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국계 혼혈 샤넬 밀러, 백인 명문대생에게 성폭행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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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물두살이던 샤넬 밀러는 길바닥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동생 티파니, 동생 친구 줄리아와 집 근처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갔다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난 뒤 겪은 일이다. 지나가던 스웨덴 출신 대학원생 2명이 도망가려던 폭행범 브록 터너를 제압했다.
병원에서 눈을 뜬 샤넬 밀러에게 '샤넬 밀러만의 삶'은 사라졌다. 이젠 샤넬 밀러, 그리고 에밀리 도(Emily Doeㆍ여성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쓰는 가명 중 하나)로 나뉜 삶을 살아야 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과 일상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가해자의 유죄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수치심과 모멸감을 무릅쓰며 철저히 홀로 싸워야 하는 삶. 이 책은 4년간 에밀리 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기록이다. 고장 나 있는 세상과 맞서싸운 피해자가 용기를 내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써낸 생존의 기록이기도 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미투 운동’을 이 사건이 확산시킨 건, 사건 그 자체보다 1년 뒤 재판 결과였다. 가해자 브록 터너가 받을 수 있었던 최고 형량은 14년. 두 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심지어 가해자도 자신의 행위를 일부 인정했지만 판사는 고작 6개월형을 선고했다.
판사는 전과가 없고 징역형이 가해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1년 미만 형을 받은 죄수와 미결수를 수용하는 카운티 감옥(1년 이상 유기수와 무기수는 주정부 교도소에 수용)은 모범적으로 하루를 보내면 하루를 감형해주니, 사실상 3개월형을 선고한 셈이었다.
당장 ‘백인 명문대생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중국계 혼혈에 평범한 직장인인 밀러가 입은 피해보다, 부유한 집안의 전도유망한 백인 명문대 신입생의 미래를 더 걱정했다는 지적이었다.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른 건, 가해자 아버지의 법정 변론. 그는 수영도, 공부도 잘했던 아들이 그저 선배들의 잘못된 음주, 파티문화에 물들어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스테이크를 “이제 그저 살기 위해 먹는다”고도 했다.
반전은 밀러의 펜 끝에서 시작됐다. 그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낭독한 ‘피해자 의견 진술서’ 전문이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게재돼 1,800만명에게 읽힌 것이다. 당장 소셜미디어에는 ‘스웨덴인이 되자(#BeTheSwede)’라는 해시태그가 퍼져나갔다.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등 유명 정치인들 응원도 이어졌다. 판사를 해임해야 한다는 청원 사이트엔 며칠새 10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결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정했고, 판사는 2018년 주민소환 투표로 해임됐다. 캘리포니아에서 86년 만에 일어난 불명예였다. 브록 터너는 항소하며 저항했으나 결국 기각됐다.
이 파란만장한 4년을 보낸 뒤 밀러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도입부에 수줍음 많던 초등학생 시절에 대해 썼다. 성폭행 뒤엔 “이름도, 신원도 없는 사람"이 될 그 아이의 과거를 들려준 것이다. 자신은 ‘피해자 A씨’라는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 샤넬 밀러라는 이름을 지닌 엄연히 실존하는 입체적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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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사건 당일의 기억부터 담담히 써내려 간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잠시 집으로 돌아온 동생 티파니와 나눴던 이야기, 아버지가 퀴노아를 ‘크위-노아’라 발음하며 만들어준 요리, 파티에 가서 마셨던 보드카 등. 마치 당시의 정황을 동영상 재생하듯 선명하게 묘사한다.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건 심리 묘사다.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각종 검사와 조사를 받으며 느끼는 당황스러움,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일이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어하는 부질없는 바람, 가족과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생경한 느낌, 세상에 혼자 고립돼 있는 듯한 막막함 등 수많은 감정을 세밀화 그리듯 섬세하게 그린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가다 보면 밀러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어 숨을 고르게 된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밀러는 삶을 짓누르는 무게를 벗어나려는 듯 희망을 찾아내려는 의지와 유머러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책장을 덮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산산히 부서진 일상을 재건하는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다. 밀러는 직장을 그만둔 뒤 동판화를 배우러 3,000마일 떨어진 로드아일랜드로 떠나지만 학교와 숙소를 오가는 길목에서 끊임없이 남자들에게 성희롱을 당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상적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해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법 시스템도 끔찍하긴 마찬가지. 지리하게 연기되는 재판 과정을 겪으며 자신과 가족의 일상이 망가지지만 그저 무기력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성범죄를 이야깃거리로만 소비하는 언론, 피해자를 탓하고 가해자를 걱정하는 구경꾼들, 성폭력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법 시스템은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밀러가 온갖 고통을 참아내며 완성한 이 책은 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는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벽장으로 내모는 사회적 억압을 거부한 그의 용기 있는 진술은, 이 세상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지난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은 지난해 최고의 책으로 뽑았다.
밀러가 글을 쓴 건,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의 옆에 서기 위해서였다. “젠더 폭력의, 계급 특권의 야만성을 폭로하기 위해” 썼다. ‘술에 취해 의식 없는 상태로 발견된 여자가 이런 글을 썼을 리 없다’는 식의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그는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 그는 힘 빠져 있을 피해자에게 “이번 생에서 당신이 안전을, 즐거움을,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알기에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해자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판사가 해임됐으니 해피엔딩일까. 밀러는 이런 글과 함께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에는 행복한 결말이 없다. 행복한 부분은, 결말 같은 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나 삶을 이어갈 방법을 찾을 것이기에.”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