕을 쬐려는 쪽방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최미자(가명ㆍ62)씨는 이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대낮부터 취한 손님이 소줏값 외상을 요구하자 어림없다는 듯 제값을 다 받아내고서야 돌려보냈다. “그래도 동네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로 입을 연 그는 빈곤의 나락 앞에 발이 묶인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 기대 곳간을 채워가는 이른바 ‘쪽방 비즈니스’의 실태를 털어놨다.


건물 56채에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쪽방 520여칸. 숨 쉴 틈 없는 이곳 쪽방촌에서 담뱃가게 겸 슈퍼마켓을 40년째 운영하는 최씨. 드러나지 않은 그의 두 번째 직업은 이곳 쪽방 주민들의 전출입과 월세 수납을 관리하고 민원을 집주인에게 전달하는 ‘쪽방 관리인’이다. 타지에 사는 건물주를 대신해 세입자들로부터 방값을 수금하고 각종 잡일을 해 주는 대가로 최씨는 신혼 시절부터 초등학생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 자릿세 걱정 없이 쪽방촌 입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이 동네 집주인 중 쪽방 건물 한 채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니까.” 창신동 쪽방촌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최씨의 말은 사실과 일치했다. 서울 종로구 종로46가길 일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최씨가 관리하는 쪽방 건물 주인 6남매와 배우자 등 일가(一家)가 이곳 쪽방촌에 소유한 건물은 8채나 됐다. 현재 영업 중인 쪽방 5채에서만 매달 1,437만원 상당(쪽방 건물 한 채당 평균 방 개수 12.6개에 평균 월세 22만8,188원을 곱한 값) 현금 수익을 얻는 셈이다. 1980년대 부친으로부터 쪽방용 건물들을 물려받아 건물주가 된 남매들은 1996년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빌딩을 인근에 세워 부를 확장했다. 20년 넘게 이 동네에 거주했다고 밝힌 한 주민은 “살면서 집주인을 딱 한 번 봤을 뿐이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대를 잇는 쪽방 운영으로 부를 축적해온 건물주 일가는 베일 뒤에 철저히 정체를 숨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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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창신동 쪽방촌'이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종로46가길 일대. 이혜미 기자

도시의 빈자(貧者). 그들이 거리로 내몰리기 전 그나마 몸을 누일 수 있는 최후의 안식처 쪽방.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화장실은커녕 몸을 씻을 샤워시설도, 온수와 난방도 허락되지 않으며 성인 한 명이 겨우 다리를 펼 만큼 취약한 공간. ‘지ㆍ옥ㆍ고(지하방ㆍ옥탑방ㆍ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


한국일보는 2018년 기준 서울시 소재 전체 쪽방 현황 자료를 토대로 쪽방 건물 등기부 등본을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전수 조사해 도시 빈민 최후의 쉼터 ‘쪽방’의 실소유주들을 추적했다. 주거 난민에 가까운 쪽방 주민에게 비인간적인 공간을 제공하면서 이를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심지어 월세를 착복하는 등 사실상 착취에 가까운 임대업을 해온 이들. 최저 빈민의 고혈(膏血)을 짜내 부의 첨탑을 쌓아온 쪽방촌 ‘빈곤 비즈니스’의 장본인들의 면면은 실로 다채로웠다.


쪽방 건물주 중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급 주거단지에 거주하는 인물이 적지 않았으며, 강남 건물주의 가족들, 중소기업 대표 등 재력가가 다수 포착됐다. 전직 유명 수능 인터넷 강사는 쪽방 건물 소유를 위한 가등기를 설정해놨고, 고등학생 자녀를 건물 공동 명의자로 등재해놓은 경우도 있다. 쪽방촌 개발 소식에 솔깃해 부산, 광주, 세종, 창원 등지의 큰손들이 재테크를 위해 대거 서울 시내 쪽방을 사들인 사례도 확인했다.

