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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세심한 맛] 마트서 파는 참치 캔에 참다랑어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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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통조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수은 함유량과 칼로리뿐 아니라 해양 생태계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식재료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리얼리티 쇼 ‘ 배틀피시(Battlefish)’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제목에서 슬쩍 엿보이듯 어부들이 바다에서 바다 및 생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여름 내내 미국 북서부의 오리건과 워싱턴 주와 맞닿은 태평양에 참치떼가 찾아온다. 한해 내내 먹고 사는데 필요한 수입이 바로 이 참치철에 달려 있으니, 어부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최대한의 어획량을 확보하고자 안간힘을 다한다.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어선은 매일 바다로 출퇴근할 수 있지만 배도 비싸고 연료비도 많이 들어 선택할 수 있는 어부는 드물다. 대부분은 보급품을 쟁여 100~200㎞ 떨어진 근해로 나가 최대한 오래 버티며 참치를 잡는다. 모 아니면 도라고, 매일 대박이 터져 참치로 급냉 창고가 꽉 차거나 갑작스런 고장 등으로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만 뭍으로 선수를 돌릴 수 있다.


참치가 걸려들면 마대자루 만한 굵기의 낚싯대를 간신히 가눠서는 낚인 참치를 갈고리로 찍어 갑판에 올린다. 그리고 펄쩍대는 참치의 아가미를 칼로 베어 숨을 끊고 피를 뽑아 낸 뒤 바로 배 밑의 급냉 창고에 집어 넣는다. 피로 생선의 맛이 나빠지지 않는 한편 신선도를 최선으로 유지하는 요령이다. 파도는 거칠고 참치는 미친 듯 날뛰며 유혈이 낭자해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방이 온통 바다다 보니 이 계절에는 쌀쌀하지만 그래도 외출조차 쉽지 않은 요즘 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철학 및 도구를 갖춘 어선들이 참치를 잡아 올리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모두의 만선을 기원하게 된다. 어부도 어선도 훨씬 많이 등장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망망하고 파도는 여전히 거친 까닭에 동시대의 ‘바다와 노인’ 같다.


어부들이 바다와 힘겹게 싸우며 잡은 참치에게는 두 갈래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최선 어선이 잡은 소수는 냉장 상태로 매일 뭍에 실려와 싱싱한 덕분에 최고가로 현지 레스토랑에 팔린다. 한편 선동된 채 입항하는 대다수는 그 상태 그대로 통조림 공장으로 직행한다. 참치 통조림이라니,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바로 그것일까? 쇼가 워낙 생생한지라 보고 있노라면 통조림이라도 좋으니 먹고 싶은 충동이 솟아 오른다.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을 만큼 흔하디 흔한 게 참치 통조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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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참치 통조림은 날개다랑어로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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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회로 먹는 참치 어종은 해양 생태계에서 '심각한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참다랑어와 눈다랑어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회는 참다랑어, 통조림은 가다랑어

그렇지만 ‘배틀피시’가 돋운 식욕을 다스리겠노라고 편의점에 갔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우리가 참치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생선의 종류가 꽤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 헛갈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저 참치가 우리 통조림의 그 참치가 아닐 수 있다. 말의 울타리 안에 다랑어는 물론 새치까지 복작복작 모여 있을뿐더러, 참치는 통조림뿐만 아니라 회로도 먹는다. 그 참치가 이 참치인 걸까? 그렇지 않아서 그 참치와 이 참치가 다를뿐더러 맛과 질에 따라 서열도 또렷하게 구분돼 있다. 새치는 다음을 기약하고 다랑어의 계보만 살펴보자면 일단 맨 위부터 북방 참다랑어(Pacific Bluefin Tuna), 남방 참다랑어(Southern Bluefin Tuna), 눈다랑어(Bigeye Tuna)가 있다. 주로 횟감으로 소비하는 고급 어종이다. 바로 밑에 횟감과 통조림 사이를 오가는 황다랑어(Yellowfin Tuna)가 있고, 마지막 두 어종인 날개다랑어(Albacore)와 가다랑어(Skipjack Tuna)가 깡통의 단골 손님이다.


‘배틀피시’에서 전력을 다해 잡는 어종은 알바코어, 즉 날개다랑어이고 우리 통조림의 단골은 가다랑어이다. 말하자면 서열의 맨 아래 두 종류이지만 그래도 급은 엄연히 다르다. 알바코어 통조림이 가다랑어보다 3배쯤 비싸고 더 고급 식재료 대접을 받는다. 따라서 ‘배틀피시’의 참치를 기대하고 편의점에 갔다가는 실망할 수 있으며,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통조림으로 날개다랑어를 먹을 가능성은 낮다.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해외 직접 구매의 선택지만 눈에 들어오고 국산은 없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황다랑어 통조림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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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통조림 재료인 가다랑어는 다랑어계 서열 맨 꼴찌이지만 맛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우리의 통조림 참치가 서열 맨 꼴찌인 가다랑어라고 해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부담 적은 단백질 공급원인데다가, 사실 가다랑어의 맛이 날개다랑어보다 더 진하기 때문이다. 참치를 ‘바다의 닭고기’라 일컬으며 홍보하는 통조림 기업도 있으니 안심하고 비유할 수 있다. 날개다랑어가 닭가슴살이라면 가다랑어는 허벅지살이다.

