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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작가 작품 터미널 광장에 가득... 작품 가격만 1000억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23> 현대미술의 '메카' 아라리오 조각광장길

한국일보

세계 유명작가 작품 30여점을 전시해 거대한 야외 갤러리를 구성한 아라리오 조각광장.

충남 천안시 신부동 천안종합터미널 광장. 이곳을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한번 찾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에서 내려 터미널을 벗어나면 거대한 '거리 갤러리'로 진입한다. 세계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가득한 곳이다. 천안시 방죽안오거리에서 터미널사거리 사이, 종합터미널을 중심으로 약 300m 구간에 도열해 있는 '마중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문자들을 맞는 것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음직 한 데미안 허스트, 아르망 페르난데스, 키스 해링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다. 볼일이 있어 천안에 왔다가 이 들 감상에 넋이 빠졌다는 이야기는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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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광장을 중심으로 쇼핑몰과 갤러리로 이루어진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서도 찾아보기 드문 규모의 예술 광장이다. 낡은 콘크리트 건물, 빛바랜 간판, 매캐한 매연, 자동차 소음 등을 떠올리게 하는 여느 지방 중소도시의 터미널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종합터미널, 대형마트, 식당가 등으로 이뤄진 7만6,000㎡ 규모의 공간을 아우른다.


광장에 예술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미널을 운영하는 ㈜아라리오는 문화동에 있던 터미널을 허허벌판이던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교통은 물론 쇼핑, 문화시설 등을 함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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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축 999개로 제작한 프랑스 작가 아르망 페르난데스 '수백만 마일'

이전 직후 프랑스 작가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작품 '수백만 마일'을 설치했다. 이 작품은 완성을 의미하는 1,000에서 하나가 모자란 999개의 폐 차축을 쌓아 올려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높이가 무려 20m에 이른다. 차축과 터미널의 이미지가 상통하면서 설치과정에서부터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어 설치된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와 '찬가'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작품의 가격은 각각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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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2005년 설치된 금발의 소녀상 '체러티'는 천안이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세계에 알리는 서곡이었다. 설치 당시 현대조각에 익숙하지 않았던 천안시민과 터미널 이용객들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라던데... 저게 뭐야?”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하지만 국내에 팝아트가 미술계에서 주류로 자리 잡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작품들의 진가가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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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의 '찬가'

'찬가'는 2012 런던올림픽 당시 템즈 강변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에 설치됐던 작품이다. 6m 높이의 어린이용 해부학세트 모형을 확대해 인체 장기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작품은 절대 부패하지 않는 인체 모형을 통해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태도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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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고헤이 나와의 '매니폴드'

2013년 설치된 원형 돌기 구조물은 일본 작가 고헤이 나와의 '매니폴드.' 순백색의 독특한 모습으로 시선을 잡는다. 다양함을 뜻하는 'mani'와 접는다는 의미인 'fold'의 합성어로 높이 13m, 너비 16m, 폭 12m, 무게 27톤에 이르는 초대형 야외조각 작품이다. 수많은 파이프를 엮은 구조물 형태로 공간에 배치된 구(球)들이 중력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표면의 변화를 형상화 했다. 조성 기간 3년에 설치비용만 5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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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작가 김인배의 작품 '사랑해'

국내 작가 김인배의 작품 '사랑해'는 백색의 부드러운 윤곽선으로 우주선에서 방금 내린 외계인을 연상하게 한다. 오른손에 쥔 뭉친 철선은 조각에 소묘적 요소를 접목해온 작가의 특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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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조각광장을 만든 씨킴의 'Image 2'

조각광장을 만든 작가 씨킴의 작품 빨강색 가방 'Image 2'는 강렬한 색상을 주제로 일상적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한 작품이다.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물이 지닌 자극적인 색채와 광택, 부패하지 않는 견고한 물질에 투영된 현대인의 꿈과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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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

드넓은 광장에는 키스 해링의 '줄리아'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 등 거장들의 작품이 39여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가격이 무려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40여명의 작품 140여점이 전시되기도 했으나 수년 주기로 작품을 교체 설치하면서 작품 수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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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키스 헤링의 '줄리아'

광장의 끝에 자리 잡은 미술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은 국내외 현대미술 신예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전시 공간이다. 1989년 아라리오 화랑으로 개관한 아라리오 갤러리는 2002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관으로 재개관했다. 2005년 중국 베이징, 2006년 서울 삼청동, 2011년 청담동, 제주도로 갤러리를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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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갤러리

국내 최초로 전속작가 제도 운용으로 미술시장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해외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전시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02년 재개관 기념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키스 해링 전시회를 열었다. 이어 안젤름 키퍼, 브리티시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프롬 라이프치히 등 대규모 그룹전을 개최했다. 이후에도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허스트 에민, 시그마 폴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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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갤러리가 지난 5월 개막한 아시아 여성작가 전시회 '댄싱퀸' 전시 작품.

지난 5월부터는 ‘댄싱퀸’ 전시회를 열고 있다. 국내 작가들은 물론 일본, 인도, 파키스탄, 중국, 아시아 여성 작가 29명의 작품 50여점을 한데 모은 쇼다. 오는 10월까지 열린다.


광장의 작품과 갤러리는 시민에게 현대미술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했다. 백화점과 주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창밖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사이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쇼핑을 하든 차표를 사든 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든 예술 작품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전국 미술학도와 작가들 사이서는 '순례성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 관광객들도 찾을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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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갤러리 내 모던샵에서는 외국에서 발행한 미술과 여행, 음식 관련 서적 등을 판매하고 있다

청주에서 왔다는 학생 이상효(25)씨는 "친구 만나러 천안에 오면 항상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는다"며 "이 작품들이 만들어 내는 묘한 분위기에 올 때마다 기분이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독일의 예술잡지 'ART'는 이곳을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아라리오 조각광장을 추천한다"며 "천안이야말로 예술적으로 가장 뜨거운(HOT) 도시이며, 세계 미술지도에 반드시 표기해야 할 곳"이라고 극찬했다.


천안시는 이곳을 지역을 대표하는 12경 가운데 제4경으로 선정, '문화도시 천안'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7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 정보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소개됐다.


터미널이 들어선 이후 신부동은 1990년대부터 충남 제1 상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년 가까이 최고의 땅값을 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도 표준지 공시지가'에서도 일대 상업용지가 충남 도내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나타났다.


10여년 전부터 지역 상권 대부분이 두정동과 불당동의 신시가지로 이동, 천안역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은 공동화로 비어가고 있다. 하지만 광장을 중심으로 터미널 사거리에서 방죽안 오거리 구간은 다르다. 조각광장이 세계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아 상권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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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조각광장을 조성한 김창일(작가명 씨킴)회장.

이곳을 예술로 빚은 이는 백화점과 갤러리, 터미널을 운영하는 세계적 수집가인 김창일(69) ㈜아라리오 회장이다. 그는 미국의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7년 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김 회장은 38년 전 처음 현대미술 작품 수집을 시작한 그가 소장한 작품은 현재 3,700여 점에 이른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씨킴(CI KIM)이란 이름의 전업 작가로 20년째 활동 중이다.


김 회장은 "평생 잡기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연구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며 "오랜 시간 천안종합터미널을 세계 최고의 터미널로 만드는 일에 매달리며 컬렉션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천안=글ㆍ사진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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