‘가장 아래 주거’ 쪽방의 실소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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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실소유주 주거 실태.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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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쪽방촌에 사는 이모(80) 할머니는 도무지 집에서 씻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씻을 곳이라곤 쪽방 문 앞 차가운 물 나오는 수도꼭지뿐이다. 이혜미 기자

서울 시내 쪽방은 크게 △돈의동 △창신동 △동자동 △영등포동 등 4군데 쪽방촌에 분포해 있다. 2018년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이곳 거주자는 총 3,296명(지난해 12월 말 기준 3,183명)에 이른다. 쪽방 건물은 주로 노후한 서울 도심 재개발 지역에 있고, 거주자들도 거처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 시점에 따라 건물과 거주 현황에 다소 차이가 발생한다.


본보가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 자료(2018년 9월)에 명기된 318채 쪽방 건물 가운데 등기가 되어 있는 243채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270명 소유주(법인 포함) 중 188명(69.62%)이 쪽방촌 밖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김호태 동자동사랑방(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쉼터) 대표는 “집주인이 쪽방 건물에 함께 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관리인을 두고 월세 중 일부를 떼어 주거나 공짜로 쪽방에 살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관리를 일임하고 있다”라며 “건물이 쪽방이라는 걸 알고도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개발이 되면 노숙자와 다름 없는 거주자들을 쫓아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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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한눈에 보는 쪽방촌 생태계. 그래픽=강준구 기자

취득 경로에 따라 쪽방 실소유주는 상속ㆍ증여자와 투자자로 나뉜다. 지하철역 인근 등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쪽방 건물과 토지를 물려받아 현재에 이르게 된 2세대 건물주,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재개발 호재에 이끌려 이를 매입한 외지인이 실소유주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결국 ‘돈이 되기’ 때문에 대대손손 물려주거나 투자 명목으로 건물을 사들이고는 제대로 수선도 하지 않은 채 월세 수익만 얻는 지대 추구의 비정한 민낯이다.


318채 중 다주택 소유자들이 갖고 있는 건물은 56채(17.61%)에 달했다. 등기부 등본에 가족관계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웃들의 증언을 토대로 같은 주소지와 상속 관계 등을 통해 파악, 추정한 결과 일가족 다주택자가 소유한 쪽방 건물은 전체의 22.01%(70채)까지 늘어난다. 돈의동 쪽방촌의 서모(76)씨는 서류상 확인되는 것만도 4채의 쪽방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2011년 영등포 쪽방촌 건물 한 채를 매입한 박모(62)씨는 2015년 경매로 나온 동자동 쪽방촌 건물도 하나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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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로 인한 쪽방 건물 손바뀜 횟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개발 소식만 들리면 쪽방을 사들이려는 큰손 투자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사업비 31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2006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2013년 무산)과 2007년 창신ㆍ숭인뉴타운이 지정됐던 2000년대, 지금의 동자동과 창신동 쪽방 건물주들로의 손바뀜은 각각 15회, 8회였다. 이후 동자동 일대에는 게스트하우스 개발 열풍과, 도시환경정비사업 소식이 들리면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는 현 건물주로의 매매가 19회 이뤄졌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이재훈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부인이 2006년 종로구 창신동 재정비촉진구역 내 7억3,000만원 상당의 쪽방 건물을 공동 명의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청문회 단계에서 낙마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노후 대비용”이라 해명해 쪽방 주민들의 오갈 데 없는 처지를 이용해 재테크를 한다며 대중의 공분을 샀다.


서울 강남과 지방 큰손들의 매입도 끊이지 않았다. 강남 3구(서초구ㆍ송파구ㆍ강남구)에 현주소를 둔 소유주만 25명. 전통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민이나 신흥 부촌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주민도 쪽방 건물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소유주는 개발 소식이 한창이던 2008년 4억원 가까운 대출을 받아 37㎡ 면적에 2층짜리 쪽방 건물을 매입했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강남 건물주의 가족들도 가세했다. 당시 강남구 논현동의 건물주 장모(63)씨의 가족은 나란히 이웃한 돈의동 쪽방 건물을 각각 2002년, 2010년 매매와 증여의 방식으로 취득했다.

