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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 배불리 먹이는 게 덕 쌓는 일이제"...전라도서 유명한 돼지국밥 비결은

<97>전남 순천 건봉국밥집

1987년부터 2대째 장사 중

2000년부터 아들이 이어받아

돼지 냄새 안 나 더 인기

영업방식 변화로 승부수 주효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 입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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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국밥 2대 주인 김광산씨는 식당들도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여기에 맞춰 변화할 줄 알아야 오래 살아남는다고 했다.

국밥 맛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했다. 심지어 그게 흔한 '돼지국밥'이라면. 후각을 자극하는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입맛까지 방해해 색다른 감흥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게 돼지국밥이다. 그래서, 이 돼지 냄새를 잡는 게 국밥집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냄새 잡는 법을 터득 못 한 식당들이 식탁 위에 '약방(藥方)에 감초'처럼 꺼내 놓는 게 들깻가루다. 고기의 잡내와 누린내를 잡는 데 이만한 것도 없지만, 그게 없는 식당이 있었다. '무슨 자신감일까' 하는 기자 특유의 의심병이 도졌다.


하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뽀얗다 못해 누르스름한 빛깔을 띤 국물을 후후 불며 숟가락으로 한술 떠 입안에 넣는 순간, 잡내 없는 엇구수한 맛이 입에 착 감겼다. 설렁탕 맛이었다. '돼지 뼈를 우려서 곰국 맛을 내다니···.' 시쳇말로 '깜놀'이었다.


'뜻밖의 일'은 두 번째 숟가락질에서도 이어졌다. 푸짐한 고기 양에 또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괴기 건데기가 허벌나게 많구만.' 전라도 사투리가 절로 나왔다. 옆 자리에서 국밥을 먹던 20대 연인도 예상치 못한 고기의 양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 그걸 다 먹을 거야"라는 여성의 말에 마주 앉은 남성은 "다 먹었어"라며 국물까지 깔끔하게 들이키고 '캬' 하는 포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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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가 펄펄 끓는 건봉국밥 주방은 특이하게도 행인들이 오가는 순천 아랫장 길거리 쪽으로 개방돼 있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를 잡지 못하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남도 최대 오일장인 전남 순천시 아랫장 입구 건너편에 위치한 건봉(健奉)국밥. 계묘년 새해 둘째 날 찾아간 국밥집은 맛도 맛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반전의 묘미가 쏠쏠했다.


돼지국밥집의 상징처럼 각인된 돼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육수가 펄펄 끓는 주방도 보란 듯 시장 거리 쪽으로 개방돼 있었다. 냄새가 나지 않아서일까. 식당에 들어서자 젊은 손님들이 많았다. 원래 돼지국밥은 부산 등 경상도 일대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순천의 돼지국밥은 경상도와 확연히 달랐다. 고객들은 건봉국밥을 두고 "전라도식 돼지국밥의 표준"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 식당 2대 주인 김광산(52)씨는 "어머니 가르침대로 국밥에 맛과 진심을 담았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씨 모친 배순화(82)씨가 국밥집을 연 건 1987년이다. 배씨는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새끼들 배를 곯게 할 수 없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시장통의 허름한 가게를 얻어 솥단지 하나 걸어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국밥 한 그릇이었지만 배씨는 먹는 이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건강을 받들다'라는 뜻의 식당 이름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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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국밥 식당 한쪽 벽면엔 길이 3m짜리 대형 나무수저가 전시돼 있다. 이 식당 2대 주인 김광산(왼쪽)씨는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이는 게 덕을 쌓는 길이라는 어머니 배순화씨 뜻을 이어받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식당의 시그니처라고 말했다.

맛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배씨는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이는 게 덕을 쌓는 길"이라며 "최고의 국내산 식재료만 쓰고 고기 건더기를 듬뿍 넣어 주는 것도 여기서 출발했다"고 밥장사 경험에서 얻은 철학을 얘기했다. 배씨의 철학은 아들 김씨에게 오롯이 대물림됐다. 김씨는 "어머니의 인생관과 가르침, 그리고 그저 맛있게만 먹던 어머니의 음식은 이젠 제가 지켜야 하는 신념이 됐다"고 말했다. 식당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3m짜리 대형 나무수저도 배씨의 철학을 이어가겠다는 아들의 다짐이다.


