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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벽 위 테라스를 층층이...서촌 '북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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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북측을 향해 낸 테라스와 통창은 가족이 함께 또 따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각자의 공간에서 온전히 풍경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동네 서울 종로구 서촌. 그중에서 더욱 한적하고 고요한 옥인동 주택가에 육중한 건물 한 채가 우뚝 올라왔다. 빈티지한 갈색 벽돌을 쌓아 올린 3층 짜리 건물이 작은 회사의 사옥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일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이 건물은 주민 송철(68), 이정숙(65) 부부와 자녀들이 지난해 말 새로 지어 올린 신상 단독주택(대지면적 103.5㎡, 연면적 214.12㎡)이다. 가족이 20년간 삶을 꾸려 온 옥인동 옹벽 위 단상에 계단처럼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본따 '옥인단 단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년 전 부부는 네 자녀를 위해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같은 자리에 있던 30년식 낡은 집에서 주택살이를 시작했다. '주택이 으레 그렇겠거니' 하며 온갖 불편을 감수했지만 지어진 지 50년이 넘어가자 견디는 데도 한계가 왔다. 쉴 틈 없이 일해 온 남편이 은퇴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먼 미래까지 가족을 품을 '마지막 집'을 짓자는 결심이 섰다. "이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며 살았던 동네를 떠난다는 게 도저히 내키지 않더군요. 학창시절 시기를 보낸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가족이 의기투합해 오래된 터에서 새 집을 짓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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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20년간 살았던 2층 주택. 지어진 지 50년 된 낡은 주택으로 생활에 불편함이 많았고, 창과 마당이 도로변으로 나 있어 사생활 보호에 취약했다. 임승모 소장 제공

부부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한 바람과 예산 사이에서 몇 가지 조건을 정했다. 자연을 즐길 수 있을 것, 일상을 안심하고 누리는 안전한 집일 것, 독립된 공간이 있을 것 등이다. 심플하지만 그 기본을 충실히 갖춘 집짓기를 위해 여러 전문가를 만났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낀 부부는 이윽고 임승모(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를 만나 갈증을 해소했다. "기존의 규격화된 모델이 아니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부 수용하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시안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 후로는 건축가에게 완전히 집짓기를 일임했고,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이 즐거운 기억이 됐어요."


임 소장 역시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오롯이 집과 대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상을 수상한 그도 '옥인단 단단'을 첫 주택 프로젝트로 진행하며 집짓기의 기초를 단단히 쌓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관건은 가장 좋은 경치를 담을 수 있는 프레임과 가족의 루틴이 독립적으로 순환하는 최적의 동선을 찾는 일이었다. 그는 "가족들이 원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지만 서로 어울리면서도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연과 일상을 누리고 싶어 한다는 점이 동일했다"며 "1층은 부부, 2층과 3층은 직장인 자녀들의 공간으로 분리하고, 각 층에 모양이 다른 독립 테라스를 배치한 '한 지붕 세 집'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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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본 테라스의 모습. 바닥에 더해진 곡선 디테일들은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사계절 자연과 맞닿는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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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별로 다른 모양의 테라스를 통해 각자의 공간에서 색다른 아늑함을 느끼며 풍경을 누릴 수 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은 앞면 경사로나 뒤편의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는 높은 옹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시야가 서쪽을 제외한 삼면으로 탁 트였다. 북쪽에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남쪽으론 남산과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테라스는 높이가 다른 '계단'이 돼 산세의 풍경을 여러 층위로 담는다. 임 소장은 "보통 건축주는 북쪽 창을 선호하지 않지만 자연 풍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감하게 북측으로 테라스를 냈고, 남측은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최소한의 창만 냈다"며 "남향 선호에 연연하지 않고 지형을 고려해 북쪽으로 열린 집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테라스의 존재감이 확실했다. 큰 창을 통해 시야가 시원하게 열리면서 20평 남짓한 공간이 실제보다 훨씬 넓게 다가온다. 각 층마다 화장실을 배치하고 드레스룸, 간이 주방 등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1층에서는 남쪽 도로변 창으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각 층에 있는 테라스마다 다른 산세가 펼쳐진다. 시간별로, 계절별로 다채로운 풍경은 원경을 조망할 수 있는 3층 테라스와 통창에서 완성의 마침표를 찍는다. 아내 역시 3층 테라스를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았다. "처음에는 통창을 내는 걸 주저했는데 살아 보니 큰 창으로 사시사철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풍경을 막힘없이 즐길 수 있더라고요. 층별 테라스의 쓰임새를 고민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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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는 와이드한 창을 내서 막힘없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북측으로 난 창으로는 눈부시지 않는 은은하고 따뜻한 빛이 사계절 들어온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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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2층 서재는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전면에 큰 창을 내고 투명한 문으로 계획해 개방감을 살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스스로 풍경이 된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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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벽은 성채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모티브가 됐다. 건축가는 옹벽을 보고 옥인단 단단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형상으로 세워진 모습을 상상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건물 내부가 자연의 풍경을 적극 끌어들였다면 외관은 풍경 그 자체가 됐다. 멀리서 보면 건물이 높은 옹벽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성채 형상이다. 임 소장은 "대지의 특성을 살려 건물이 옹벽으로부터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의도한 디자인"이라며 "올망졸망한 단독주택이 많은 시내 주택가에서 외부 시선을 막기 위해 창을 최소화하고 벽의 느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맞은편에 압도적인 크기로 들어선 기업 건물과 비교해서도 기죽지 않는 기세를 갖추게 됐다.


단독주택에서 보기 힘든 건축적 디테일도 눈에 띈다. 이 집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긴 대문이 대표적. 대문은 2개 층 높이의, 움푹 들어간 형태로 디자인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문을 감싸는 오른쪽 벽은 수직으로, 왼쪽 벽은 곡률이 느껴지게 벽돌을 쌓았다. "특별한 장식 없이 조형미 자체로 특별한 분위기를 주고 싶었다"는 건축가의 의도대로 건물은 직선과 곡선의 변주를 통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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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 바닥 부근의 곡선이 천장에서 직각으로 만나도록 정교하게 벽돌 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임승모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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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같지 않은 옥인단 단단의 대문. 특별한 장식 없이도 벽돌의 변주만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시내 한복판에서 담는 고요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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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를 통해 확장된 풍경으로 협소한 내부가 실제 크기보다 넓어 보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살면서 언제든 테라스로 나가 자연에 맞닿는 생활을 즐기는 가족. 그들은 올해 초 옥인단 단단에 입주한 후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2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도 체감하지 못했던 풍광이 건축가의 아이디어로 마법처럼 실현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내 이씨는 "집 안팎의 자연이 하루하루 바뀌는 장면에 매일 설레며 살고 있는데, 이런 집을 짓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감정들"이라며 "집에 사는 가족은 물론이고 주말이 멀다 하고 놀러오는 어린 손주들에게도 아름다운 기억과 풍경을 선물해줄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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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도 높은 갈색의 벽돌을 쌓아 올린 옥인단 단단의 외관. 성채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세련미가 풍긴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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