돈 되는 ‘투기처’로 전락한 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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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자료(2018년 9월 기준)를 입수해 명단에 있는 318채 쪽방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조사했다. 등기가 되어 있는 243채 건물, 270명 소유주(법인 포함)를 조사한 결과, 쪽방 건물 여러 채로 약탈적 임대 행위를 수십 년 간 이어오거나 투기 목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력가의 사례가 다수 포착됐다. 한국일보 기획취재부 기자들이 쪽방 건물 등기부 등본 수백장을 펼쳐놓고 건물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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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3개월 간 전수조사한 서울 시내 쪽방 건물 등기부 등본. 배우한 기자

부동산 투자자에게 재개발 지역 투자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언제 첫 삽을 뜰지 모르지만, 먼 미래의 청사진만 믿고 현금 자산과 대출을 끌어와 부동산을 매입한다. 사업 자체가 좌초하거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무기한 유예된다면 꼼짝없이 투자금은 투자처에 묶이게 된다. 하지만 ‘쪽방촌 투기’는 다르다. 많은 돈을 투입해 ‘알박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쪽방 주민으로부터 현금이 나오는 ‘캐시카우(Cash Cowㆍ확실히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나 사업)’이다. 부촌의 건물주들이 쪽방촌 건물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이다.


‘여인숙’ ‘고시원’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쪽방은 무허가 숙박업이다. 부동산 계약서와 보증금 없이 대부분 ‘방 있음’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해 관리인과 만나 그 자리에서 구두로 계약이 이뤄진다. 쪽방 건물 한 채당 매달 287만5,168원(평균값을 통한 추정)을 현금으로 받으면서도 카드 결제나 현금 공제가 되지 않아, 수익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현금’의 형태로 집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흐른다. 대다수 쪽방 소유주가 쪽방 영업을 탈세 창구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가장 쪽방이 많은 동자동 쪽방촌에서 여인숙과 고시원으로 영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숙박업으로 등록해 운영하는 쪽방은 단 한 곳도 없다. 수완만 좋다면 쪽방 관리인도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돈의동에서 9채 건물에 100칸 상당 무허가 쪽방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60대 여성은 “집주인으로부터 전대(임차한 것을 또다시 남에게 빌려 주는 것)한 형식으로 쪽방을 관리하는데, 공실만 없다면 매달 수익이 1,000만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갈수록 주거 비용이 가파르게 올라 고시원ㆍ쪽방 등 주거 난민 처지에 놓인 이들이 늘어나고, 쪽방의 투자 가치가 높아지자 멀쩡한 집을 쪼개 쪽방으로 운영해 돈을 벌려는 조짐까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종로구청은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인근에서 불법 개조를 해 새롭게 쪽방 영업을 시작하려는 건물주를 적발했다. 해당 건물은 기존 창신동 쪽방촌이 아닌 길 건너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었다.

인간다운 삶은 뒷전…’혈세’는 집주인 주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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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주민이 물이 새는 쪽방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서재훈 기자