하지만 김씨도 처음부터 국밥집 사장을 꿈꿨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고시 공부를 하던 김씨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1997년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육수부터 끓이는 법을 익히면서 시작됐다. 매일 돼지 앞다리뼈 100㎏을 3시간 이상 초벌로 고아 핏물을 뺀 뒤 하루 종일 우려냈다. 육수 간 보기와 고기 손질, 주방 일, 홀 서빙, 계산 업무도 김씨 몫이었다. 평생 펜만 잡았던 그를 향해 주변에선 "버텨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는 밥장사에 관한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변하지 않는 맛'을 뽑아내겠다는 집념으로 발을 들인 밥장사에서 김씨는 서민들의 헛헛한 배를 불리는 일이라는 사명감 속에 고된 노동을 감내했다. 그렇게 4년 만에 어머니의 손맛은 아들의 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육수를 뽑는 게 가장 자신 있었다"며 "아직도 어머니가 1차로 육수의 간을 보기는 하시지만 이제 얼추 어머니의 입맛을 흉내는 낸다. 나도 몰랐던 내 적성을 찾은 셈"이라고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모자가 뽑아낸 국밥의 맛과 넉넉한 인심에 손님들도 호응을 보였다. 김씨가 식당을 물려받은 2000년부터는 식당 앞에 대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했던 김씨에게 생경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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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국밥 2대 주인 김광산씨는 국밥 주문이 들어오면 밑반찬을 고급스런 나무 쟁반에 받쳐 손님상에 내놓는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국밥 한 그릇을 파는 게 아니라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운도 따랐다. 김씨는 "당시엔 국밥과 반찬을 둥근 알루미늄 오봉(쟁반의 일본어)에 올려 통째로 손님상에 냈는데, 굉장히 보기 싫었다"며 "그래서 사각 나무쟁반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대접받는 느낌이라며 좋아했다. 같은 음식도 어디에 담아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쟁반 교체가 손님을 끌어모으고, 김씨를 장사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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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순천 아랫장 입구 건너편에 위치한 건봉국밥 전경.

이를 계기로 영업 방식의 '진화'를 꾀했다. "맛은 기본이지만, 맛으로만 승부를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한 김씨는 식당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바꾸고, 마네킹에 일회용 앞치마를 입혀 놓고 손님들이 직접 가져다가 착용하도록 하는 등 차별화를 시도했다. 단순히 대를 이어 오래 살아남는 국밥집이 아니라 트렌드와 마케팅, 브랜딩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건봉국밥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김치 레시피를 개발하고 국밥 메뉴도 고객 입맛에 맞춰 9개로 다양화했다.


전략은 제대로 먹혀 들었다. 영업 매출과 이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김씨는 2017년 세를 얻어 쓰던 식당과 주변 땅을 사들인 뒤 그 자리에 3층짜리 건봉빌딩을 지어 올렸다. 지난해 이곳에서만 18억 원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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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국밥 2대 주인 김광산씨가 오프라인(식당)과 온라인을 통해 시판 중인 건봉국밥 밀키트 제품. 포장 디자인을 고급화해 국밥계의 에르메스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건봉국밥 제공

건봉국밥이 십수 년간 '되는 집'이었지만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김씨도 코로나19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2020년 초부터 손님들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씨는 "처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그가 아니었다. 포장 배달을 하면서 밀키트 사업의 시장성을 뒤늦게 알아본 그는 주저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산 지역 돼지국밥 식당들보다 한발 늦었지만 포장 고급화 전략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했다. 그가 2021년 11월 네이버쇼핑에 건봉국밥으로 상품 등록을 하자, "국밥계의 에르메스"라는 댓글까지 달리는 등 고객들 반응은 뜨거웠다.


김씨는 지난달 21일엔 백화점 매장 납품보다 어렵다는 인천국제공항 내 매장 납품까지 따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1층 B입국장에 위치한 '백년가게 밀키트 식당'에서 건봉국밥을 판매하게 된 것이다. 전라도식 돼지국밥으론 처음이다. 그는 "자부심이 크다"면서도 "이 업(業)을 하면 할수록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배운다"고 했다.


"식당은 기업의 축소판이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라는 김씨는 "단순히 음식만 판다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여기에 맞춰 변화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업력 36년을 맞는 노포의 존재 가치는 거상과도 같은 '아들 장사꾼'의 통찰에서 또 한번 도드라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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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건봉국밥집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순천= 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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