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갈아엎을 김종인 무기 ‘창조적 파괴’ 3탄은?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 마지막 문장
한나라ㆍ더민주 비대위 시절도 ‘창조적 파괴’ 전략으로 승부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 모두가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혁신’을 결심해야 하는 시점이다.”
올해 3월 출간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의 마지막 문장이다. 약 400쪽에 걸친 책에서 김 내정자는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다. 창조적 파괴란 ‘낡은 것은 계속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변혁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주 닻을 올린다. 27일 통합당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관문은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인물과 정책, 노선 등 망라한 고강도 쇄신으로 통합당을 뼛속까지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 회고록에 담긴 그의 구상은 실현될 수 있을까.
보수 지우는 ‘창조적 파괴’
김 내정자가 ‘창조적 파괴’를 거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충격으로 휘청이던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대위에 참여한 김 내정자는 첫 번째 공식 회의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브랜드를 완전히 바꾸는 결단까지 내려야 한다.”
김 내정자는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당 정강정책도 갈아 엎었다. ‘경제 민주화’를 넣어 중도로 손을 뻗는 대신 ‘보수’는 딱 한 곳에만 남겼다. “보수 정당이 어떻게 ‘보수’를 싹 빼느냐”는 반응으로 당이 술렁였다. 김 내정자는 책에서 “이 같은 쇄신 과정을 거쳐 당의 낡은 이미지를 떨쳐내고, 패배의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진영을 옮겨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은 2016년에도 김 내정자는 창조적 파괴 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궤멸’과 ‘와해’라는 표현을 써 이념의 경계를 흩어놨다. 당 입장과는 어긋났지만, 북한 핵실험으로 조성된 안보 불안이 민주당 표 이탈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민주당은 같은 해 20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김 내정자는 ‘보수’라는 말 자체가 아무런 소용없는 ‘허명’(虛名)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보수의 낡은 가치를 털어내고 ‘시대에 맞는 보수’로의 탈바꿈을 꾀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아무리 보수를 자처해봤자 보수답지 않으면 거짓 보수이고, 보수라는 용어를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서도 보수주의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그것이 진짜 보수다”고 회고록에 썼다.
22일 주호영 통합당 신임 원내대표가 김 내정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진짜 보수 가짜 보수’라는 책도 이 같은 구상을 뒷받침한다. 언론인 송희영씨의 책으로, 반공ㆍ친미ㆍ친재벌 성장 등 3대 노선을 지키느라 국민 정서와 멀어진 한국 보수의 문제를 짚는다.
이에 김 내정자가 취임하자마자 진보 정책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를 찌르는 정책으로 민심이 통합당을 외면하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시나리오다.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은 25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제’ 등을 김 내정자의 카드로 꼽았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