성인이라면 주2회 섭취가 적당

1982년 처음 국내에 소개된 이후 약 40년에 걸쳐 참치 통조림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한식에 녹아 들었다. 찌개부터 전에 이르기까지, 못 만드는 반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치 통조림을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 걸까? 수은 탓에 해산물의 섭취에 좀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해산물이 수은을 함유하고 있는데, 특히 임산부와 유아 및 어린이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참치도 예외일 수는 없는 팔자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서열이 높은 고급 횟감 어종이 더 위험하다. 통조림 신세인 날개다랑어나 가다랑어의 수은 함유량은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후자가 더 안전하다. 그렇다고 매일 먹어도 되는 건 아니고, 성인이라면 한 끼 최대 170g 기준 주 2회를 넘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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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통조림에 들어간 기름은 찌개 같은 국물 음식의 바탕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통조림의 압도적인 다수가 가다랑어라고 해서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은 아니다. 야채, 김치, 짜장 등 다양한 가미 참치 말인가? 물론 그런 종류도 있지만 그 이전 단계에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이 있다. 바로 기름과 물이다. 원래 참치 통조림이라면 식용유에 재워 가공한 게 표준이었지만, 지방의 열량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로 물에 재운 참치가 등장했다. 실제로 둘을 비교하면 반 컵 기준으로 기름에 재운 참치는 145, 물에 재운 참치는 66칼로리이다.


두루 살펴보아도 물에 재운 참치가 대세이기는 하다. 최대한 걷어내더라도 참칫살이 기름을 물보다 많이 머금기도 하거니와, 물에 재운 참치에 오메가-3가 더 많다는 게 핵심이다. 또한 기름에 재울 경우 좀 더 잘 감춰지므로 질이 낮은 참치를 쓴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대체로 ‘지방/열량=맛’이니 물에 재운 참치의 맛이 확실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식의 식재료라는 차원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딸려 오는 기름(채소나 조개 등으로 맛을 낸다)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찌개 같은 국물 음식의 바탕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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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재운 참치가 기름에 재운 참치보다 열량은 낮고, 영양은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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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열량을 감수하고 맛을 쫓으려면 올리브기름에 재운 참치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또한 지방이 배제됐다는 이유로 물에 재운 제품의 간이 기름에 재운 것보다 더 센 경우도 있으니 꼼꼼히 비교해보고 골라야 한다. 높은 열량을 감수하고 맛을 좇겠다면 대안으로 식용유 아닌 올리브기름에 재운 참치도 있으니 참고하자. 국내에서는 이탈리아 등에서 수입된 병조림을 찾아볼 수 있는데, 종종 ‘차라리 쇠고기를 먹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격대가 높은 제품도 있다. 낮은 서열의 참치가 미식의 영역에 속하는지 궁금하다면 맛볼만하다.

고갈 위기에 처한 참치

마지막으로 수은 함유량과 마찬가지로 참치에게도 해산물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바다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걸린다. 사실은 이제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처음 미국산 날개다랑어 통조림의 포장에서 ‘돌고래 무첨가(Dolphin Free) 참치’라는 문구를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선하다. 돌고래 무첨가 참치라니, 그렇다면 돌고래 첨가 참치도 있다는 말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통조림용 참치를 둘러싸고 아픈 사연이 있었다. 바로 남획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의 무차별적 피해이다.


원래 통조림용 참치 어획의 대세는 집어 장치였다. 물 위에 떠 있는 부유물체를 안식처라 여기는 본능에 착안해 물에 스티로폼을 띄워 작은 수중생물을 유인하고, 주위에 폭 200m, 깊이 2㎞ 수준의 그물을 쳐 구역 전체의 어종을 잡아들인다. 상위 포식자인 참치의 효율적인 포획을 추구하다가 돌고래는 물론, 오리나 갈매기 같은 조류까지 피해(혼획)를 입힌다. 또 다른 수단인 연승어법은 명칭처럼 낚싯바늘이 달린 줄을 길게 늘어뜨려 참치를 낚는데, 역시 남획과 혼획을 피할 수 없다. 해양 자원 고갈에 대처하고자 어획량 제한 및 채낚이를 통한 개별 포획 등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참치업계는 남획과 혼획의 평판으로부터 아직 투명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린피스가 마지막으로 발간한 2013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는 해양 생태계를 존중하며 잡는 ‘착한 참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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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30년 뒤엔 통조림 참치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인류의 오랜 남획으로 해양 생태계가 심각한 수준으로 고갈되고 있는 가운데 참치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소개한 서열 1, 2위의 고급 횟감 참다랑어류는 이제 최고 위험 수준인 ‘심각한 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과 ‘멸종 위기종(Endangered)’에 속한다. 서열 아래로 내려올 수록 위기 단계도 낮아지지만 상대적일 뿐이니 날개다랑어는 ‘위기 근접종(Near Threatened)’이다. 가다랑어나 돼야 ‘관심 필요종(Least Concern)’이지만 분류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48년쯤 해양 생태계가 고갈될 수도 있다고 하니 서열 낮은 통조림 참치마저도 의식하며 먹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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