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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션레인지, 불꽃도 안 보이는데 순식간에 끓네?

자기장 이용해 열 에너지 만들어


최근 가스레인지 빠르게 대체

세라믹판 밑 코일에 전류 흘리면

냄비 바닥 촘촘히 자기장이 통과

유도전류가 도체 부딪혀 열 발생


열효율 2배, 화상ㆍ화재 위험 줄어

뚝배기 등 비전도체는 못쓰지만

최근 하이브리드 레인지 등장도

인덕션레인지, 불꽃도 안 보이는데 순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셰프컬렉션 인덕션 레인지. 삼성전자 제공

주방에서 특유의 가스 냄새와 푸른 불꽃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이 채우고 있다. 인덕션레인지로 대표되는 전기레인지가 가스레인지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5만대 수준이던 전기레인지 판매량은 2013년 30만대로 늘었고, 올해는 50만대 가량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한다. LG전자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판매된 레인지 종류 중 전기레인지 비중이 80%에 달했을 정도다.


열을 사용하지 않는 인덕션레인지는 상판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전원이 켜진 인덕션레인지 위에 날계란이나 초콜릿을 올려놔도 익거나 녹지 않는다. 가스 불을 사용할 때 우려되던 화상이나 화재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어, 아이나 노약자가 있는 집에서도 안심할 수 있다. 잔열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분리해 청소해야 하는 가스레인지에 비하면 청소도 쉽다.


다른 인기 이유는 가스레인지 보다 훨씬 강한 화력으로 빠른 조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열을 전달하는 과정이 생략돼 손실되는 열이 거의 없다. 실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가스레인지가 물 2ℓ를 끓이는 데 일반적으로 10분 이상 걸리는 데 비해 인덕션레인지는 4, 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열효율이 90%에 달한다. 열을 사용하는 다른 레인지류와 달리 잔열이 거의 남지 않아 섬세한 불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뜨겁지도 않은 평평한 세라믹 판이 어떻게 금속 냄비를 순식간에 섭씨 100도로 끌어올리는 걸까. 여기에는 자기장을 이용한 ‘유도가열’이라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앙페르, 패러데이, 그리고 줄의 법칙

유도가열이란 자기장을 이용해 열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가열할 대상에 직접 열을 가해 에너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장을 통해 대상에 전달된 전자가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유도가열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앙드레 앙페르가 발견한 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둥글게 말린 코일에 일정한 방향으로 전류를 흘려주면, 코일이 자석처럼 N극에서 S극으로 흐르는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법칙이다.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주먹을 쥐고 전류의 방향을 검지부터 새끼손가락에 일치시켰을 때,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이 N극이자 자기장의 방향이다. 전류의 방향이 바뀌면 자기장의 방향도 반대로 변한다.


1831년, 영국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앙페르의 연구를 보며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면, 반대로 자기장을 이용해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시행착오를 거쳐 그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고정된 코일 속에 자석을 여러 번 넣었다 빼는 실험을 했는데, 그 단순한 움직임만으로도 전선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자석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이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면서 도선 안에 있던 전자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자기장이 만들어낸 전류를 ‘유도전류’라고 부른다.


철이나 구리와 같은 전도체가 이 유도전류와 만나 뜨거워지는 현상이 바로 유도가열이다. 물체를 공중에 던지면 반대 방향으로 공기의 저항이 일어나듯, 전기가 통하는 전도체에도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고자 하는 전기저항이 있다. 전도체에 형성된 유도전류는 자기장 변화 때문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흐르게 되는데, ‘줄의 법칙’에 따르면 흐르는 전류가 도체의 저항과 부딪힐 때는 열이 발생한다. 전류의 크기나 도체의 전기저항성이 클수록, 그리고 전류가 통한 시간이 길수록 도체는 더욱더 뜨거워진다.

양은냄비는 안 끓는 인덕션레인지

인덕션레인지, 불꽃도 안 보이는데 순

인덕션레인지에 날 계란을 올리자, 그냥 상판 윗부분의 계란 절반은 그대로지만, 금속 프라이팬 위의 나머지 계란은 금방 익었다. 아에게(AEG)제공

인덕션레인지의 구조는 간단하다. 구리로 만든 코일을 전기 장치와 연결하고, 그 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세라믹 판으로 덮는 게 끝이다. 단순히 코일에 전기를 흘려주는 것만으로도 세라믹 판 위에 올려진 금속 냄비는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콘센트에 꽂아 사용하는 전기는 전압과 방향이 일정한 직류(DC)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에 따라 크기와 방향이 변하는 교류(AC)다. 교류가 60㎐라면 1초에 60번 전류의 방향이 바뀐다는 뜻이다. 앞서 설명한 앙페르의 법칙에 따라 코일을 따라 흐르는 전류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하면, 이에 따라 형성되는 자기장도 주기적으로 방향이 변하게 된다. 즉, 가정용 전기를 코일에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코일 주위에는 ‘변화하는 자기장’이 형성된다.


세라믹 판을 사이에 두고 코일 위에 위치한 냄비 바닥에는 코일에서 형성된 자기장이 통과한다. 이때 자기장은 코일 전체뿐 아니라 각각의 구리선 주위에도 발생하기 때문에, 평평한 냄비 바닥에는 자기장이 촘촘하고 고르게 통과하게 된다. 패러데이 법칙에 따라 냄비 바닥에는 유도전류가 형성돼 수많은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줄의 법칙에 따라 금속 재질의 이 냄비는 뜨거워진다.


그러나 인덕션레인지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사용할 수 있는 조리도구의 재질이 한정된다는 점이다. 전기가 통하는 전도체여야만 패러데이의 법칙과 줄의 법칙을 모두 만족해 열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철이나 법랑,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진 조리기구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뚝배기나 알루미늄(양은), 유리 재질로 된 냄비는 인덕션 위에서 아예 끓지 않는다. 일부 프라이팬처럼 세라믹 코팅이 된 제품도 마찬가지다. 스테인리스를 제외하고는 자석을 가져다 댔을 때 붙어야만 인덕션에서 사용할 수 있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들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덕션레인지와 라디언트(하이라이트)레인지를 함께 탑재한 ‘하이브리드’ 형태가 많다. 라디언트레인지는 열선을 활용해 상판을 가열하고 이 열로 냄비를 데우는 방식으로, 가스레인지와 인덕션레인지의 중간 형태다. 라디언트레인지는 인덕션레인지보다 열효율이 낮고 화상 위험이 있지만, 가스레인지에서 쓰던 용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범용성이 높다. 이 밖에도 휴대폰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사물인터넷(IoT)을 탑재한 제품, 조리 용기 크기에 따라 가열 범위가 달라지는 제품 등 종류와 기능도 다양화하는 추세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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