쪽방의 평균 평당 임대료 18만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인 3만9,400원의 4배를 훌쩍 뛰어넘는 임대료를 내면서도 쪽방 주민들은 최소한의 주거환경도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1.6~6.6㎡(0.5~2평) 내외의 좁은 면적에, 밥을 해먹을 공간도, 샤워실이나 화장실도 갖춰져 있지 않다. 창신동에 거주하는 이모(80) 할머니는 씻기 위해 일주일에 2회 버스를 타고 2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간다. 매달 20만원을 방세로 내는 이 할머니는 “차가운 물만 나오는 수도꼭지가 덜렁 설치돼 있을 뿐, 세면대도 없어 따뜻한 물에 손 씻을 기회도 귀하다”며 “지난겨울에는 집 안에서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 패딩 조끼를 입고 지내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전을 문제 삼아 자치단체가 쪽방을 강제적으로 폐쇄하는 법적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많은 쪽방 주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돼,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적극적인 단속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서기 또는 혹한기마다 많은 정치인이 얼굴을 내비치는 ‘빈곤의 무대’로 쪽방을 활용했지만, 40년 이상 무허가 영업을 하는 이면에 숨겨진 근본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이는 없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큰불이라도 날까 봐 10년 전부터 구청 예산으로 두꺼비집(누전차단기)과 화재경보기를 달아주고 집을 고쳐주고 있다”라며 “가끔 건물주가 해야 할 의무를 구청이 대신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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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쪽방촌의 한 쪽방 건물 내부. 주민들은 공용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거나 몸을 씻는다. 이혜미 기자

더 큰 문제는 빈곤계층을 위해 국민 혈세로 제공되는 복지가 결국 집주인의 주머니로 흘러들어 간다는 점이다. 서울시의 ‘2018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정부보조를 받는 수급자는 전체 쪽방 주민의 67.1%(응답자 2,144명 중 1,440명)에 달한다. 서울 기준 1인 가구는 주거급여로 23만3,000원 안에서 실제 월세를 지원받는데, 결국 그 돈이 곧바로 쪽방 실소유주들에게 흘러가는 형국이다.


허술한 법의 울타리 안에서, 쪽방 주민들은 생애 단계마다 크고 작은 착취를 경험한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7년 동안 거주 중인 박모(42)씨는 “지체장애 2급의 한 주민(53)이 2년 가까이 매달 100만원씩 집주인에게 뺏기는 걸 목격했다”라며 “통장에 수급비 등이 들어올 때마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의 식비와 관리비를 핑계로 은행까지 따라가 돈을 빼앗는 일이 허다하지만 쪽방촌 안에서 기댈 곳은 이웃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의 안전이야 뒷전이고 공실이 생기지 않아야 하니 장애인 주민이 착취를 피해 다른 쪽방으로 달아나도 기어코 다시 데려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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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집주인의 강제 퇴거 요청으로 많은 주민들이 쫓겨났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0번지는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현재 ‘저렴 쪽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108호 주민 김병택(80)씨가 건물 복도에 서 있다. 서재훈 기자

서울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환경을 개선하거나 기존 주택을 전대해 시설을 보수하는 형식에 그쳐 정책적 한계가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기존 쪽방 건물을 전대해 내부를 수리한 후 시세 70% 정도의 저렴한 임대료로 주민들에게 재임대하는 ‘저렴한 쪽방 임대 지원 사업(저렴쪽방)’을 운영하고 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주고 전기, 소방 시설이나 보일러를 교체해주는 대신 5년 동안 임대료 인상을 금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세금이라는 시민의 공적자산과 기업이 일부 공헌하는 자금으로 쪽방 건물주의 자산 가치만 증식하는 데다 사업이 끝나면 그 모든 게 건물에 귀속된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2015년 게스트하우스로 용도 변경을 하려던 집주인이 주민들을 강제퇴거시키며 한 순간에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던 동자동 9-20번지는 현재 ‘저렴쪽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의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받아들여졌고,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다. 재래식 화장실은 양변기로 교체됐고, 방문은 나무문에서 철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건물 주민들은 대부분 “문과 벽지만 좋아지고 바뀐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주거 불안은 여전히 실존하기 때문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내년이면 ‘저렴쪽방 사업’ 기한인 5년이 임박해 또 살 곳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데, 최근 이 일대에 개발 소식이 꿈틀대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시가 공공매입 형식으로 공공쪽방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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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일대.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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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쪽방 건물 소유주 사례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자료 정리=조희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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